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녀석과의 조우

작은 하루가 말을 걸 때

by 앤의하루

요 며칠 몸이 좋지 않았다.
매년 한 번쯤 독하게 괴롭히던 독감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다른 녀석까지 동행해 온 모양이었다.

어제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늘 그렇듯 가끔 찾아오는 두통이라 감기약을 털어 넣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회사에서는 복잡하고도 중요했던, 아니 스트레스 그 자체였던 보고서 작업이 막 끝난 참이었다.
3일 동안 붙들고 있던 일이었다.

이제야 병원에 가서 수액 한 대 맞고 감기를 털어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야 이번 주말에 예정된 마라톤에도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내과에서 증상을 이야기하자 의사가 혈압을 재보자고 했다.
출력지를 보니 196/128mmHg.
이때까지만 해도 오측정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5분 뒤 재측정 결과도 비슷했다. 간호사는 “조금 더 안정을 취하고 다시 재보자”라고 했다.

잠시 후, 출력지엔 204/124mmHg.

순간,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이 정도 수치는 고혈압 안내문에서도 본 적이 없는 숫자였다. 의사는 응급실 진료의뢰서를 써주며 말했다.

“지금 바로 응급실로 가세요.”


집에서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간호사에게 진료의뢰서를 건네며 다시 혈압을 쟀다.
“혈압 낮게 나오면 그냥 가시게요?”라며 웃던 선생님은 측정값을 보고 곧 진지해졌다.

“심장내과가 있는 큰 병원으로 옮기셔야겠어요.”

그때 혈압은 218mmHg.
동생이 근무 중인 병원으로 이동했다.

응급실에서 재측정 결과는 233mmHg. 계속 오르는 수치가 심상치 않았다.
“머리가 아프세요?”
“지금은 아니요.”
“어지럽거나 구토, 시야 흐림은 없으셨나요?”
“전혀요.”
곧바로 뇌 CT와 심전도 검사를 했다. 다른 검사들은 이상이 없었지만, 동생 말로는 “뇌동맥류 의심 소견이 보인다”라고 했다.
복잡한 혈관 속에 교묘히 숨어 있던 작은 뽈록이 하나가 잡혔다.

‘이젠 내 차례인가.’

교묘히 숨어 머리를 쥐어짜던 녀석,

그게 너였구나.
이제부터는 심장내과와 신경외과를 오가며 진료를 받아야 한다. 정확한 건 외래 진료 후 확진을 받아야 한다지만, 섣부른 판단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은 그저, 말 잘 듣는 환자가 되어 몸의 신호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그리고 한 가지 다행이라면,

어느 날,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 갑자기 나타나지 않고 이렇게 조용히 마주하게 된 것.

그래서 이상하게도, 이 녀석에게


“이렇게 조우해 줘서 고맙다”

는 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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