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 늦깎이 임산부이야기
휴직계를 제출했다.
임신 10주 차, 일상이 멈췄다.
15년 직장 생활의 1막이 내렸다. 학교와 집만 오가던 단조로운 삶에서 '무'의 상태로 들어갔다. 주말에 집으로 오는 남편을 통해 세월의 흐름만 느낄 뿐이었다. 아침을 알리는 인간극장을 보고 나면 공허함이 찾아왔다.
내 유일한 취미였던 음악 들으며 산책하기.
그러고 보니 음악을 듣지 않은지 4년째다. 플레이리스트는 2020년 노래를 끝으로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엄마가 하늘나라로 갑작스럽게 가신 그때였다.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차단했다. 허망하게 간 엄마를 위로하기 위한 내 나름의 약속이었다. 임신도 포기했다. 유산할 때마다 따뜻하게 안아준 엄마품이 너무나 그리웠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진다고 했던가.
웃는 날이 차츰 늘어갔다.
그렇게 아이도 찾아왔다.
오늘도 아침 인간극장을 보고는 멍하니 누웠다.
'엄마다.... '
엄마와 냇가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갑자기 시냇물 속 큰 가물치가 내 품속으로 들어왔다. 그 큰 물고기를 가물치라고 아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엄마는 내 품에 물고기가 들어오는 걸 보며 웃고 계셨다.
꿈이었다. 꿈에서라도 엄마를 만나고 싶어 아무리 생각하며 잠들어도 보이지 않던 엄마였다.
우리 아기..
엄마가 보낸 천사가 맞구나...
아기를 더 열렬히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산책부터라도 시작하려고 해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
옷장에는 당장 출근할 수 있는 출근복만 가득했고,
냉장고에는 아침, 저녁으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가루와 간편식뿐이다.
온통 나에게 불편하면서도 세상에 맞춰진 삶을 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뼛속까지 내향인인 나는 일기장부터 펼쳤다. 내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나부터 돌봐야 한다. 지금은 아기가 곧 나다.
그때가 아마 이 브런치북 첫 번째 글을 쓴 날이었을 거다. 엄마가 되기 위해 세상에 알을 깨고 나온 첫날.
내가 좋아하는 돈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