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단순한 호러가 아닌 우리의 삶을 조명하는 이야기다.
2019년 셜리 잭슨상을, 2020년에는 월드 판타지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커커스 리뷰], [NPR] 등 각종 언론 및 문학잡지에서 주목한 천재 작가의 눈부신 단편집을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환상 호러 소설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이야기다. 화려하고 환상적이면서도 공포를 감출 수 없는 이야기.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는 총 22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스물두 편의 이야기는 분량도, 형식도 모두 제각각이다. 한 장짜리 단편이 있는가 하면, 2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도 있다. 일반적인 소설의 흐름으로 진행되는가 하면, 문단조차 나뉘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 독자는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여러 공포를 마주하게 된다. 한 단어에 담기 미묘한 공포와 환상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소설집의 첫 장을 장식하는 이야기다. 단 두 쪽의 이야기가 전하는 공포는 가히 극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먼저, 묘사 자체가 상당히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얼굴 없는 소녀의 이야기는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정확히는 뒷모습만 있는 소녀, “무언가가 잘못되는 바람에 같은 쪽만 두 개가 모여 한 명이 되어 버린 소녀”라고 할 수 있었다. 존재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점차 번져갔다. 아이를 버리는 엄마, 소녀를 가두는 사람들을 보며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떠한 존재를 배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음 편히 지켜보기는 힘들다. 그리고 그 이유가 ‘다르다’라는 것뿐이라면 더욱이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소녀에게 떳떳할 수 없다. 그렇게 나머지 반쪽으로만 된 얼굴을 본 ‘나’에게 드러낸 적의는 그대로 독자에게 쏟아졌다. 출구 없는 곳에서 도망쳐야 하는 기분을 느낀다.
이것이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낄 만큼 강한 흡인력을 가진 이야기다. 가슴이 갑갑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고 찝찝함을 지울 수 없다. 작가가 전하는 공포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소설집의 첫 대목으로 아주 적합한 이야기다.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한 이야기의 서막이 오른다.
피상담자인 ‘하우프트’가 중심이 되는 진행 속에서 그는 계속 의심하고 의아해한다. 상담사가 밤에도 찾아오고, 하우프트는 밤 상담사가 실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진짜라고 느낀다. 그렇게 묘사된 장면을 통해 독자도 문제의 원인을 찾기 시작한다.
사과와 바나나처럼 익숙한 사물을 사용하여 인간을 비유한다. 사과와 바나나에 인간을 비유한다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다. 익숙한 것으로 그렇지 않은 것을 만들어내는 느낌은 오묘했다. 인간, 사과와 바나나, 껍질, 칼, 다시 인간. 이러한 순서로 흘러가는 사고의 흐름이 섬뜩하기 그지없다. 바나나보다는 사과와 비슷한 껍질의 인간인 낮 상담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우프트의 칼이 결국 그를 베었을지, 혹은 그것까지도 그의 망상일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칼을 빼 든 결말 자체가 잔인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보통이라고 말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그의 생각이 낯설고 이질적이다. 그 사고가 칼이라는 도구를 만나 순식간에 흉기를 만든 결말이 섬뜩함을 자아낸다.
처음은 그저 흔한 SF 소설의 시작처럼 보였다. 그 어떤 두려움 없이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듯 ‘시그네’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여러 충격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분명 흥미로운 SF 소설에 불과했다.
첫 번째 충격은 ‘시그네’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름을 묻는 빌라드의 말로 시작하는 이야기에서 빌라드보다는 그가 던진 질문과 그 응답자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 내용과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리라 예측했던 것마저도 무색해졌다. 이 이야기의 전개는 시그네가 아닌 빌라드가 중점이 된다.
두 번째 충격은 곧장 밝혀지는 쌍둥이 형제의 정체였다. 그들도 그저 ‘의식’일 뿐이었다. 책장을 세 장이나 넘길 동안 등장한 생명체는 오직 빌라드뿐이었다.
이후 빌라드의 지난 일주일간의 행적을 나열한다. 쌍둥이 형제를 어떻게 불러왔는지, 시그네를 어떻게 발견하게 됐는지 그 과정이 묘사된다. 그리고 시그네의 관점으로 데이터 형태의 그녀가 보라그호 컴퓨터 안을 유영하듯 살피는 내용이 등장한다.
인간은 유한한 신체를 가진다. 무한할 수 없는 존재임에도 ‘영원’을 꿈꾸기도 한다. 데이터로 존재한다면 조금 더 오래 존재할 수 있고, 인체보다는 손쉽게 영원에 다가갈 수 있다. 일종의 존재로서의 ‘데이터’로 이루어진 데이터 세상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시그네의 목표는 완전한 데이터 세상의 지구를 만드는 것이었을까?
생체 신호인 척 유인하고 유일한 생명체인 빌라드를 고립시킨다. 그 고립은 결국 죽음을 불러올 것이고 그것은 인체의 멸망을 뜻한다. 유한한 신체를 가진 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그 끝을 마주하는 감정은 두려움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본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낄 수 있다.
막연한 죽음의 공포를 전할 뿐 아니라 존재론적 논의에 도달하는 이야기에 책장을 다시금 앞으로 넘겨볼 수밖에 없었다.
다섯 페이지를 채우는 경고문. ‘주의’라는 말로 시작하는 문장들. 나뉘지 않은 문단. 어느새 그것이 경고문인 것을 망각하고, ‘주의’를 지운 채 읽어 내려가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조합이 또 그럴싸하게 보이는 듯한 경고문 앞에서 그 빠른 호흡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는 마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서술한 내용처럼 일관적이지 않고 때로는 논리성도 잃는다. 그리고 그 서술 자체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이 있다. 보통의 이야기에서 기대하고 추측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의 낯섦이 뒤따른다.
특히나 마지막 문장은 찝찝하기까지 하다. 허구의 이야기인 것을 왜 주의하여야 할까? 어떠한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찝찝함이 손끝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이처럼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는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호러의 이야기가 아니다. 귀신이 등장하고 범죄에 노출되는 것이 아닌, 한 차원 높은 호러를 담는다. 무서움, 두려움, 섬뜩함, 찝찝함.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이야기가 모여 호러 픽션이 담아낼 수 있는 최대치의 ‘공포’를 선사한다. 두세 번 곱씹어야 하는 이야기가 진가를 발휘하며 현대의 호러를 재조명한다. 최고의 호러 픽션이라는 수식어에는 ‘이야기’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호러가 아닌 우리의 삶을 조명하는 이야기다.
아트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