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 늦깎이 임산부 이야기
습관성 유산, 절박유산, 40대 임신...
여러 임신 이슈를 뒤로 하고, 자궁에 커다란 혹이라는 새로운 진단을 가진 채 임신 8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산부인과를 혼자 갈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단단해졌다. 더 이상은 슬퍼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 몇 개월간 역경(?)을 겪으면서 그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았다. 내게 남겨진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아기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아기의 씩씩한 발길질은 나에게 희망이 되어 주었다.
5년 전,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마냥 핑크빛 미래를 기대하며 사두었던 아기 옷 세 벌을 꺼냈다.
첫 아이 유산 후 몇 날 며칠을 울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은 신발이며, 초음파 사진을 치워 버렸다. 붙들고 있으면 아기를 떠나보내기 어렵다며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옷장 구석에 꽁꽁 넣어둔 아기 옷 세 벌은 전쟁을 모르고 지나가는 깊은 산골 마을처럼 쓰레기통 행을 면했다. 그리고 5년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나 작았나... 자세히 마주한건 이번으로 두 번째다. 처음 샀던 그때와 지금... 옷장 구석에서 발견한 순간 울컥했지만.. 마냥 웃으며 이 옷들을 다시 볼 수 있음에 너무 감사했다.
옷 세 벌을 시작으로 우리 부부는 아기 물건을 하나씩 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쉽지만은 않다. 젖병부터 브랜드와 종류가 다양했다.
이 사람이 좋다니까 여기 기웃
저 사람이 좋다니까 저기 기웃
어떤 날은 하루종일 인터넷만 보다가 끝났다. 국민템이라며 당장 사야겠다 싶다가도 우리 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포대기 하나로 다 키우셨는데... 굳이 살 필요가 있나 싶어.. 묵직한 어깨 근육통만 남긴 채 잠자리에 들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휴직으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다. 부자면 얼마나 좋을까...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환경을 생각하자며 애써 눈 감아보지만 어느새 나는 SNS에서 엄마와 아기를 위한 값비싸고 성능 좋은 육아템을 보며 부러워하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인데 이런 것도 못해주나... 싶은 마음에 비싸고 좋은 걸 사버릴까 하는 마음도 충동적으로 일었다.
산후조리원, 산후도우미, 육아템, 그리고 휴직.... 출산과 육아의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연히 들른 도서관에서 정리 전문가가 쓴 <잘 되는 집들의 비밀>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사실은 조그맣게 쓰인 '부와 운을 부른다'는 말이 더 눈에 들어왔다.
부와 운... 나에게 필요하다 싶어 그 자리에 앉아 책을 단숨에 읽었다.
값비싼 물건을 척척 소비하는 것보다는
진정으로 소중한 물건을 선택하고
소유하기를 선호했다.(88쪽)
부와 운이 넘치는 집에는 주인의 소중한 물건으로 꽉 차있다고 했다.
어느 집의 의자 이야기가 인상 깊었는데, 의자가 아주 멋지고 좋아 보여서 칭찬을 했더니 마음에 드는 의자를 찾지 못해서 한동안 의자 없이 생활을 했다는 거였다.
만족하는 의자를 들이고 그곳에 앉았을 때 그 마음은 얼마나 벅찼을까....
그래... 이거였다!!
남들이 좋다고, 인기 많다고, 유행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나에게 좋은 게 가장 좋은 거였다.
결국 잘되는 집, 곧 부자들의 집에는 그들의 가치관과 철학이 담겨 있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남들이 좋다는 물건, 비싸고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이 아니라 흔들림 없는 가치관과 철학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철학.....
다시 내가 좋아하는 고전 읽기를 시작해야겠다. 내 가치관과 철학을 분명히 세워야겠다.
나는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을 세울 수 있을까......
넘쳐나는 육아템과 넘쳐나는 육아에 대한 이야기에서 휩쓸리지 않을 중심을 지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