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그리움 -1.『아빠의 선물상자』

작은 하루가 말을 걸 때

by 앤의하루

10월이 되면 매번 ‘뭔가 중요한 날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무슨 날 아니었던가?’ 싶어 한참을 기억을 더듬어 봐도, 도무지 떠오르는 일정이 없다.
결혼기념일은 4월이고, 아이들 생일은 8월.
우리 부부의 생일도 10월은 아닌데—
시어머니, 친정엄마 생신도 아니고...

그런데도 늘 이맘때면 ‘뭔가를 놓친 것 같은’ 찝찝함이 스민다.
잊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잊어버린 기분.
그 감정의 정체를 한참 뒤에야 깨닫는다.

아, 맞다.
아빠의 생신이자,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그리고 아빠의 기일.

아빠의 주민등록상 생신은 10월 17일,
실제 생신은 10월 21일,
그리고 두 분의 결혼기념일도 10월 21일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10월 25일(음력 9월 5일)은 아빠의 기일.
그래서일까.
10월이 되면 어딘가 허전하고, 마음 한쪽이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 찾아온다.
잊은 줄 알았던 기억이, 마음 깊은 곳에서 문을 두드린다.
이제야 “아, 그랬구나” 하고 깨닫지만,
아마 내년 10월이 오면 또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 허전함은 뭐지? 내가 뭘 잊은 거지?”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매해 반복되는, 아리송한 그리움이다.

아빠는 내게 선물상자 같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사춘기 전까지는 말이다.

매년 성탄절이면 인형을 안겨주시곤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하얀 곰인형.
가슴에는 빨간 체크무늬 하트가 박음질되어 있었다.

아빠의 사랑은 세 남매 중 유독 내게 쏠려 있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 우리 아빠에게만큼은 해당되지 않았다.
오로지 작은 딸, 나였다.

태어나 보니 아빠 얼굴을 닮았다는 이유로,
울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랑을 독차지했다.
외할머니 말씀으로는,
내가 태어날 때 엄마가 위험한 상황이라
아빠는 옆방에 숨어 “함께 가겠다”며 눈물만 훔치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막상 태어난 아이를 보니 “쥐새끼 같다”며 이불속에 감추셨다.
이불을 다시 들춰보니 꼼지락거리는 게 보여,
손가락으로 하얀 밀가루를 긁어보니 머리카락이 보였단다.
그제야 나를 거꾸로 들어 흔들었고,
“으앙—” 하는 첫울음이 터졌다고.
그때 내 크기는 성인 양말 반으로 접어놓은 만큼이었다고 한다.

아빠는 그런 나를 더없이 아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나는 알게 되었다.
그의 사랑만큼, 그의 결핍도 컸다는 것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에는 부족했고,
때로는 무책임했고,
또 폭력적이기도 했다.
언니도 남동생도 매를 피하지 못했다.
물론 이유 없는 폭력은 아니었지만,
그 체벌의 강도는 어린 마음에 너무 무거웠다.

한 번은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아빠가 나를 때리며 이렇게 말했다.
“때리기 싫으니까 나가.”
그 말이 참 모순되고, 슬펐다.
사랑해서 화내고, 미안함에 외로웠던 사람.

그게 우리 아빠였다.

이제 와 생각하면, 아빠는 늘 외로웠던 것 같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남편의 고단한 뒷모습을 볼 때마다 문득 깨닫는다.
“우리 아빠도 그랬겠구나.”

쌍둥이를 낳았을 때,
아빠는 유독 작은아이를 예뻐하셨다.
붙임성 있는 아이가 귀여워서였을까.
아니면, 그 안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보신 걸까.

노쇠한 뒷모습이 점점 작아질 무렵,
아빠의 목소리는 유난히 힘이 없었다.
그게 마지막 전조였는지도 몰랐다.

어느 날,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간다”며 내 사무실 앞에 오셨다.

나는 서둘러 일 중이라 “병원부터 가시라”라고 재촉했다.
잠시 뒤 걸려온 전화.
“내과 왔는데, 큰 병원 가보라네. 구급차 타라는데 그냥 가면 안 되겠냐?”
“일단 구급차 타고 가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 주세요.”

‘감기라더니 웬 구급차지?’
잠시 후, 다시 울린 전화.
“아버님이 지금 ○○병원으로 이동 중입니다. 오실 수 있습니까?”


(2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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