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의 깊이

바람에 드러나는 것들

by 앤의하루
(Canva 이미지)


웅-

모터 돌아가는 기계음이 동시에 멈추는 순간,

평소엔 알아채지 못했던 깊이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냉장고의 숨과 같은 전기음,

정수기 안쪽에서 쉬지 않고 회전하던 작은 모터,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LED등이 내뿜는 미세한 떨림음까지.

나는 그 모든 소리를

소리라고 부르지도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것들이 한꺼번에 멈추는 순간,

집안의 공기가 털썩 내려앉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적막은

오히려 온몸을 가볍게 조이는

낯선 공포에 가까웠다.


잠시 후,

등지고 있던 정수기에서

얇게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다시 새어 나왔다.

그 익숙한 소음이

갑자기 낯설 만큼 크게 들렸다.


마치,

내가 미처 몰랐던 결로

하루의 균형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집 안 가득,

늘 배경처럼 깔려 있던 소리들이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이,

나는 내 감정의 높낮이가

이렇게까지 소리에 기대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작은 소리들이 멈추는 순간,

낯선 세계에 떨어진 줄 알았고

그 소리들이 다시 들리는 순간엔

다시 현실로 끌어올려진 줄 알았다.


무심히 지나치던 소리들이

어쩌면 나를 지탱해 온

아주 미세한 존재의 리듬이었음을

그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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