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 늦깎이 임산부의 논어 태교 이야기
대학 다닐 때였다.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나의 기숙사 룸메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내가 힘들 때마다 친구는 작은 메모지에 성경 구절 하나씩을 적어 위로했다. 친구의 마음이 너무나 고마워 나는 내가 전공한 동양 고전 특히 논어 구절로 친구에게 화답했다.
그때 주고받은 쪽지로 우리는 서로의 경전에 스며들었다. 친구는 논어를 좋아했고, 나는 성경에 관심이 생겼다. 무엇보다 친구의 마음과 상황에 맞는 논어를 찾으며 나 역시 논어를 통해 위로를 얻었다.
내가 학교 아이들에게 내려주던 논어 처방전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침 조례시간에 아이들에게 논어 구절 하나씩을 들려주었다. '저 사람이 또 저러네.' 멍한 표정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표정을 지을 때마다 몇 번이고 나를 좌절하고 흔들리게도 했다.
하지만 콩나물시루처럼 허무하게 물이 빠지는 듯해도 시간이 지나면 콩나물이 자라듯 아이들은 점점 변해갔다. 화를 내며 잔소리 듣는 것보단 논어 구절이 더 좋았으리라. 지금도 졸업생들이 찾아와 나에게 세뇌당한 것 같다며 웃으며 말한다.
친구의 마음을 움직이고 제자들을 움직인 논어 처방전을 이제는 나 그리고 아기에게 시작하려고 한다.
오늘 읽은 구절은 논어 공야장편 23장 미생고 이야기다. 정직함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구절이다.
스스로가 정직한가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정직함의 반대인 거짓으로 생각해 본다면 거짓으로 사는 사람은 많이 없으니까.
나 역시도 스스로 어느 정도 정직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없는 사실을 만들어 말하고 행동하는 일은 하지 않으니까.
나는 정말 정직한 사람일까...?
지난주 같은 직장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람으로 힘든 일을 토로하다가 험담까지 하게 되었다. 상황을 잘 모르는 나는, 동료의 말만 듣고 무조건 공감해 주고 위로했다. 실상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편들었던 것이다.
오늘 남편과의 일은 또 어떤가. 정말 먹기 싫은 음식인데,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이기에 억지로 먹고 싶은 척했다. 결국 먹고 난 뒤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거절이 어렵고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게 두렵다. 나를 미워하게 될까 봐.
그런 나와 비슷한 인물이 논어 속 미생고였다. 미생고는 당시 정직함으로 이름난 사람이었는데, 그런 미생고를 두고 공자는 말했다.
"누가 미생고를 정직하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식초를 빌리려 하자, 그의 이웃집에서 빌려다 주는구나."
하루는 미생고에게 누군가가 식초를 빌리러 왔다. 마침 미생고 집에도 식초가 똑 떨어져서 빌려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생고는 없다는 말을 못 하고 이웃집에 가서 식초를 빌려다가 자신이 빌려주는 것처럼 주었다. 거절하기 힘든 마음이었을 테다.
거절이 어려운 나는 미생고의 이런 마음이 십분 이해한다. 나 역시도 거절을 못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무언가를 한 적이 참 많으니까. 그런데 거절을 못하는 거랑 정직함이랑 무슨 상관이 있을까.
미생고의 인간성은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마음 약한 사람이거나 친절이 몸에 베인 좋은 사람일지 모르겠지만, 거절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속이며 친절을 베푼 모습이 공자에게는 거짓으로 보였다. 자신의 뜻을 굽혀 남의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을 공자는 정직하다고 보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라도 동료가 나를 싫어할까 봐... 남편이 실망할까 봐... 내 마음을 속인 것, 그것이 바로 정직하지 못한 태도인 것이다.
아닌 줄 알면서도 모른 척할 때가 많다. 불의를 보면 눈감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이제 부모가 되는 이상 아이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때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 정직의 가치를 가르칠 때 미생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정직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지혜를 알려주고 싶다.
누군가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스스로에게 정직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