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외치는 아이들의 마음을 전하다

아동 학대와 방임 문제를 다루는 연극 <맆소녀>

by 서월

혹자는 묻는다. 콘텐츠가 무엇이냐고, 문화예술을 택한 이유가 무엇이기에 그렇게 힘을 쏟느냐고 말한다.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닌 듯 일방적인 문장이 쏟아진다. 그러한 말 앞에 보이고 싶은 공연을 만났다. 그들이 말하는 ‘필요’를 설명할 수 있는 공연, <맆소녀>를 관람하게 되었다.


1. 맆소녀(The Silent One) - 극단 생존자프로젝트 - 포스터 370 520.jpg

<맆소녀(The Silent One)>는 한 소녀의 실종과 그 침묵의 기원을 추적하는 구조를 따라간다. 여러 이야기가 중첩되어 전개되는 만큼 다소 복잡하다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캐릭터마다 확실한 성향과 서사를 통해 메인 서사를 설정하고, 동시에 인물의 개인 서사를 통해 아동 성범죄와 가정 학대, 방임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



명무는 세이프코리아의 후원을 받아 자란 덕분에 한국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하며 연영과 수월하게 소통한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연영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언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연영에게 ‘선생님이 도울 수 있는 건 의료행위와 후원뿐’이라고 말한다. ‘같은 운명을 지닌 이들끼리 견딜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종교적 신념이라고 하기에는 세상을 향한 그의 태도가 지나치게 회의적이다.


그는 아동 유기의 문제 속에서 부모의 부재를 홀로 감당하며 자라나야 했던 인물이다. 이에 부모라는 존재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다. 까이에게 ‘엄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는 침묵으로 이어진다. 까이가 겪는 상황은 운명일 뿐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그 운명을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한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방관할 뿐이다. 명무를 통해 침묵하는 어른을 보여주면서도 그렇게 성장하게 한 사회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기회를 만든다.



연영은 학대 가정에서 자라 그 영향으로 결혼 후에 아이를 낳지 못하고 이혼하게 된 인물이다. 이후 의사로서 의료 지원에 나가 까이를 만난다.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반복하는 아이들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내뱉고 기찻길 내지는 짐승의 울음을 닮은 소리를 흉내 낸다. 이내 100까지 세면 끝내주겠다고 했다며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들이 연영 자매에게 있었던 일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연영은 자기 동생이 학대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트라우마로 인해 사라졌던 까이가 명무와 함께 있을 때 나서지 못했다고 말한다. 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고 인정한다. 직접적인 가정 학대 문제가 아니라 학대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마주할 문제에 관해 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영은 언니가 아니라 동생이었고,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논한다. 이로써 연영이 100까지 세면 끝내주겠다는 말을 들으며 폭행당한 장본인이었단 사실이 밝혀진다. 각자의 운명을 견딜 뿐이라고 말하는 명무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면 죄가 되나요?’라고 답한다. 그 운명과 상황을 거부한 끝에 연영은 착각과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인이 박인 듯 폭행 앞에 자유로울 수 없는 그의 상태를 통해 가정 학대의 심각성을 전한다.


98, 99, 100. 마침내 끝까지 숫자를 센 연영의 모습과 동시에 암전되며 극이 마무리된다. 100과 함께 찾아온 까만 어둠은 연영에게 남은 고통이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전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가정 학대는 쉽게 아물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을 전한다.



까이는 니코틴 중독과 거인증을 앓고 있는 8살 아이로, 난청으로 인해 원활한 의사소통이 불가한 상황에서 연영을 만나게 된다. 아동 성폭력 현장을 목격하고 그 범인이 디네쉬인 것까지 알고 있다. 또한, 까이가 자는 사이 명무가 그녀에게 접촉한다. 이처럼 까이는 아동 성범죄의 목격자이자 피해자가 된다. 그러한 까이 곁에는 침묵을 택한 어른들이 존재했고, 유일하게 연영만이 까이를 위해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까이의 도와달라는 수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아이의 말을 듣지 않는 어른들, 아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모습이다. 또한, 까이의 모친인 시마는 연영이 준비한 캠페인을 위한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으려 하고, 거부하는 까이에게 디네쉬와의 혼인을 강제한다. 모두 딸인 까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폭력과 다를 바 없이 보인다. 시마와 명무의 침묵, 디네쉬의 폭력성, 소통의 어려움 속에서 까이는 고통받지만 끊임없이 표현한다. 어른들이 못 본 척 지나치는 아이들의 처절한 목소리를 대변한다.



이처럼 <맆소녀>는 여러 시각에서 아동 문제를 바라본다. 학대나 방임이 어떤 상처를 남기고, 그렇게 성장한 어른들이 어떠한 세상을 만드는지 살핀다. 반복되는 문제를 끊어줄 도구는 관심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또한, <맆소녀>는 매우 다정한 공연이었다. 프로그램북 을 확인하고 가라는 말에 발걸음을 멈추니, 공연장 한쪽 공간에 QR코드가 프린팅되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 형태의 프로그램 북을 구매하지 않고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환경친화적인 듯해 좋았다. 이내 입장하여 착석했고 공연에 관한 안내 중 사이렌 소리와 관련한 공지가 이어졌다. 보통은 공연에 이러한 요소가 있다고 공지할 뿐인데 직접 사이렌 소리를 재생하여 주니 비상시 혼동될 가능성이 줄어들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편안한 관람을 위한 자유입퇴장석과 수어 번역 회차 등 관객의 편의를 위한 노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맆소녀>를 관람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를 아끼는 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더 친환경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아동 문제를 조명하여 더 나은 사회가 될 계기를 마련한다.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담배꽃의 꽃말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잊지 않고 알리겠다는 의지가 전해진다. 그 의지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콘텐츠는 이러한 역할을 지닌 것이다. 쉽게 알려지지 않는 문제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 문턱을 낮추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창구가 된다. 이에 <맆소녀>를 통해 전해지는 의지처럼 아동 관련 문제들을 잊지 않고 꾸준히 관심을 두겠다고 다짐한다.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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