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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Aug 02. 2020

내가 여기에 글을 쓰는 이유

- 언어능력 총량의 법칙 


- 나는 사람의 언어능력의 총량은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쓰지 않는 언어는 퇴화하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한국어가 슬프게도 그렇다. 내가 언어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아니어서 더더욱 그렇다. 한국어는 내 모국어이고 내가 가장 정확하게 잘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이지만, 2008년 이후로 한국에서 지내지 않는 이상 한국어를 쓸 일은 주말에 한국에 있는 식구들이나 친구들과 통화할 때나, 가끔씩 인터넷 뉴스로 한국 소식을 읽을 때 혹은 유튜브에서 무한도전 등등을 밥 먹을 때 보는 게 전부이다. 


- 영어로 일하면서 10년 넘게 지내고 있지만  전에도 썼듯이 내 영어 실력 또한 국제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의 레벨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유창하지 못하다.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을 가본 적 없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스웨덴에서 공부를 해서 소위 내가 말하는 영어는 근본이 없다. 간단명료하게 돌려 말하지 않고 의사표시는 할 수 있지만, 국제기구에서 말하는 아주 고급 영어나 외교적인 수사 표현은 할 줄 모른다. 

그리고 불어는 더 심각하다. 알아듣는 건 알아듣는데 입만 열면 말하는 게 근본이 없음이 3분 안에 드러난다. 사실 불어 또한 체계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서, 특히 불어로 격식을 갖춰서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써야 할 경우가 생기면 나의 일천한 실력이 부끄럽게도 드러난다.


- 문제는 이렇게 두 가지 언어를 쓰면서 살다 보니,  내가 가장 잘하는 한국어 실력 또한 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어로 된 어려운 텍스트들은 이제 읽고 이해하는 데 시간이 상당히 걸리고, 부끄럽지만 읽어도 잘 모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튜브에서 보는 타일러 라쉬 아니면 비정상 회담에 나오는 패널들의 한국어 실력은 정말 존경할 만하다. 그리고 그 정도의 실력을 외국인이 갖추는 건 타고난 재능과 뼈를 깎는 노력에만 가능한 일이다. 나는 안타깝게도 재능도 없고 게을러서 노력도 하지 않는다.

 

- 가끔씩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걸 표현할 정확한 단어와 문장이 생각나지 않아서 답답할 때가 있다.  그나마 가장 자주 쓰는 영어조차도 어설픈 불어와 섞이다 보니 프랑스식 영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결론적으로는 제대로 사용하는 언어는 0개가 된다. 

아직까지도 불어가 난무한 회의에서는 중요한 내용을 놓칠까 신경이 곤두선다. 대체로 고정관념이겠지만 실제로도 불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말이 특히나 많은 편이다. 그래서 몇 마디라도 하려고 하면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하다. 그런 회의에 참석하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가끔씩은 하고자 하는 말은 했지만 정말 어린애가 종알대듯이 말했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다. 또 가끔은 불어로 진행되는 회의 중에 꿋꿋이 영어로 내 의견을 전달하기도 한다.


- 내가 불어를 사용하는 프로젝트에 있었을 때, 다들 불어를 모국어에 가깝게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말 못 하고 어리바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곳에서는 영어를 편안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나 역시도 불어 실력을 향상해 가겠다는 동기를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이 못 알아들어도, 내 표현이 정확한지 의심이 가더라도 줄곧 불어만 사용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불어 실력이 나와 비슷한 한 동료를 만나게 되어서 어느 순간 둘이 영어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말문이 터져서 신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동료들이 모두 우리 둘이 이야기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한 동료가 하는 말, 네가 그렇게 말을 잘하는지 몰랐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너 정말 똑똑해 보인다. 



- 하고 싶은 말은… 해외에서 일하고 산지 10년이 넘은 나이지만, 언어는, 외국어는 어렵다. 또 한 언어를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처럼 말하고 쓰기란 더더욱 어렵다. 안타깝게도 체류기간이 길어진다고 해서 실력이 크게 일취월장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내 주변에는 3개 국어를 기본으로 하고, 5개 국어 정도는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특히 초등학교 6학년 때야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우리 세대에서는 그런 기적은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외국어를 사용할 때는 간단하고 명확하게 전달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언어는 내 모국어이다. 이것이 내가 이 곳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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