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카 Aug 03. 2020

스위스 제네바. 내 집 구하기-1

# 시작하면서

- 제네바에 사는 사람들 중에 집 구하기에 관한 무용담이 없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제네바 칸톤 토박이이든, 다른 칸톤에서 온 스위스인이든, 유럽인이든,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나 같은 외국인이든 간에 말이다. 또 나는 주거지원이 있는 엑스팻도 아니고, 주거지원비가 따로 나오는 유엔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아니고, 커플도 아니고 아주 평범한, 제네바에서 평균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혼자 사는 직장인이다. 그래서 나 역시도 집 구하기에 대한 나만의 사연이 있다.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 때는 너무 힘들고 막막했던...


- 면접을 보고 채용이 확정된 후 가장 먼저 알게 된 사실은 스위스는 아니 특히 제네바는 집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스위스 사람에게도 그렇고, 외국인에게는 더더욱 그렇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 말했고, 그건 사실이었다.


시작은... 체류증 신청서에부터, 제네바에서 살고 있는 주소, 자가 또는 임대인지, 아니면 누구네 집에 살고 있는지를 적어내야 했는데, 체류증이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데 이제 막 제네바로 가려고 하는데 확정된 주소를 기재해야 한다고 하니 정말 황당했다. 정말 다행히도 나의 경우에는 스위스에 지인들이 있었고, 지인 중 한 명이 기꺼이 내가 집을 찾을 때까지 자기 집에서 머무를 수 있게 하겠다는 문서를 작성해서 본인의 신분증과 함께 내줘서 그 주소로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선택이 나중에는 일을 좀 복잡하게 만들었다. 나는 직장이 제네바 칸톤에 있어서 제네바 이민국 관할인데, 내 친구의 집은 제네바 칸톤이 아닌 보 칸톤이었다. 물론 친구의 집이 있는 로잔에서 등록을 할 수도 있지만, 기차로 40분 거리인 로잔에서 출퇴근할 이유가 없었기에 스위스에 도착해서 결국은 보 칸톤에서 제네바 칸톤으로 서류를 옮기는 추가 작업을 해야 했다.)


- 다행히 서류는 문제없이 준비가 되었고, 제네바로 떠나게 되었다. 그동안에도 지인들이 준 정보를 토대로 인터넷에 나오는 집 공고를 보면, 예산만 맞으면 무조건 연락을 했다. 하지만 감감무소식.  당장 도착해서 살 집이 없어서 에어비엔비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정말 고맙게도 프랑스인 친구가 집을 구할 때까지 자기 집에서 머물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친구에게 무작정 폐를 끼칠 수는 없기에 토요일 밤 도착 후 일요일부터 부지런히 집 보기에 나섰다. 다들 말하기를 한 번에 내 이름으로 된 집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니, colocation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것) 아니면 sous-location (다른 사람 이름으로 된 집을 임시로 빌려서 사는 것)으로 시작을 해야 한다고. 지금 당장 내 집을 구하겠다는 욕심은 접고 위의 두 선택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 첫 번째 집- colocation 


-제네바의 엑스팻들이 많이 이용하는 사이트에서 colocation 광고가 여럿 올라와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산 경력으로는 15년이 넘고 별의별 인간 군상들과 함께 공간을 나누며 살아왔기에 누구를 만나도 잘 살 자신은 있었다. 그렇지만 그 함께 사는 게 얼마나 정신적으로 피곤한지 알기 때문에 이제는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기도 했다. 여하튼 광고 중 하나인 Plainpalais에 있는 집에 가보기로 하고 전화를 했더니 주인아줌마가 마침 집에 있다고 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집주인은 60살 이탈리아계 스위스 아줌마였다. 방 2개 그리고 아주 넓은 거실이 있는 트램 역 코 앞의 시내 중심가 아파트에서 주로 여자들을 하우스 메이트로 받아서 함께 살고 있었다. 일단은 coloaction이 부동산에게 알리지 않고 엄연히 말하자면 불법으로 하는 것이라 아줌마는 일부러 장기 임대는 하지 않고 2-3개월 단위로 하우스 메이트를 바꾸어 가면서 지내고 있었다. 이렇게 하우스 메이트랑 같이 산 지는 5년이 넘었다고 하셨다. 원래는 중학교 역사 선생님이었는데 은퇴하고 지금은 그냥 여기저기 놀러 다니면서 한가롭게 지내시는 것 같았다. 


- 집주인 아줌마는 집을 쭉 보여주시고 나에게 차를 한 잔 주시더니, 일종의 면접 같은 호구 조사를 하셨다. 나이, 출신 국가, 직장, 싱글인지, 제네바에 얼마나 머무르는지 등등을 꼼꼼히 물어보셨다. 같이 살 거니까 그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 알지? 그리고 제네바에서 집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너도 알지? 이러시면서. 

내가 살았던 첫 집의 거실. 넓어도 아주 넓었다. 

-가격은 방 값 1000프랑에 각종 공과금 200프랑 해서 1200프랑이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스위스 물정에 어두워서 가격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아줌마는 이미 2 사람이 방을 보고 갔는데, 나는 네가 제일 마음에 든다 이러면서 다른 곳을 보고 오겠다는 나에게 지금 결정하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으셨다. 집은 함께 사용해야 하지만, 가구가 모두 갖춰져 있고, 부엌이나 거실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침대 시트나 이불, 수건부터 휴지나 세제 같은 소모품까지 아줌마가 다 사다 놓으시니 따로 신경 쓸 일도 없고 말이다. 위치도 좋고, 아줌마도 좋은 분 같았다. 그래 여기서 살면서 내 집을 찬찬히 찾아보지 싶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단지 몇 개월을 살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집을 보는 것도 싫었고, 내 돈 내고 내가 사는 집인데도 면접을 봐가면서 나를 어필해야 한다는 사실도 싫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아줌마가 요구하시는 보증금 500프랑을 현금으로 내고, 11월 1일에 그 집으로 이사하기로 전격 결정을 내렸다. 500프랑을 현금으로 내고 나서 아줌마는 흰 종이에 자기 이름을 쓰고, 나한테 500프랑을 줬다는 아주 허술한 영수증을 주셨다. 11월 1일 오후에 이사 오면 된다며 건물의 현관문 비밀번호와 본인의 전화번호만 달랑 남겨 주시고. 약간 불안했지만, 그래도 아줌마가 사기꾼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 역시도 지금 이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친구 집에 살고 있고,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팔을 걷고 나서 줄 사람들이 제네바에 있다는 걸 강조하면서 나한테 사기 칠 생각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를 날렸다. 그렇게 스위스 도착 후 하루 만에, 첫 번째 본 집이 내가 4개월간 살았던 곳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스위스_ 그린델발트 & 주변 걷기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