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하루가 말을 걸 때
119 구급대원의 전화를 끊고, 나는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아빠는 응급실 침대 위에 누워 계셨고, 열이 오르는지 수액을 맞고 계셨다.
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기본 검사를 마친 뒤, 폐 사진이 좋지 않다며 “입원 후 추가 검사를 진행해 보자”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빠는 평소처럼 말도 잘하시고, 몸을 움직이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늦은 저녁이 되자 아빠의 표정이 달라졌다.
편안하던 얼굴이 점점 어딘가 멀어지듯 변했고, 이상한 말씀을 하기 시작하셨다.
“저기 봐, 열매가 참 많이 달렸네.”
“저 사람 봐, 웃긴 모자 썼다. 허허허.”
“○○엄마야, 가기 전에 버스비 좀 주고 가라. 버스 타고 가게.”
고열에 의한 섬망 증상이었을까.
아빠는 혼자 말을 하고, 혼자 웃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이승을 떠날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게 아닐까 싶다.
다음날, 아빠의 열은 조금 내렸고 일반병실로 옮겨 수액을 맞으며 검사를 받으셨다.
의사는 “폐 상태가 좋지 않은 건 맞지만, 고열의 직접 원인은 아닌 것 같다”며 골수검사를 권했다.
“골수검사 하려면 등에 주사 찌르고 그런 거 아닌가? 그거 많이 아플 텐데.. 싫은데...”
걱정스러운 아빠의 말에 의사는 조용히 답했다.
“병명을 알아야 치료가 가능합니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셨고, 나는 분위기를 바꾸려 일부러 너스레를 떨었다.
“아빠도 엄살을 다 하네~ 아파도 해야지, 검사해야 아픈 이유를 알지!”
그렇게 조금은 웃었지만, 불안한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입원 3일째 되던 날, 아빠의 상태는 훨씬 나아져 보였다.
심지어 몰래 담배를 피우다 간호사에게 혼나기까지 하셨다.
담배와 술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폐와 간.
그런데 그보다 더 중한 병이 있다는데, 정작 병명은 모른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마산에 사는 언니도 제주로 내려와 아빠를 뵙고, “괜찮으신 것 같다”며 안심하고 다시 올라갔다.
그런데 언니가 부산공항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하자마자, 아빠가 말했다.
“허리가 너무 아프다.”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불과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빠는 의식을 잃으셨다.
간호사들이 병실로 뛰어들어와 다급하게 아빠의 하의를 벗기고, 대퇴부에 주사를 꽂았다.
분주히 움직이는 손끝들 사이로 수액과 전선이 머리맡에 얽혀갔다.
곧 아빠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가족당 하루 두 번, 한 번에 두 명만 면회가 허락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빠는 의식을 잃은 채 점점 멀어져 갔다.
하루에 두어 번 혈액을 투석하는 장치가 추가되었고, 의사는 절망적인 말을 전했다.
“생명 연장 치료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거부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아직 시행하지 못한 골수검사는 진행해 보시겠습니까?”
생명연장 치료를 해도 며칠, 혹은 길어야 몇 달밖에 버티지 못할 거라 했다.
하지만 병명을 알아야 마음이라도 정리할 수 있었다.
결국 가족회의 끝에 연명치료는 거부, 골수검사는 진행하기로 했다.
그 결정이, 훗날 그렇게 가슴에 깊이 남을 줄은 몰랐다.
검사를 위해 아빠를 옆으로 눕히자, 앙상한 등뼈만 남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의식이 거의 없었지만, 바늘이 들어가자 아빠의 작은 체구가 바들바들 떨렸다.
“무섭다”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몸으로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도저히 볼 수가 없어 뒤돌아 서서 숨죽여 울었다.
“미안해요, 아빠... 정말 미안해요.”
그 검사가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아빠는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아빠 돌아가시기 전,
마산의 언니, 가평의 동생 모두 내려와 아빠 곁에 섰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아빠!” 하고 불러도 눈을 돌리지 않던 분이 언니와 동생의 목소리에만 고개를 들어 바라보셨다.
“아빠, 나도 좀 봐요. 나 아빠가 사랑하는 작은딸이잖아요!”
투정 반, 울음 반으로 말했지만 아빠는 여전히 나를 보지 않으셨다.
그때는 서운함뿐이었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었다는 것을.
촌에 계신 외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해 병원에 도착하셨다.
“명완아, 나 죽으민 잘 묻어준덴 해그네... 네가 먼저 가민 어떵하느니...”
울음 섞인 제주 사투리가 병실에 퍼졌다.
그 말을 들은 아빠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 이튿날, 아빠는 그렇게 눈을 감으셨다.
2014년 9월 5일이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여쭤봤던 얘기인데,
“너는 그것도 모르겠냐.
너를 너무 좋아하니까 차마 너를 보고는 갈 수 없으니까 못 본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무너져 내렸다.
(3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