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의 무게

하루를 위한 하루

by 앤의하루

앞으로 남은 시간 7시간 20분.

하얀 종이 위에 큼지막하게 적힌 '희망퇴직 신청서'를 뚫을 기세로 쳐다보고 있다.

현재 직장에 다닌 지는 24년 하고도 3개월.

24년을 단 7시간의 선택과 등치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렇다고 결단을 내린 건 아니다. 지금도 갈팡질팡 고민 중이다.

만약 오늘 신청서를 던지면? 하는 생각과 동시에 밀려드는 해야 할 일들.

24년이라는 세월로 켜켜이 쌓아 올린 책상 서랍과 캐비닛 속의 물건들도 정리해야겠지?

곧 있을 연말정산을 하려면 퇴사 이후에도 다시 사무실로 나와야겠지?

앞으로 건강보험료와 고용보험료는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이 와중에 책상정리, 연말정산 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 나, 참으로 사족을 부리고 있다.'

나는 나의 내면이 궁금하다.
왼손에 쥐어진 신청서냐, 오른손에 쥐어진 무형의 '그것'이냐 고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퇴사 후 어떤 시간들을 어떤 생활들을 보내게 될지 그 깊이를 고민하지는 않았기에 당장은

나의 오른손에 쥐어진 것을 무형의 '그것'이라 표현한다.


'나의 팔을 붙들고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리도 결단이 어려운지 모르겠다'


이대로 직장을 다니게 된다면 나는 앞으로 받게 될 업무 스트레스에서 더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세월의 그늘이 드리워진 머리와 이제는 날렵하지도 않은 몸으로 더는 열정이 없다.




아주 오래전 나는 꽤 열정적이었다.

쌍둥이를 출산하고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1개월, 고작 4개월을 쉬고 복직을 하였다.

시간과 분이 정책이자 돈이었던 그 시절,

업무처리를 위해 어린아이 둘을 남편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늦은 밤 9 시건, 10 시건 무조건

사무실로 기어나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런 뜨거운 열정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쉽게 얘기하겠지.

월급을 받고 승진을 하고 기회가 주어지고 누리지 않았느냐고.


그 안에 숱한 어떤 것들을 녹여냈는지는 모르겠지.



나는 알고 있다.
회사와 함께 보낸 24년이 나의 일상이자 습관이 되었다는 것을,

사족을 부리며 사소한 걱정들을 끌어들여 갈피를 못 잡는 이유도.


결국에 나는 이 무게감을 감히 내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는 이 종이 한 장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 나는 지금,

삶의 한 변곡점 위에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을 끝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처럼, 선명하게 바뀌게 될 어떤 순간의 앞에.


결정은 여전히 어렵다.

오른손을 들 것이냐, 왼손을 들 것이냐.


앞으로 남은 시간 2시간 남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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