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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Sep 25. 2020

스위스 체류허가증을 연장하면서...

벌써 스위스에 온 지 2년이 되었다.

오늘 인사팀 동료가 체류허가증을 연장해야 한다며 서류를 갖춰서 제출해달라고 했다. 1년마다 갱신을 하려니 은근히 번거롭다. 물론 처음 신청할 때만큼 많은 서류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두 번째처럼 유효기간 3달 전부터 갱신 신청하라고 우편물이 오지도 않았다. 너무 시간 끌지 않고 제 때 서류만 넣으면 문제없이 갱신이 될 것 같다. 하지만 해마다 내 고용주는 어쨌든 왜 스위스인, 유럽인을 쓰지 않고 한국인을 계속 고용하는지, 필요 없는 귀찮은 서류 작업을 해야 하고, 내 입장에서도 세금 내고 준법의식이 투철한 시민으로 살고 있음에도 십만 원이 넘는 돈을 내고- 특히나 제네바 칸톤은 행정비용이 다른 칸톤보다 훨씬 비싸다- 다시 한번 내 존재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확인을 받아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설움이다. 


작년부터는 스위스 체류허가를 신청하려면 최소한의 언어능력 (제네바는 프랑스어 사용권이니 프랑스어. 말 그대로 최소한이기 때문에 그렇게 높은 레벨이 필요한 건 아니다)을 입증해야만 한다. 체류허가증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그렇고, 관리자급들 역시 예외가 아니란다. 내가 스위스에 올 때만 해도 그런 요건이 없었는데, 이민자들의 스위스로의  적응과 동화를 위해서라고 한다.

오늘 인사팀에서도 착오가 있어서 나도 언어능력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해서 조금 당황했다. 시험을 치는 건 크게 문제가 아닌데, 모든 걸 미리 해야 하고, 행정처리 기간이 긴 스위스에서는 언어능력 시험 역시 내가 응시하고 싶다고 바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응시료도 어마 무시하게 비싸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20만 원이 넘고, 결과를 받는데 5주가 걸린다고 했다) 다행히 몇 시간 있다가 이미 허가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했다.  



여하튼 세 번째 신청서를 준비하다 보니, 어느덧 10년이 넘는 떠돌이 외국생활 중 스위스가 가장 오랫동안 산 나라가 되어 버렸다. 스위스에 처음 올 때는 이제 떠돌이 생활을 그만 하고, 어디든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여기서 어쨌든 잘 버텨보겠다, 영주권까지 받아보겠다는 생각으로 도착했다. 하지만 한동안은 이방인에게 친절하지 않고, 뭐든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이 나라가 정이 가지 않았다.  내 나라에서 살 땐 그리고 일하는 단체의 '우산' 아래에서 도와주는 이들이 있던 외국에서는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소소한 일상의 허들- 은행계좌를 열거나, 욕실의 세면대가 막혔을 때 같은-이 좌절로 돌아왔다.  스위스의 살인적인 물가는 알고 있었고,  예전에 비해 수입이 많아졌다 생각했지만, 그만큼 모든 것이 비싸기에 종종 쪼달리는 기분이 들고 물건을 들었다가 두 번 생각하고 다시 놓는 것도 서글펐다. 그래서 나는 언제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이방인이자 노매드라며,  스위스는 너네들이 생각하는 천국이 아니라며 스위스 체류허가증을 로또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시 돋친 말을 날리기도 했다. 


4계절을 두 번 돌아선 지금은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스위스는 낙원이 아니고, 내 삶은 세 끼를 챙겨 먹고 조그마한 내 공간을 유지하면서 어쩌면 반복되는 그냥 그런 일을 하는 일상이 단지 제네바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것 뿐이다. 아드레날린도 긴장도 스트레스도 없는... 하지만 맑은 공기와 공원과 강, 산, 호수에 감사하게 되었다.  자연 속에서 걷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소소한 일상의 허들은 주변의 좋은 사람들의 도움과 유튜브 그리고 직접 부딪혀서 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물가는 이제 그런가 보다 하고 적응해서 조금은 무덤덤해졌고, 가끔은 생각 없이 작은 사치를 부릴 수도 있게 되었다. 언제까지 이 곳에 살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곳에 있는 동안은 걸으면서,  그 소소한 일상을 감사하면서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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