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카 Oct 03. 2020

제네바 최저임금 시행

지난 9월 27일은 1년에 3-4번 있다는 스위스의 국민투표일이었다.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데 그래도 주위에 스위스인 동료들이 있어서 직접 민주주의를 충실히 이행하는 스위스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번 투표에서는 스위스의 제트기 구입 결정이 나름 가장 핫한 이슈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제네바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가장 많이 봤던 포스터는 바로 최저임금에 관한 관한 것이었다. 스위스에는 최저임금이 연방정부 차원에서 정해진 것이 없고, 최저임금을 정한 칸톤은 유라와 뉴샤텔뿐이라고 한다. 한 때 한국에서 스위스가 기본소득 300만 원을 보장하자는 안건을 국민투표에 부쳤다는 이야기로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집 근처의 투표장소 안내 표지판이다. 한국과 비슷하게 학교가 투표장소로 이용되는 것 같다. 


막상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투표해야 할 안건이 너무 많고 복잡하고 정보가 넘쳐나서 무엇을 투표해야 하는지도 모를 경우도 있단다. 하지만, 알고 보니 최저임금에 관한 투표는 제네바 칸톤에서만 해당되는 것이었고, 내 동료들은 모두 다른 칸톤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몰랐던 것. 

투표 전에 거리에서 종종 보이던 최저임금에 관한 포스터다. 


포스터에도 보듯이, 시급 23프랑(오늘 환율로 계산하니 2만 9천 원 정도가 된다)을 누구에게나 보장하자는 것이고 결국 그 안건이 통과가 되었다.  주 40시간을 일한다고 치면, 4.3주 계산하면 1달 최저임금은 3956 프랑, 대략 500만 원 정도가 된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괜찮은 금액이라 생각되지만, 제네바에 살아보면 특히 싱글이 아니라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라면 세금, 연금, 의료보험 등등을 공제한 후에 말 그대로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금액 정도이다. 제네바는 물가도 스위스에서 취리히 다음으로 비싸고, 세금 역시 다른 칸톤에 비해 센 편이라 더 그렇다. 


사실 스위스에 와서 제네바 칸톤에 최저임금이 없다는 것에 놀랐다. 물론 이건 소위 선진국이라는 많은 나라에서 벌어지는 문제이겠지만, 국제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외국인들이 제네바에서 일하기 위해서 모여든다. 그렇기에 '엑스팻'이라 불리는 고임금을 받는 외국인들과 '괜찮은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중산층 스위스인들도 있다. 또 비싼 스위스 물가 때문에 스위스인이지만, 물가가 싼 프랑스에 집을 사고 정착한 이들도 있다. 그리고 제네바에 살지는 않지만 프랑스에서 출퇴근하며 제네바에서 임금을 받는 프랑스인 혹은 유럽인들도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살아보니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제네바의 곳곳에서 궂은 일, 험한 일,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적법한 체류허가 없이, 그래서 고용계약서도 없이 사회보장도 없이 스위스인에 비해 턱없이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다. 또 스위스인 혹은 유럽인이라고 해도, 특정 산업에서는- 내가 아는 스위스는 정말 한정되어 있지만 예를 들자면 호텔업계- 과연 이 물가 비싼 스위스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짠 월급을 받는 경우도 보았다. 제네바는 내가 살았던 여러 나라 중에서도 빈부격차가 크게 느껴지는 도시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다들 하는 말이겠지만, 갈수록 물가가 높아져서 살기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이 안건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적용이 될는지는 - 불법 이주노동자 혹은 도제 실습을 하고 있는 학생들 등등- 그리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해서 최저임금에 정기적으로 조정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 같이 살만한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이 안건에 지지를 보낸 제네바 주민들의 연대의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스위스 체류허가증을 연장하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