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 늦깎이 임산부 이야기
임신 12주 차, 드디어 출혈이 멈췄다.
현재만 집중하던 우리 부부도 어느덧 10개월 후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눈은 나, 코와 입은 너. 우리를 꼭 닮은 아기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번졌다.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다."
고사리 손으로 밥을 차려준 이야기, 엄마가 울 때 꼭 안아준다는 이야기, 아무리 적어도 맛있는 건 나눠준다는 이야기. 지인 자녀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꼭 건네던 말이다. 부러우면서도 평생 가져보지 못할 기쁨이라 생각했기에 마음 한켠 씁쓸했다.
그 기쁨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안 먹어도 배부를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럼. 당연하지. 그런데 우리 지금은 겸손하게 보내자. 아기가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자."
두 번의 유산은 우리를 초심으로 돌려놨다.
그래도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상상은 힘든 임신 시기를 견디게 해 주었다.
"진이 다 빠져. 공 굴리기 하다가 풀썩 주저앉았어."
유치원을 다니는 둘째 체육 참관 수업에 참여하고는 체력 고갈을 호소하는 동생이다. 노산이라며 나에게 체력 단련을 단단히 일러둔다.
나는 42세 늦깎이 임산부다.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아침이면 우두둑 떨어지는 남편의 머리카락과 계단 몇 칸만 오르면 헥헥거리는 나, 우리의 현실이 눈에 보였다. 무사히 출산한다면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갈 때쯤이면 우리는 50대를 맞이하고, 스무 살이면 우리는 환갑이다.
뱃속의 아이가 예쁘게 커가는 상상만 했지, 우리 부부가 늙어가는 현실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이가 우리를 부끄러워하면 어떡하지...?"
"우리가 그렇지 않으면 되지."
맞다. 흔들리지 않을 소신이 필요했다. 늙음은 붙잡을 수 없어도 마음은 붙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상의 풍파를 좀 더 겪은 늦깎이 임산부. 내세울 거라곤 멘탈뿐이다.
새 마음을 채우려면 내 안에 꽉 찬 마음을 비워야 한다. 욕심부터 없애기로 했다.
흔들리지 않을 소신을 가지려면 '나'를 발견해야 한다.
'남'에게 맞춰진 삶에서 '나'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산 옷들, 창고에 가득한 비상식량들, 읽지도 않은 책들.. 물건부터 비우기 시작했다.
식탁 위도 싹 비웠다.
비워진 식탁 위는 소신을 채우기 좋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하루하루 글을 쓰며 나를 채워갔다.
나의 것만 남겨진 그곳에 내 소신이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하나씩 쌓아간 소신은 1차 기형아 검사를 앞두고 와장창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