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겠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막내고, 어머니는 외동이어서 내게는 삼촌이 없다. 삼촌에 대응하는 구체적 대상이 없기에 삼촌은 그냥 추상적인 단어였다. 지금도 그렇다. 삼촌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다. 형뻘과 삼촌뻘 사람에게는 ‘형님’으로 통칭해서 불러버린다. 물론 사회생활에서는 삼촌보다는 형님이 유리하다. 아저씨들에게 형님은 마법의 단어다.
내 조카에게는 삼촌이 나 하나밖에 없다. 조카가 떠올리는 삼촌이라는 사람은 내 모습일 것이다. 아찔하다. 내가 막돼먹은 인간이라면, 천하의 악당이라면, 조카는 삼촌 생각만 해도 고통일 테니. 문득 책임감을 느낀다. 똑바로 살아야지.
그런 상상도 해봤다. 첫째 조카가 자기 동생에게 삼촌을 설명해주는 모습. 서울 삼촌은 이런 사람이야. 그래서 좋은 사람이야, 혹은 나쁜 사람이야. 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조카 역시 삼촌은 나 하나뿐이다. 책임이 하나 더 늘었다. 첫째에게도 둘째에게도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그저 삼촌일 뿐인데 이런 책임의 무게감이라면 부모는 어떨까.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무게겠지. 그걸 어떻게 감당할까. 그런 이유로 부모는 위대한 존재인가 싶다. 조카 생각하다 새삼 내 부모님에게 감사를 느낀다. 적어도 조카에게 욕먹지 않을, 꽤 나쁘지 않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셨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