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욕하지 마라
몇 년 전 하와이에 갔을 때, 그곳 한인사회 시민이 한 말이다.
'공항에 내리는 사람을 보면 바로 한국사람인지 쉽게 구분 돼요.'
물어보니, 한국사람은 일단 옷차림이 고급스럽고,
명품 핸드백 정도는 하나씩 가지고 있단다.
미국 사람은 다른 사람과 같은 옷을 입거나,
액세서리를 하면 굉장히 머쓱해한다고 했다.
자기 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문화 때문에
타인과 같은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산에서는 등산복 차림이 대단하다.
고가의 등산복으로 무장한 단체룩이다.
TV에서 연예인이 하고 있는 액세서리는 쇼핑몰에서 불티가 난다.
우리 체면치레는 예로부터 대단했다.
지금은 실용적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체면문화는 서로를 비교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내가 커 온 고향마을조차 나와 내 친구는 부모들의 비교 대상이었다.
어릴 땐, 누구는 몇 등하고 무슨 상을 탔는지, 커서는 그 집 자식은 뭐 하며,
차는 뭘 타고, 이번에 부모한테 뭘 해줬는지가 큰 관심사다.
부모들은 자식자랑에 싸움까지 나기도 한다.
한 개그맨이 새로 뽑은 외제차를 타고 고향에 갔다.
어머니가 아들 성공했다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셨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어머니가 세차를 하셨는데
철수세미로 해 놔서 외제차 다 망쳤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친구, 동창, 옆집 모임조차도 그 집에 물건이 뭐가 있는지,
그 집 부인은 무슨 핸드백이 있는지,
그 집 차는 뭘 타는지, 아파트는 몇 평인지,
그 집 부부는 뭐 하는 사람인지,
연봉은 얼마인지가 관심대상 1순위였다.
거기다, 그 집 아이는 무슨 학원에 다니는 것까지도 알고 싶어 하고
우리 아이도 그 학원에 보내야 했다.
거기에 발맞춰 나도 명품 옷, 핸드백을 가져야 되고
빚을 내더라도 중대형차를 타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만족감을 위해 자기에게 투자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과(過)한데 있다.
우리가 가진 경제능력 중 남에게 기죽지 않기 위해
쓰는 비용은 얼마인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지나치면 안 된다.
능력만큼 제어할 수 있는 만족감의 범위가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문화이길 바란다.
정치인도 국민도 더 실용적이고
현명함이 우선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