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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온쌤 8시간전

의사 선생님이 알려주신 최고의 태교

42세 늦깎이 임산부 이야기

노산, 절박유산, 습관성 유산...

나는 40대 고위험군 임산부다.



매일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나와 맞지 않은 물건과 세상에 대한 욕심을 비우며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그렇게 마음의 평화가 조금씩 찾아오는가..... 싶었는데 의사 선생님의 작은 의혹에 무너져 버렸다.  



"목투명대가 약간 두껍네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얇아질 수도 있으니 정밀 초음파까지 기다려 봅시다."



'목투명대...?'


처음 듣는 단어였다. 아니 요 며칠 자주 들락날락하던 인터넷 카페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목투명대가 얇아야 되는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건 분명했다. 늘 인자한 미소를 짓고 계시던 의사 선생님 두 눈에 걱정이 읽혔다.



지난 두 번의 유산으로 임신 기간의 최대 고비는 아기 심장박동인 줄 알았다. 아기 심장 소리만 들으면 큰 산은 넘은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 번째 임신에는 '40대 고위험군 임산부'라는 큰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너무 힘겨운..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산부인과를 빠져나와 차를 타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진료 때마다 들렀던 산부인과 옆 과일 가게도 지나쳤다. 과일 사 먹을 자격이나 있나.. 싶었다. 이 모든 게 내 몸을 잘 챙기지 못한 탓 같았다. 좀 더 건강하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 내가 좀 더 젊었더라면... 늙어서 아이를 욕심낸 내가 원망스러웠다.



양가 어른들의 환한 미소가 스쳤다. 너희 둘만 잘살면된다시던 분들이 임신 소식을 들으시곤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더랬다. 민폐 끼치며 휴직한 직장은.... 또 어떡하나.. 앞이 캄캄했다. 역시 우리끼리만 알았어야 했다.



인터넷으로 목투명대만 검색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희망적인 글에 파이팅을 외치다가도 슬픈 글에 이내 눈물을 쏟았다. 매일 울며 잠들었다.







검진일이다. 오늘도 두 시간 남짓한 긴 시간을 기다렸다. 내 차례가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결과를 마주하기가 무서웠다.  



"정상범주네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의사 선생님은 걱정 많았다며 미소를 지으셨다.


"일주일 동안 많이 울었어요."


절박유산 진단을 받을 때도, 위험하다는 말을 들을 때도 나는 줄곧 괜찮은 척했다. 내탓으로 위험한거니까. 의사 선생님께 부담드리기 싫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선생님께 하소연을 했다. 위로받고 싶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해요. 이젠 울지 말고 조금씩 밖을 걸어보세요. 자연의 변화를 느껴보세요. "


말없이 안도하는 우리 부부에게 선생님은 자연을 느끼라고 하셨다.


"어제와 오늘 분명 나무가 달라져 있을걸요? 안 보이던 꽃도 보일 테고, 나뭇잎도 더 푸를 테고... 가만히 들어보면 새소리도 들려요. 태교는 다른 게 아니에요. 엄마가 행복한 거예요. 그리고 하나 더 보태자면 건강한 음식 먹는 거지요."


그러고 보니, 임신 두 달 동안 하늘 한번 본 일이 없었다. 집 앞 풍경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슬픈 생각에만 휩싸여 멍하니 누워있었을 뿐이었다. 웃긴 건 하루 5분 태교라며 펴보지도 않은 책을 머리맡에 둘 뿐이었다.



오늘은 진료를 마치고 남편과 손잡고 거리를 걸었다. 발밑에 들꽃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나를 짓누르던 불안함이 서서히 걷히는 듯했다.



늦은 임신이라며 불안에 떨고 걱정에 휩싸여있는 동안 나는 뭘 놓쳤는가. 나에게 선물처럼 찾아와 준 아이와의 지난 몇 주를... 축복 같은 순간을 놓쳤다.






자려고 누웠는데 늘 들어가던 카페에 나와 비슷한 임신 주차의 산모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 위에서 삐뚤빼뚤 얼른 볼펜과 노트를 가지고 와서 옮겨 적었다. 내 마음 약해질 때마다 오늘 의사 선생님의 태교 이야기와 함께 떠올리며 마음에 새기라 다짐했다.



"임신하고 예민함과 화가 줄었어요. 그냥 다 웃기고 즐겁고 재밌고 행복해요........ 남편도 더 사랑스럽고 그냥 마냥 행복해요. 몸의 변화도 인체의 신비 같아서 그냥 마냥 신기하기만 해요. 마냥 행복한 임산부 생활이에요."



임신 17주, 자궁과 유방에 있는 커다란 혹으로 또다시 고위험군이 되었다. 하지만 현재 내 앞에 놓인 이 선물 같은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로 다짐해 본다.







그 날밤 침대 위에서 카페 글을 옮겨 쓴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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