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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Jun 15. 2020

소심한 사람이 외국어로 일하는 법

   외국 단체에서 일한 지 올해로 10년째이니,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일하고 생활한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영어로만 일하다 불어로도 일하게 된 건 3년 정도 된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아주 대단한 언어 능력자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다. 나는 대학생활 동안 요즘 한국에선 흔한 스펙 중의 하나인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을 가 본 적이 없다. 물론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때도 영어를 좋아해서 열심히 공부하긴 했지만,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내가 맡았던 업무는 영어 혹은 국제적인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퇴사를 하고 유학을 가기 전까지 딴에는 열심히 공부한 영어를 과연 써먹을 날이 올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때 공부했던 영어가 지금까지 잘 쓰이고 있으니 괜한 짓을 했던 건 아닌 듯하다. 또 나는 내향적이고 소심한 사람이어서, 외국어를 배우는데 적합하지 않다. 말하는 것 자체를 더군다나 잘 모르는 사람들과 말하는 것을 싫어하니 나도 어떻게 외국에서 버티면서 살고 있는지 신기하다. 


   내 나라 말이 아닌 외국어로 간단한 일상이 아닌 일을 한다는 건-수많은 정보를 분석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고 또 그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절대 쉽지 않다. 나의 경우에는 외국 단체에서 일하긴 했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환경이나 영어를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만이 아닌, 모두를 위해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크게 부담이 없이 겁 모르고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어차피 다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의사소통은 항상 간결하고 명확하게 하려고 서로 노력을 하다 보니, 오히려 어렵지 않았다. 물론 공식적인 문서를 작성하거나 스피치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일을 시작한 초반에는 긴장을 많이 해서, 문서는 수 십 가지 양식을 다 저장해 놓았다가 짜깁기를 해서 쓰고, 스피치는 말할 걸 몽땅 외워버리는 무식한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한 번은 영어가 공용어인 프로젝트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어가 모국어인 동료는 한 명도 없는 프로젝트에 호주인 동료가 왔는데 아무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의 독특한 호주 억양이나 단어를 입안으로 씹어 먹는 부정확한 발음은 프로젝트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멘붕에 빠뜨렸고 각자의 영어 실력에 대해 한탄하게 만들었다. 그 친구 역시,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가 자신의 모국어로 꾸역꾸역 일을 하고 있다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 일하는 단체에 있으면서 불어가 필요해서 뒤늦게 불어를 배우게 되었고, 1 달반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듯한 집중과정을 한 뒤에 불어가 공용어인 프로젝트에서 바로 일하게 되었다. 언어를 가장 빠르게 배우는 방법은 그 언어를 쓰는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라는데, 그 말은 역시 맞았다. 영어도 외국어이지만, 그래도 불어보다는 훨씬 편한데 그곳에는 영어를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안 그래도 소심하고 내성적인 내가 안 되는 불어로 나 자신을 표현하려니 정말 힘들었다. 불어로 이야기를 하면, 내가 너무 멍청하고 바보 같아서 혹은 일 밖의 농담이 오고 갈 때 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생겼을 때,  일과가 끝나면 혼자 방에 돌아와 자아가 한없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되든 안되든 적극적으로 그 언어를 사용해보려고 한다는데, 나에게는 그게 너무 어려웠고 불어가 공용어인 이 곳에서 사는 지금도 아직도 어렵다. 하지만, 끊임없이 도망가고 싶었던 그 시간들을 버티고 나니 유창하지는 않아도 불어를 알아듣고 내 생각을 표현할 수는 있게 되었다. 


   요즘 한국에는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들도 참 많고, 아직도 외국어는 중요한 공부의 주제이자 스트레스 요인 혹은 자기 계발의 모티브가 되는 것 같다. 외국어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외국어를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에게는 다른 이야기이겠지만 말이다. 물론 나도 가끔씩 수려한 영어문장이나 잘 써진 리포트를 읽으며 감탄하고, 빨간펜 선생님이 울고 갈 내 불어 작문실력에 한탄하긴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거칠고 투박해도 자기 의사만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것 같다. 몇 개국 어를 구사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은데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자신감이 넘치는 내 주변 동료들을 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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