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하루가 말을 걸 때
러닝을 하러 나가면서, 정말 귀찮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약함을 태워버리기 위해 퇴근 후 곧장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일상복이나 홈웨어로 편히 앉아버리면 다시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게 귀찮아지고,
그 귀찮음은 곧 러닝 포기로 이어질 테니까.
그렇게 10개월 넘게 ‘일일 러닝’을 이어왔다.
오늘도 평소처럼 뛰었다.
바람을 타고 무화과 열매 냄새가 향긋하게 밀려왔다.
잠시 뒤엔 익숙한 새콤한 귤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기분 좋은 러닝이었다.
비에 젖은 흙냄새가 좋았고,
나무에 매달린 설익은 과일 향이 좋았고,
바람을 타고 흐르는 저녁의 냄새가 너무 좋았다.
군락의 향, 삶의 냄새였다.
집을 나서 과수원길을 지나 오르고 올라
초등학교 운동장에 도착했다.
운동장 트랙을 3km를 돌고, 연북로(인근 대도로)로 나섰다. 연북로 시작점에서부터 1km쯤 달렸을 때,
총 거리 10km를 넘어섰다.
오늘은 뭔가 다를 것 같았다.
11km, 아니 12km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시 집으로 향하며 ‘1~2km만 더 채우자’ 했는데,
그 순간 툭—
휴대폰이 꺼졌다.
러닝 기록 앱이 실행 중이었는데,
그 모든 기록이 사라졌다.
‘젠장.’
아쉬움이 크게 밀려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 집에 도착했다.
워치에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11.36km.
처음으로 10km를 넘어선 날이었다.
아마 오늘이 나의 첫 LSD(Long Slow Distance)였을 것이다.
자신감이 끓어올랐다.
러닝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
추간판 팽윤, 퇴행성 척추관 협착, 척추 전방전위.
그 위태로운 몸으로 시작한 달리기였다.
러닝을 하며 다행히 허리 통증은 줄었지만,
그 대신 고관절, 무릎, 정강이, 발목이 차례로 아파왔다.
하지만 그쯤의 통증은 감내할 수 있었다.
나는 러너다.
나는 매일 소염제를 먹고 달리는 러너다.
그런 나에게 내려진 가혹한 명령.
‘러닝 금지령’.
나는 지금 180~200mmHg의 혈압을 가진 초고혈압 환자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고혈압 환자에게도
약한 강도의 러닝은 권장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예외였다.
수축기 혈압이 180을 넘는,
‘초고혈압 러너’는 대상이 아니란다.
러닝 금지령은 나에게 형벌처럼 느껴졌다.
의료업계에 있는 동생도,
30년째 보험업을 하는 남편도
처음 본다는 수치였다.
내 최고 혈압, 233mmHg.
이대로 모른 채 마라톤에 나갔다면,
아마 지금 이 글을 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안 될까?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잖아.”
간절히 말했지만 남편은 단호했다.
“안 돼. 앞으로 마라톤도 금지야.”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달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내가 이렇게까지 열정적이었던가?’
스스로도 낯설다.
가을바람이 감나무 가지 사이로 휘잉— 들어선다.
며칠 사이 훤히 비어버린 가지 사이로
바람이 스며드는 걸 보고 있자니
왠지 내 가슴 속도 함께 휘저어지는 기분이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춥고, 매섭고, 아리고, 아프다.
이 형벌은,
언제쯤 끝이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