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야기를 지루함 없이 이끌어 마침내 희망을 전하는 연극
연극 <퉁소소리>는 조선시대 평범한 삶을 살던 최척 일가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명·청교체기의 혼란한 소용돌이 속에서 뿔뿔이 흩어진 가족이 끝내 다시 해후하기까지 30년간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익숙한 느낌의 포스터가 눈을 사로잡았다. 순간 고선웅 연출가가 참여한 또 다른 공연이 떠올랐다. 해당 공연과는 전혀 다른 공연장에서, 완전히 다른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였지만 같은 연출가가 참여했다는 공통점 하나에 자꾸만 사로잡혔다. 그러한 이유에서 극의 내용 외에도 전반적인 연출에 관해 논해보고 싶다.
극이 시작하고 막이 걷히자 화려한 세트 없이 깔끔한 무대가 보인다. 무엇도 놓이지 않은 무대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고선웅 연출가의 이전 작품을 관람한 덕분에 앞으로 펼쳐질 무대를 기대할 뿐이다. 뒤쪽으로 넓게 보이는 무대는 시야가 트인 듯 개방감을 주고 배우들의 연기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2층 객석까지도 배우들의 목소리가 꽂히듯 분명하게 들린다. 또한, 여러 배역을 맡는 부분에서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최척과 옥영을 제외하면 극에서 주된 역할뿐만 아니라 여러 캐릭터를 연기한다. 리플렛에 스무 명의 출연진이라고 기재되어 있었지만, 본 극에서는 더 많은 출연진이 존재하는 듯 느껴진다. 또한, ‘묵자’의 역할이 연극을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새나 물고기를 표현하기도 하고 모기가 되어 최척 부자를 위협하는 것도 잠시 이내 나무가 되어 뜯기기도 한다. 아기 울음소리를 대체하거나 여러 소품의 등퇴장을 맡기도 한다. 특히 소품의 등퇴장에서 묵자는 극의 흐름을 이어가는 것에 큰 역할을 한다. 매 등퇴장을 암전으로 대체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배우들이 소품을 수거하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묵자는 연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이끌며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2층에서는 극히 일부만이 보이지만, 오케스트라 피트에는 국악기가 있었다. 오케스트라 피트를 활용하는 공연 자체도 많이 접하지 못했는데 그에 이어 피트에 국악기가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진위경이 최척을 치료할 때, 마치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연주하는 듯한 몸짓이 실제 연주 소리와 어우러지며 하나의 재미 포인트가 된다. 또한, 녹음된 음악이 아니라 현장에서 연주되어 전해지는 음악에는 큰 힘이 있었다. 인물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장치가 된 듯 구슬픈 가락이 심금을 울렸다.
무대디자인에 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무로 짜인 옛집을 닮은 무대 바닥은 대청마루의 형태라고 한다. 널찍한 대청마루는 혼례식이 벌어지는 마당이 되고 이내 바다가 되어 옥영 일행의 항해가 펼쳐지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퉁소소리>는 그 어떤 소품도 없이 시작한다. 하지만 화려한 세트 없이 깔끔하다던 평이 무색하게 여러 무대 장치가 등장하며 공간을 만든다. 대청마루가 어느새 바다가 되는 것에 위화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장치들과 오브제가 극을 가득 채우고 자각할 틈 없이 연극에 빠져든다.
자꾸만 최척에게 거절할 수 없는 명령이 내려지고 가족과의 이별이 반복된다. 그러던 중에도 최척과 옥영은 포기하지 않고 재회를 바라며 악착같이 살아남는다. 상처가 덧나 쓰러져도, 낯선 곳에 표류하고 배를 빼앗겨도 살아남으려 애쓴다. 살아있다면 언젠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란 희망을 전한다. 140분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관람하다가 끝내 전해지는 메시지에 무너진다. 기쁨의 의미인지, 슬픔의 의미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로 눈물을 흘리게 된다. ‘안녕히 사세요.’라는 문장으로 퇴장 직전까지 관객을 위로한다. 관객의 안녕을 바라는 이야기를 가득 안은 채 그 여운을 느끼며 공연장을 나선다.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만날 거라는 믿음, 언젠가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희망, 실수하고 무너져도 괜찮은 삶. <퉁소소리>는 그러한 메시지를 전하며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감정을 선물한다. ‘괜찮아’, ‘다이죠부’, ‘메이콴시’. 여러 국가의 언어로 전하는 괜찮다는 위로가 남는다. 당장 쓰러져도 괜찮다. 언젠가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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