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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Jun 15. 2020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해서 가져다주는 밥.

   2020년 6월 초. 제네바의 봉쇄(?) 정책이 완화되어 식당이 문을 연 지 2주가 조금 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고, 만나더라도 카페나 식당이 문을 연 곳이 없고, 가까이에서 대화를 하는 게 쉽지 않아서 대부분 공원이나 호수에서 만나서 거리를 멀찍이 두고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헤어지는 게 전부였다.

   식당들이 다시 영업을 시작하고 눈부신 제네바의 여름이 다가와서 토요일 점심, 원래 친하게 지내는 C와 예전부터 알고 지내다 제네바에서 다시 만나게 된 일본 친구 J를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다. 


   나름 사람들이 붐비는 토요일 오후여서 시내가 아닌 제네바 외곽에 있는 Onex라는 동네의 테니스 클럽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제네바 외곽이니 사람이 없겠지, 더구나 테니스 클럽의 식당인데 누가 여기까지 밥을 먹으러 올까 라고 생각한 건 우리의 착각이었다. 오후 1시, 이미 야외의 테이블은  예약이 되어 꽉 차 있었고 식당 종업원들은 마스크를 낀 채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실내에는 자리가 꽤나 있었는데 '이런 날씨를 즐겨야 한다'는 프랑스 친구 C의 주장을 따라 우리는 실내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밖에 자리가 나는 걸 기다렸다. 


   주로 스위스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많이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넓은 뜰에서 뛰어다니고 미끄럼틀을 타고, 어른들은 (부모님을 모시고 온 커플들이 주로 많았다. 아마 동네 자체가 외국인이 아닌 제네바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살고 있는 곳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와인을 마시고 식사를 하면서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40분을 기다려서야 자리가 났다. 밖에 나와서 앉으니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니 나도 이제 드디어 햇빛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나 보다. 사무실에서도 나는 '태양을 피하는 사람'으로 유명한데 말이다. (스위스의 여름 햇빛은 너무 강렬해서 선글라스, 선크림은 필수이고 직사광선 30분 노출이면 얼굴 자체가 붉은 노을이 된다.) 웨이트리스가 와서 주문을 받는데, 기분이 들뜨기 시작해서 샤슬라 와인-스위스 칸톤 보에서 많이 생산된다는 화이트 와인이다-과 샐러드도 주문하고, 메인 요리도 시켰다. 특이하게도 여기는 메뉴판도 없고 가격도 안 보이고, 웨이트리스가 가능한 요리나 음료를 줄줄이 읊었다. 물가가 비싼 스위스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시키다가는 말도 안 되는 계산서 폭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하는데, 분위기 탓인지 우리는 막 시키고 즐거워했다. 


   요리를 즐기지 않는 우리 모두가 2달 반 가까이 삼시 세 끼를 내 손으로 직접 한 음식을 먹었으니, 우리 셋 모두, 웨이터가 와서 테이블 세팅을 해주고, 와인을 따라주고, 'bon apppetit'라며 뜨거운 접시를 조심스레 놓아주는데 감격했다. 음식 맛은 그냥 그랬지만, 우리 셋은 모두 약간의 호들갑을 떨면서 맛있게 먹었다.

"남이 해서 정성껏 가져다주는 음식을 친구랑 이야기하면서 먹다니!! 정말 좋다."

"나도 내가 만든 음식이 너무 지겨웠어. 최근에는 너무 맛이 없어서 와인이랑 같이 안 먹으면 못 먹겠더라"

"제일 맛있는 음식은 남이 해주는 음식!!! 나는 밥 해 먹기 귀찮아서 밥을 잘 안 해서 살이 3킬로나 빠졌어"


   초여름의 눈부신 햇살, 초록 초록한 나무와 들판, 뜨거운 고기와 칠링 된 와인. 그리고 달콤한 산딸기 케이크에 커피 한 잔. 완벽한 토요일이었다. 평소에 외식을 하지 않는 나이지만, 특히 물가 비싼 제네바에서는 외식은 항상 본전 생각이 나는 씁쓸한 경험이지만, 오늘만큼은 기분이 좋았다. 엄마가 왜 가끔 외식을 하자고 하시는지, 그리고 정중하게 제대로 서빙해주는 식당에서 기분이 좋아지시는지 100% 이해가 되었다. 물론 묻지 않고 시킨 우리의 식사는 평소의 예산보다는 좀 비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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