변절자의 수기

Come back home

by 글쓰는 아재
0413.jpg 역시 필름보다는 신기술이 좋긴 하다는 말이지

하나


이직에 성공할 때까지 글에서 손을 놓으리라 결심했다. 짧게 끝내고 돌아오겠다는 결심이 무색하게 이직 활동은 오 개월째 난항 중이다. 능력주의 세상에서 합격 문턱에서 번번이 미끄러지고, 여태껏 잘 버텨오던 동료들마저 코로나로 쓰러지는 모습에 내가 가진 능력은 면역력뿐인가 싶어 안면에 자조 섞인 미소만 가득하다. 복잡한 머리나 식힐 겸 가볍게 사진만 찍을 생각이었다. 시작은 그랬다.


SNS에 천 단위로 늘어나는 팔로워를 보며 눈자위가 뒤집혔다. 아뿔싸 내가 그동안 쓸데없는 개 멋에 취해 글이나 끄적이고 있었구나. 역시 미디어 세상에서는 글쟁이보다는 사진작가지. 이러다 인플루언서(influencer)되면 어떡하지? 전에 썼던 글은 다 지워야겠지? 네티즌 수사대가 내 과거를 찾아내 내 개똥철학을 가지고 조리돌림 할 테니까.


간밤 꿈에 난데없이 한글 자음이 등장했다. 처음엔 거대한 ㅅ자가 하늘에서 떨어져 날 덮치길래 간발의 차로 피했다. 한숨 돌리던 찰나 이번엔 ㄷ자가 옆으로 서서 휘적휘적 걸으며 무서운 기세로 날 쫓아오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이며 건물 안으로 피신하자 갑자기 사방의 네모난 벽이 ㅁ으로 변해 조여오는데 공포심에 깨어서도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이게 변절자의 말로인가.



면접 볼 때면 늘 영업사원이 잘 맞을 것 같다는 평을 받는다. 입담·친화력. 잠깐 만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사람은 보이는 것만 믿으니까. 글쎄, 넉살 좋게 떠드는 모습은 일각일 뿐이다.


난 가까워지는 데 오래 걸리는 사람이다. 친한 척, 밝아 보이는 것에 능숙하지만 진짜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는 벽을 완전히 허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와 다른 타인을 내 안에 채우기 위해 비우고 덜어내기를 반복하고, 반대로 상대방이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작아지기도 때로는 커지는 과정을 끈질기게 반복한다.


뜨겁게 달구어서 두드리고, 차갑게 식은 철을 다시 달구어서 또 두드리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철은 단단하다. 단단하지만 투박한 철 덩어리를 갈고 깎으며 다듬고 또 다듬어 매끄러운 형태를 얻어낸다. 그런 단단하고 매끄러운 관계의 작품을 만드는 일종의 변태적 만족감이라고 해야 할까?


뜬금없이 진지한 고백이라니. 역시 이 주절거림도 면접이 짧아서 아쉬워서 늘어놓는 푸념이다. 좀 오래 보면 더 괜찮은 사람인 걸 알 수 있을 텐데. 라며 또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면서 저 이제 다시 글 써요! (브런치 애플리케이션이 글 안 쓴다고 자꾸 혼내길래)

매거진의 이전글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