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하루가 말을 걸 때
“개화 50%입니다."
"개화 90%로, 절정!입니다”
목향장미로 인별그램에서 인기를 가속 중인 한 카페가 있다.
사무실에서 걸어가면 10분 남짓.
봄이면 이 목향장미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작은 카페 앞마당은 북새통을 이룬다.
중요한 과업 프로젝트를 마친 날,
우아하게 한 시간을 더 들여 직원들과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기분 좋게 그 카페를 찾았다.
예전 같으면 실내에 한두 테이블 손님뿐이었겠지만,
오늘은 목향장미를 보러 온 사람들로 실외 자리까지 점령당해 자리 잡기도 어려웠다.
갓 돌 지난 아기를 데리고 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엄마와 할머니,
여자친구의 콘셉트에 맞춰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포즈를 바꾸는 연인,
음료는 시키지 않고 장미 앞에서 숙제처럼 사진만 찍고
유유히 떠나는 얌체족도 보였다.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의외로 신선했다.
험담도 하고,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사장님이 주문 손님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며
오늘 하루의 고됨을 함께 느끼기도 했다.
바삐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마치 혼자 멈춰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영화의 ‘타임 슬라이스’ 기법처럼
내 시선만이 정지된 채 눈앞의 장면들이 돌아가고 있는 느낌.
그러다 문득,
내 유년 시절과 연애의 설렘,
육아전쟁의 아수라장,
그리고 성장의 파편들이 하나의 필름처럼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것도 목향장미의 주술일까?
어디선가 은은하게 퍼져 나온 과거라는 시간의 향이
내 신경계를 툭 건드려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엄마와의 전화에서 짜증을 낸 게 후회됐고, 점심도 못 먹었다는 남편에게 무심했던 말투가 미안했고, 지각할까 봐 재촉하며 화를 냈던 아침의 내 모습이 아팠다.
‘오늘 저녁엔 엄마랑 걷자고 말해야지.’
‘남편한테 전화해서 밥 챙겨 먹으라고 해야지.’
‘아이 돌아오면 꼭 안아줘야지.’
… 그런데,
내 착한 마법은 늘 유효 시간이 짧다.
남편에게 전화를 거니 남편은 “지금 바빠, 빨리 말해”
그 순간 나는 맘을 닫는다. “응… 아니야. 끊어.”
엄마에게 전화드리니 엄마는 “어디? 끝난 거야? 왜? 오늘은 또 안 와?” 엄마 특유의 취조식 다그침이 시작이다.
곧 나는 삐딱해진다. “아니, 못 걸을 것 같아. 늦게 끝나.”
아이에게 전화를 거니 아이는 “엄마, 친구랑 밥 먹고 갈 건데 밥 사 먹게 용돈 보내줄 수 있어?”
나는 따뜻한 말 대신
“용돈 다 썼으면 집에 와서 밥 먹어!”라고 외치고 만다.
나는, 사실
착한 사람이고 싶다.
착한 아내, 착한 엄마, 그리고 착한 딸
“내가 걸어온 시간이 나를 만든다.
가끔은 다른 사람의 시간을 통해 나를 보지만,
상대평가는 절대 금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