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거의 집에만 있다 보니 어느 순간 한계에 달하는 느낌이 올 때가 있다 내가 위험한 상태말이다 (지금 당장 죽어도 무섭지 않은 ,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상태를 말한다)
나는 사람들과 만나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는데 거의 집에만 있고 만나는 사람도 없다 보니 심하지는 않지만 우울증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잘 버텨오다가 어느 날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sos를 요청하곤 했다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 중 친척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언니도 어렸을 때 대장암에 걸렸지만 다행히 초기에 발견된 지금은 건강하게 건강을 회복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힘들 때마다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투병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힘듦과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아프지 않아 본 사람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처음에는 힘들 때마다 아무에게나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오히려 상처받았던 경험이 더 많았다 항상 ' 아 괜히 말했다 그냥 말하지 말걸' 말하고 나서 후회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무한테나 나의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다 친구한테도 말이다 내가 나의 아픔에 대해 털어놓는 사람은 비슷한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다 그들은 내 마음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해 주니까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아픔을 겪어 본 사람에게만 고민을 털어놓고 나서는 대화를 나눈 후에 상처받았던 경험은 거의 없어졌다
그렇게 그날도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만나러 갔다언니는 나의 고민과 한탄에 대해서 곰곰이 듣더니 이런 말을 했다
"너는 내가 만난 사람 중 다섯 손가락에 드는 대단한 사람이야"
"언니 지금까지 내 말 제대로 들은 거 맞아? 나는 계속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한심한 사람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데?"
"아니 하루야 너는 항상 네가 위험할 것 같은 순간을 감지할때마다 나한테 도움을 요청해 왔잖아"
"그건 내가 약하니까... 혼자서는 이겨내기 힘들 것 같아서 그런 건데 "
"나는 너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몇 번 만나본적이 있는데 너처럼 네가 위험할 것 같은 순간을 감지하고 도움을 요청해서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통 그런 순간에 무너져서 결국에는 자신을 놓아버린 사람도 나는 몇 명 본 적이 있어 "
언니랑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내가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힘든 순간에 계속 무너지는 것도 , 혼자서 이겨내기 힘들어 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내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도움을 주기보다 도움을 요청하는 게 더 힘들다 특히 나처럼 자존심이 센 사람한테는 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계속 혼자 참고 고심하고 망설이다가 몇 번의 시도 끝에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한 사람 이었나? '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