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의 태국 여행기

작은 하루가 말을 걸 때

by 앤의하루

오전 열 시가 되면 어김없이 고민이 시작된다.
“오늘 점심은 뭘 먹지?”
사무실 창밖으로 햇살이 기울기 시작하면, 그건 일보다 더 반가운 고민이다.

오늘은 여유 있게 나설 수 있는 날이라 차로 십 분 거리의 태국 음식점으로 향했다.

『쿠지쿠진 Coogee Cuisine』
제주 속 이국적 공간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곳은 제주시내에 조용한 주택가 골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화분 등으로 잘 정돈된 입구. 짙은 잿빛의 그레이 화강석 위에 부드러운 필기체 형태의 '커서브' 폰트로 쓰인 Coogee가 자유롭고 감각적이라면,
Cuisine는 직선적이고 균형 잡힌 '산세리프' 활자체로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도시 감성을 나타내는 듯했다.


'정성스러우면서도 가벼워 보이지 않는 요리'의 상징처럼.


나는 그 감성과 절제가 공존하는 간판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내 하루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차가운 금속 주방과 붉은 조명이 대조를 이루며 묘한 온도를 만들었다.
손끝이 닿는 나무식탁은 따뜻했고, 서로 다른 의자 두 개씩이 짝을 이루어 놓여 있었다. 어쩐지 그 모습이 우리들 같았다.
각기 다르지만, 함께 있으면 더없이 자연스러운.


주방 안에는 태국 출신의 셰프.
그는 미국 요리 경연 프로그램 ‘YES CHEF 2’ 심사위원 출신의 30년 경력 베테랑이란다.
그의 팬 소리가 이 공간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식사 전, 물 대신 내어준 '타이티'는 은은한 단맛과 향을 품은 차였다.


곧이어 나온 '타이 밀크티'는 오렌지빛을 띠었고,
연유와 홍차가 섞여 달콤하게 하루의 속도를 늦춰 주었다.
오렌지색이 시럽인가 싶었는데 웬걸, 진하게 우려낸 태국의 홍차란다.


개인적으로는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던 달콤함.
'꿍팟퐁커리'가 기억에 남는다.
무계획 속에서 이정표를 찾은 느낌이랄까.

'팟(Pad)'은 볶다.
'타이(Thai)'태국식이라는 뜻의 '팟타이'.
태국식 볶음국수.

태국요리의 상징과도 같은 '똠양꿍'
뜨겁고 시고 매콤하면서도 향이 깊은 수프였다.


다른 메뉴들과 조화를 이루어주는 새콤 달콤한 태국식 샐러드 '쏨땀'.
새콤 달콤 매콤 짭조름한 맛이 한입에서 동시에 터지는 재미있는 요리였다.


커리 속 탱글한 새우와, 팟타이의 단짠 한 리듬,
똠얌꿍의 매운 향, 쏨땀의 상큼한 균형까지.
테이블 위에는 태국의 거리와 제주의 바람이 한데 놓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은 홍차의 향이 강한 젤라또 같았다.
입안에 퍼지는 은은한 쌉싸름함이 오히려 마음을 정리해 주는 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데,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쳤다.


오늘의 점심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조금 느리게 걷고, 조금 천천히 웃을 수 있게 해 준 작은 여행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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