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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Sep 21. 2020

스위스 제네바_내 집 구하기 2

- 1주일 동안 친구 집에서 머무르다 2018년 11월 1일, 회사 일을 마치고 드디어 A아줌마 집에 이사를 했다. 

이사라고 해봐야 내 캐리어 하나가 전부였으니 걸어서 10분 거리인 곳을 트램 타고 2 정거장 가는 게 다 였다. 다행히 아줌마는 거기 계셨고- 다행히 사기는 아니었다-, 간단한 집 소개를 한 후에 나의 colocation이 시작되었다.


- A아줌마는 이미 colocation을 수년간 해 오신 분이라 특별히 까다롭거나 예민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시안이랑은 처음 살아본다면서, 자기가 여기저기서 사놓은 참기름, 굴소스, 간장, 카레가루 등등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마음껏 쓰라면서 또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내 방은 혼자 살기엔 적당했다. 또 거의 모든 게 갖추어져 있어서 짐만 풀면 끝이었다. 요리하거나, 거실에서 책을 읽거나, 티브이를 보는 것도 불편하지 않았다. 아줌마는 제네바에서 산 지 40년이 넘었기 때문에, 이곳의 삶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내가 묻지 않아도 열심히 말해주셨다. 혼자서 계시니 심심하셔서 그런지 한번 이야기가 시작되면 끝이 없었다. 주로 아줌마가 말하고 나는 듣는 편이었지만, 오롯이 불어로만 이야기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말하기 연습을 했더라면 싶기도 하다.  

내가 살았던 그 방. 

- 11월 제네바의 겨울은 너무 춥고 습하고 어두웠다. 모두들 내가 가장 나쁜 시기에 제네바에 도착했다면서 걱정했다. 하지만 내 방도 있고, 소소한 주말의 일상도 있고, 새로운 도시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어서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또 중간중간 아줌마는 여행을 자주 가셔서 결론적으로 나는 집을 혼자 쓸 때가 많았다. 은퇴를 하신 아줌마는 프랑스 아를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집을 가지고, 에어비엔비를 운영하고 있었다. 스위스에는 셋집에 살면서 다른 나라에 집을 두 채나 가지고 있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기도 했다. 또 크리스마스와 새해에는 쿠바로 3주간 여행을 떠나셔서 나 혼자 큰 집을 전세 낸 듯이 살 수 있었다. 


- 아무리 하우스메이트가 좋고, 같이 사는 게 익숙하다고 해도, 혼자 사는 게 훨씬 편하고 좋다는 걸 서서히 깨달았다. 아줌마가 3주의 쿠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온 집안을 여행 다녀온 흔적들로 어질러 놓았을 때, 그 친구분들이 오셔서 와인을 잔뜩 마시고 술 취해 떠들어서 잠을 잘 수 없을 때, 아줌마의 딸과 그 가족들이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내가 옆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어색한 순간이 왔을 때... 또 내가 지불하고 있는 방값이 시세에 비해 비싸다는 걸 서서히 깨달았을 때, 나는 하루라도 빨리 내 집을 찾아야겠다 생각했다.


-  2019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일단 필요한 서류들을 30장씩 복사해서 가방에 항상 넣고 다녔다. 어디서든 내 예산과 지역(지역 구분도 딱히 의미가 없긴 했지만)만 맞으면 무조건 연락을 해서 집을 보러 갔다. 신문, 웹사이트, 엑스팻 커뮤니티, 사무실 내의 광고까지 할 수 있는 모든 매체는 다 살펴보았다. 집을 보는 시간은 현재 세입자와 연락을 해서 보거나, 집 보는 시간을 정해 놓으면 모든 후보자들이 거기에 맞춰서 다 함께 보고 서류를 내거나 하는 식이었다. 점심시간에도 샌드위치 먹어가면서 집을 보러 갔고, 저녁시간도 그랬다. 저녁에는 하루에 3군데를 돈 적도 있었다. 


