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하루가 말을 걸 때
이사를 한 지 어느덧 2년이 되어간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이 참 좋다.
도심 속, 작은 시골 같은 곳.
아파트이지만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 같은 이곳.
단지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작은 숲 속의 도시를 보는 것 같다.
입구의 커다란 야자수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길 양옆의 벚꽃나무들은 봄이면 영화처럼 꽃비를 내린다.
아파트 동마다 자리한 홍가시나무와 감나무, 귤나무, 무화과나무가 계절마다 다른 재미를 더한다.
이곳은 지상주차가 없다.
모든 차량은 지하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덕분에 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공간이 되었다.
싱그러운 공기와 초록의 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른 아침이면 다양한 새들이 찾아와 재잘거리며 인사를 건네고, 가을이면 풍경은 더 깊어진다.
창밖으로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가 풍요로움을 자랑하고,
햇살 속에서 반짝이는 야생화들은 이름조차 다 알 수 없지만, 그 내음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현관문을 열면 'ㄱ' 현관이 눈에 들어온다.
현관 자체가 1.5평은 되어 보인다.
처음 이사할 때는 "이곳을 어떻게 꾸미지?" 하고 고심했다. 그러나 지금은 깨끗하게 비워두었다.
그러기까지 많은 설렘과 헛된 로망이 뒤섞여 어지러웠으나, 이내 본연의 여백의 미를 찾았다.
이때 알았다.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임을.
'ㄱ'자로 꺾어 들어가면 중문이 나온다.
중문을 열고 들어서면 펼쳐지는 탁 트인 넓은 거실.
테라스틀 통해 들어오는 한줄기 햇살이 파도처럼 부서지고, 바람에 살랑이는 새하얀 커튼이 초록이 풍성한 녹보수 화분 옆으로 스친다.
이 찰나, '아, 우리 집이다.' 하며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거실 소파에 누워 있으면 이때부터는 밖으로 나가고 싶지가 않다.
소파에 누운 채 문득 테라스 쪽을 바라보면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진다.
살짝 비치는 햇살,
살랑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리고 격자무늬 나무문이 어우러진 테라스 풍경은
사진으로 다 담기지가 않는다.
남들은 말한다.
“단독주택은 관리가 힘들다.”
“손이 많이 간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
“나이 들수록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단독에 대한 로망이 있다.
혼자만의 여유를 부리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이 아파트,
1층에 자리하면서도 정원이 딸려 있고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숲 같은 공간.
아파트이자 단독인 셈이다.
화분들을 햇살 아래 널어두고 빛 샤워하는 화분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이 집에서의 가장 큰 행복이다.
그깟 모기, 그깟 귀뚜라미,
그깟 지네, 잡초, 흙먼지, 냉난방비쯤이야
내 로망을 무너뜨리기엔 너무 약하다.
주말이면 테라스에 화분을 내놓고
캠핑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누가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런 보상 같은 시간이 있기에
바쁜 일상 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다.
물론 눈을 돌리면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지만,
잡초를 한 주 더디 뽑는다고,
청소를 하루 건넌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잠시, 잠깐의 여유를
이런 호사로 누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