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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Aug 03. 2020

스위스_ 그린델발트 & 주변 걷기 4

Zweilütschinen-Wilderswil-Interlaken

어제 오후부터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몰랐다. 비는 오후나 되어야 그친다고 하니 오늘 산에 올라가는 건 힘들어 보였다. 날씨도 자기 복이니 어쩔 수 없었다. 역시나 방에서 내리는 비와 구름에 사라졌다 다시 얼굴을 내미는 에이거 산을 구경하면서 멍하니 있었다. 


12시가 다되어 가니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조금씩 비추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야 할까 또 고민을 했다. 그린델발트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갔다 올 수 있는 짧은 코스를 갈까 아니면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이라도 갔다 올까. 지도를 열심히 보다가, 인터라켄에서 그린델발트까지 올라왔던 길을 반대로 걸어서 내려가 보자고 생각했다. 풍경이 어마 무시하게 아름다울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고, 힘든 오르막 내리막 산행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걷고 싶었다. 그래서 가볍게 챙겨서 인터라켄행 기차를 탔다.

중간에 Zweilütschinen(발음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역에 내려서 거기서부터 인터라켄까지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이 역은 그린델발트와 라우터브루넨행으로 기차가 갈리는 중간 지점이다. 유명한 길도 아니고 비가 막 그친 시점이라 역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Wilderswil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특별할 것 없는 스위스 동네 시골길이었다. 옆으로 산과 계곡이 있고, 기차가 지나다니고 가는 길 중간중간에 작은 마을들이 있는 평범한 길이었다. 1시간쯤 평탄한 길과 작은 숲 속 길을 번갈아가면서 걸으니 Wilderswil에 있는 교회가 나왔다. 


여기서 인터라켄 호숫가에 있는 마을인 Bonin까지 걸어서 호숫가를 따라 걸으면 될 것 같았다. Bonin까지 가는 길은 작은 수로를 따라 걷는 숲 속 길이었는데 평탄하고 고즈넉했다.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러  혹은 호수까지 수영하러 많이 오는 듯한 길이었다. 대단한 풍광은 아니었지만 좋았다. 거대한 설산들에 압도당하다가 온화한 호수와 숲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비가 막 그친 땅은 촉촉했다. 1시간쯤 걸어서 Bonin에 도착하자 호수가 보였다. 

스위스에 처음 왔을 때는 호수가 너무 크고 예뻐서 감동했었는데, 제네바의 레만호뿐만 아니라 여러 호수들을 보다 보니 그때의 감동은 없었다. 하지만 탁 트인 호수를 보니 시원했다. 수영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잠깐 발만 담가보니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가볍게 포기했다. 벤치에 앉아서 사람 구경, 물 구경을 열심히 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인터라켄 기차역 쪽으로 이동. 역시나 50분 정도 걸었다. 호수를 따라서 걸을 수 있는 트레일이 있어서 그 길만 따라가면 돼서 아주 편안하게 걸었다. 요즘에는 패들 보트 타는 사람들이 참 많이 보였다. 친구가 패들 보트를 산다고 해서- 스위스 사람들 집에 가 보면 창고에는 다들 스키, 스노보드, 카약, 텐트, 보트 등등 각종 스포츠 용품이 가득하다- 스포츠 샵에 같이 갔었다. 맑은 호수에 나 홀로 노를 저어서 떠 다니면 참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차도 없는 내가 패들 보트 한 번 타자고 내 몸집보다 더 큰 걸 버스에 실어서, 호수까지 끌고 가는 건 무리다.  


약 3시간 정도 기분 좋게 걸어서 인터라켄역에 도착했다. 사진을 찍은 것도, 감탄할 만한 풍경을 만난 것도 아니지만 소소한 일상이 주는 기쁨을 느낀 하루였다. 기차 시간이 남아서 인터라켄 시내를 구경 갔었는데, 너무 번잡하고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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