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하루가 말을 걸 때
살면서 이런 일은 없게 하소서.
가끔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엄마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나는 누구보다 내가 먼저일 때가 있다. 이를테면, 맛있는 음식이 있더라도 무조건 아이들 먼저 챙기지는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음식으로 풀자니 조금 구차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그랬다.
시어머니는 늘 말씀하신다.
"아기들 밥 먼저 먹여주라."
"생선을 발라서 밥 위에 얹어주라."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먼저지'라는 뜻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챙기는 일에 늘 서툴렀다.
그렇다. 서투른 거다.
남편도 그렇지만 주위에서는 그렇게들 이야기한다.
"지금 하는 고생으로 훗날 아이들이 편할 수 있지 않겠어?"
이 말이 나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그저 지금 당장 쏟아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 그 고단함이 나는 무겁기만 했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마음과 위하는 마음이 동일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에도 '자격'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는 걸까.
내심 혼자서 불편한 거다.
그런데, 얼마 전 그것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12월, 싸라기눈 섞인 비가 내리치던 저녁 7시.
회사 동료들과 회식자리가 있어서 큰아들을 학원에 데려다주지 못했다.
아이의 걸음이라면 20분이면 도착할 거리였다.
"비 오는데 택시를 타는 게 어때?"
"그냥 뛰어가면 돼요."
그 짧은 통화를 마치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의 촉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 거다.
휴대폰 액정에 콕 박혀있는 전화번호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두운 암흑을 몰고 오는 것처럼 공포스러웠다.
그 짧은 몇 초 동안.
"ㅇㅇㅇ학생 어머니 되시죠?"
그 한마디에 어디선가 날아온 얼음 섬광을 맞은 듯,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단 11글자였다. 그 11글자에 온몸의 피가 머리로 솟구쳐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쭈뼛 함이 느껴졌다.
"아이가 제 차에 치었는데 많이 다쳤습니다. 여기로 오실 수 있습니까?"
그 이후의 기억은 흐릿하다.
많이 다쳤다는데도 불구하고 대뜸 아이를 바꿔달라고 얘기했다.
'전화를 받을 정도라면 크게 다친 건 아닐 거야'라는 실낱같은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아이가 전화를 넘겨받았다.
"엄마, 사고가 났는데 눈이 잘 안 떠져"
"거기가 어디야? 다른 데는 다친데 없고?"
"팔이 아프고, 피가 많이 나서 그런지 눈이 안 떠져. 여기 ㅇㅇㅇ갤러리 앞이야"
아이와 통화를 하면서도 말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입술에서 새어나 온 건 오직 "제발.."이라는 단어뿐이었다.
아이는 사고장소에서 곧바로 119 구급차를 타고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되었다. 사고장소에 도착하기 전에 이송이 되는 바람에 직장 언니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119 구급차를 거의 따라붙어 동시에 병원에 도착하였다.
피 말리는 기다림이었다.
눈 쪽이 찢어져 피가 많이 나기 때문에 권역외상센터로 오게 되었다는 119 구급대원의 얘기.
찢어진 눈 부위 봉합을 하고 어느 정도 기본 처치를 한 후 보호자 면회가 가능할 거라는 의사 얘기.
당시에는 '기다림'이라는 단어 외에 생각할 겨를도 들을 겨를도 없었는데 지금 보니 다 생각이 나는 게 신기하다.
가해 차주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신호등 없는 건널목을 아이가 통통 튀듯 가볍게 뛰는데 미처 못 보고 치었다는 것 같다. 당장은 그 분과 얘기할 것은 없는 것 같아 우선 돌아가 계시라 하고 돌려보냈다.
아이의 외삼촌이 그 병원에서 근무하기에 급하게 불러 상황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다고 해도 기다림 외에 뾰족한 수는 없었다.
아이를 볼 수 있었던 건 한 시간이 훌쩍 지난 후였다.
온몸이 피범벅이 된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엄마, 미안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울어야 할지, 무너져야 할지 몰랐다. 어쩔 줄 몰라 정신줄을 놓으려는 나를 위로한 건 신기하게도 다친 아이였다.
의사는 말했다.
"차와 부딪히는 충격으로 공중에 떴다가 떨어졌다고 하네요. 떨어지면서 오른쪽 어깨뼈와 왼쪽 눈 안와골이 골절되었습니다. 눈 쌍꺼풀 라인이 찢어져서 봉합했고요."
아이는 어깨 빼와 안와골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제야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도 괜찮고 다리도 괜찮고 무엇보다 눈동자 또한 비껴가서 얼마나 다행인가.
수술 후, 통증에 몸부림치는 아이를 지켜보는 동안 내 마음은 끝없이 부서졌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대신 아플 수 있다면, "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그 사고가 내 탓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는,
자기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상황에서도 나의 표정을 살폈다. 그 모습이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그때 떠올랐다.
아이가 "엄마"라고 처음 내뱉었던 날.
온 우주가 나를 향해 고객을 끄덕이던 기적 같은 순간이.
엄마의 자격은 완벽함이 아니라, 아이가 아플 때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가진 유일하고도 확실한 '자격'이라는 것이다.
세상 앞에서는 부족하고 서툰 엄마일지라도 아이가 세상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묵묵히 바라봐 주고, 응원해 주는 일. 그게 나의 몫이었다.
지금은 한 달에 한번 정기검진을 다니며 생활하고 있다.
달라진 것이라면 아직도 큰아이는 버스도 택시도 그리고 도보도 아닌 내 차가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내 마음에서 미안한 마음이 사그라들고 아이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면 다시 세상 밖으로 내어놓겠지.
하루라도 빨리 그런 날이 오도록 엄마인 내가 좀 더 단단해져야 할 것이다.
"아이를 처음 안았던 순간의 벅찬 설렘은 사춘기 앞에서 쪼그라든다.
그러나 아이의 고통 앞에서 그 쪼그라든 설렘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결국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