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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Jul 31. 2020

이방인은 미니멀리스트

미니멀리스트/ 미니멀리즘이 요즘 한국뿐만 아니라 스위스에서도 아니 전 세계적으로 대세인 것 같다. 


내 친구도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미니멀리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 비우기 연습을 한다며 이번 주말에는 옷장 정리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하는 말.

" 넌 왜 이렇게 항상 가볍게 다니니? 난 네가 짐이 많은 걸 본 적이 없어. 너희 집은 미니멀리즘의 전형인 것 같은데? 이제는 살림살이가 좀 늘어나긴 했니? 모든 아시안들이 그런 거야 아님 너만 그런 거야?"


그 친구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한 후, 집들이에 초대되었다가 우리 집에 소파가 없고, 의자는 단 2개밖에 없다는 사실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었다. 사실 처음 이사했을 때는 집도 좁은데 소파까지 놓고 싶지 않았고 카펫에 깔고 앉을 쿠션 몇 개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좌식이 불편한 서양인 6명을 초대해 놓고 보니 이 친구들에게는 바닥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던 것 같다. 또 집에 6명을 제대로 대접할 접시나 컵, 와인잔 등등도 없었다. 내 부엌에는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 나이프와 포크, 수저 각 2개씩 그리고 사이즈별로 다른 그릇들 하나씩이 전부였다. 그 이후로 나는 마침내 침대보다 큰 소파베드를 들이게 되었고, 살림살이도 조금은 더 갖추어졌다.  하지만 그때의 일을 아직도 내 친구들은 아주 예의 바르게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말하곤 한다.   


집들이 할 당시의 우리집 모습.  그때보다 지금은 살림살이가  그래도 많아졌다.


나는 미니멀리스트라기보다는 '가볍게 다니는 사람'으로 통한다. 어떤 여행을 해도 1주일 이하의 여행이면 20리터짜리 가방 하나로 모든 짐이 다 커버가 되고 6개월 이상의 여행이나 프로젝트를 가더라도 배낭으로 바뀌는 48리터짜리 캐리어 하나만 있으면 된다. 가져갈까 말까 망설여지는 물건이 있으면 무조건 가져가지 않는다. 


2018년 제네바로 긴 떠돌이 생활 끝에 정착한다며 한국에서 떠나오던 날도, 내 짐은 컴퓨터가 든 백팩 하나에 나와 7년을 함께 한, 16킬로그램의 캐리어 하나가 전부였다. Plainpalais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할 때는 나름 짐이 좀 많아져서 친구의 캐리어 하나를 빌려서 캐리어 2개로 이사를 왔다. 


내가 처음부터 가볍게 다니는 사람은 아니었다. 2008년 스웨덴으로 공부하러 떠날 때, 나는 처음으로 내 몸집만 한, 내 힘으로는 혼자 들 수도 없는 이민 가방에 이것저것 많이도 싸가지고 갔다. 그 이후로도 엄마에게 부탁해서 필요한 건 소포로 받았고, 중고품 가게에 가는 취미가 생겨서 자질 구래 한 물건이나 옷도 참 많이 샀었다. 그렇게 2년의 스웨덴 생활이 끝나고 태국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을 때, 나는 내 기숙사 방 곳곳에 숨어있는 물건의 무게에 압도당했다. 거의 1주일을 정리를 하고, 친구들에게 물건을 주고, 중고품 가게에 기증을 하고, 한국으로 2박스의 짐을 부쳤음에도 짐은 줄어들지 않았다. 

정리할 건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코펜하겐 공항에서 나는 무게 초과로 내 가방의 거의 3분의 1이 되는 짐들을 다 덜어내야 했다.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그 짐들을 가져갈 수도 있었는데,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공항에는 나 혼자였기에 덜어낸 물건들은 어쩔 수 없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정리하고 또 정리해서 필요하다고 가지고 온 것인데 결국은 버려야 했고, 지금은 그게 어떤 물건들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방콕 가는 비행기에서 버려진 내 물건들을 생각하니 괜히 눈물이 났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제 이방인으로 살 것이기 때문에, 이방인은 언제나 짐을 싸서 거처를 옮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감당하지 못할 짐만 가지고 살자고 결심했다. 


그 이후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는 한 곳에 1년 이상 머무른 적이 없이,  한국에서든 아니면 외국에서든 3개월 에서 6개월마다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우습긴 하지만, 잘 꾸미고 잘 입고 다닐 필요가 없어서 많은 옷가지가 필요 없고, 빨래가 가능한 정도만 가지고 가서 옷들은 거기 있는 동안 열심히 입고, 떠날 때는 버리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다. 비싼 물건이 있으면 도둑맞을까, 비와 먼지에 상할까 걱정만 생기니 살 필요도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었다. 살까 말까 망설여지는 물건이 있으면 가져가지도 사지도 않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내 짐은 6개월 프로젝트를 가게 되어도 10킬로가 넘는 적이 없었다.

일주일 여행 정도는 이 배낭 하나면 충분하다. 


제네바에 '정착'이란 걸 하게 되었을 때도,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가볍게 살아보자고 했다. 그래서 모든 물건들은 딱 하나 혹은 두 개만 샀고 가구도 없으면 안 되는 것만 장만했다.  옷은 이미 충분히 있으니 더 이상 사지 않았고, 옷을 안 사니 아파트 작은 붙박이장과 정리함이 있으니 옷장도 살 필요가 없었다. 우리 집 냉장고는 소위 '여관 냉장고'여서 음식들을 쟁여 놓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렇게 살게 된 건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는 의도는 아니었고, 내 안에는 항상 떠돌아다니는 이방인이라는 무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살고는 있지만, 제네바가 앞으로 영원히 내가 있을 곳은 아니고, 언제든 미련 없이 그리고 빠르게 떠날 수 있으려면 나와 내 주변을 항상 가볍게,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사는 방식이 정답은 아니지만, 어쩔수 없는 이방인인 나에게는 잘 맞는다. 그리고 그 가벼움이 내 마음 역시 가볍게 간단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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