- 2월 말에 집을 구하기까지, 총 40번 정도 연락을 해서 30번 정도 직접 집을 보았고 20번 정도 서류를 냈다. 어떤 집이든 갈 때마다 최소 20명 정도는 집을 보러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에게 연락을 해 준 부동산은 딱 한 군데, 그것도 선택되지 않았다는 연락이었다. 좁은 제네바에 수많은 사람이 집을 찾기 때문에 같은 사람들을 집을 보러 가서 왕왕 마주치곤 했다. 그때마다, '아 너도 아직이구나...' 하며 어색한 웃음을 짓곤 했다. 

집을 보고, 서류를 내고, 소식이 없는 패턴이 반복될수록 내 사기는 꺾였다. 열심히 발품 팔면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했는데, 스위스에서 집을 구하려면 인맥이 있거나 부동산에 돈을 주고 구하는 수밖에 없다는 소문이 사실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3 pieces (방 1, 거실 1, 주방 1) 그리고 트램 15번 역세권, 주방과 화장실이 리노베이션 된 조건을 고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뭐든 되기만 하면 좋겠다고 따지던 조건들이 사라졌다. 


- 중간에는 말도 안 되는 사기를 당할 뻔 한적도 있었다. 사무실 근처의 아파트인데 시세에 비해 가격이 조금 싼 편이고, 바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연락을 했다. 그러니 현재 임차인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 내가 지금 스페인에 있어서 집을 보여줄 수가 없다, 내가 에어비엔비에 올려놓은 사진이랑 리뷰를 보고, 에어비엔비를 통해 1달 보증금을 결재하면 자기 친구를 통해서 집을 볼 수 있게 해 주겠단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보증금을 돌려준다고...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에어비엔비 링크를 보내 달라했다. 받아보니, 에어비엔비와 정말 비슷하게 생겼는데, 웹페이지 주소가 좀 이상했고, 결정적으로 결재를 스페인에 있는 은행으로 현금 송금을 하라고 요구했다. 사기라는 느낌이 확 들어서 일단 광고를 본 웹사이트에 신고를 하고 오는 메시지를 모두 무시했다. 그러자 30분 간격으로 메시지를 보내면서 송금을 안 하면, 다른 사람에게 매물이 간다고 독촉하길래 차단을 했다. 사기가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나에게까지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  부동산에 돈을 주고 집을 찾아 달라는 수밖에 없을까? 제네바의 수많은 아파트들을 보면서 나는 내 몸을 누일 작은 공간 하나가 없다는 데 좌절했다. 그러던 어느 2월 중순, 아침에 사무실 카페테리아에서 독일인 동료를 만났다. 그 친구는 내가 집을 찾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녀의 동료(같은 사무실 사람이지만 나는 모르는)가 남자 친구와 동거를 시작해서 살고 있는 집을 나가려고 한다며 원한다면 연락해 보라고 연락처를 줬다. 아침에 연락을 해서 그 날 저녁에 집을 보러 가기로 했다. 

지금 우리 집에서 보이는 전경. 뒤의 설산이 Jura이다. 

-  동네는 내가 살던 플랑 팔래와는 다른 북쪽에 있었다. 집을 보러 가니, 다른 사람이 이미 와서 집을 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집이 너무 좁다며 생각해 보겠다며 떠났다. 그리고 내 차례. 저녁이라 집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작고 아늑해 보였다. 방 1, 주방 1에 집은 아주 작았지만 혼자 살기엔 나쁘지 않았다. 트램역과도 가깝고 사무실과도 그리 멀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이 집에 살고 있는 그녀는 3월에 이미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해서, 3월 1일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을 급히 찾아야 해서 내가 오케이 한다면 부동산에게 내 서류를 바로 넘기고 추천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이게 결정적이었다. 물론 부동산이 내 지원서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면 자기네들이 따로 세입자를 찾을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리고 귀찮은 일이다.  그네들 입장에선 전 세입자가 추천하는 특별한 이슈 없이 월세를 잘 낼 수 있는 사람이면, 또 한 달이라도 월세가 붕 뜨지 않고 계속 세입자를 받을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 그래서 10분의 집 보기 후에 나는 그 자리에서 서류를 현 세입자인 그녀에게 넘겨주고, 우리는 부동산 담당자의 연락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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