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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지 Nov 22. 2024

#007. 덤블도어가 된 대장내시경

89년생 신도시 전세로 사는 아지의 임신이야기

#007. 덤블도어가 된 대장내시경    


    만 나이 36세, 얼마 전 살면서 처음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았다. 올해 천천히 임신을 계획하며 몸 안의 곳곳을 검진하였고 대장 쪽도 궁금하여서 따로 검사하게 되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 증상도 평소 느끼고 있기에 종합병원의 소화기내과에 접수하게 되었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위해서는 실제 검진 며칠 전 외래로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병원에서 장을 비워주는 약을 타고 복용 법을 배우고 심전도와 기타 고지사항을 확인한다. 검사 3일 전부터는 내시경에 적합한 식단에 들어가고, 전날 오후부터는 금식하며 장 정결제와 물을 엄청나게 마셔야 한다. 검사 당일 날은 피곤한 몸으로 병원에 찾아가서 오전 중 내시경을 받았다. 다행히 검사 자체는 수면 내시경으로 진행되어 금방 끝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대장은 매우 정상. 아주 깨끗하고 염증이나 용종 하나 없는 건강한 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의외의 결과여서 좀 놀랬다. 내가 와인을 자주 마시기도 하고, 육고기와 정제 탄수화물도 즐겨 먹는 식습관이었기 때문이다. 40대를 앞두고 있어 용종 한 두 개 정도를 예상하였다. 해외여행도 계획하고 있어 비행기 타기 2주 전에 일부러 검사도 진행한 것인데(만약 용종 제거 시 2주간 항공 탑승은 불가하다.) 다행히 좋은 결과를 받게 되어 걱정 한시름 놓았다.


대장 내시경 3일 전부터는 각종 고춧가루, 견과류나 식이섬유가 많거나 착색이 되는 음식은 금해야 한다. 주류는 물론이고 커피, 채소류 불가하다. 장에 최대한 음식물이 남아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흰 죽과 빵을 주로 먹으면서 보냈다. 식단은 그나마 커피를 못 마신 것 말고는 참을만했다. 빵을 좋아하는 편이라 오랜만에 죄책감 없이 밀가루를 섭취했다. 식단 지키기보다는 장 정결 약 먹는 것이 고역이다. 검사를 오전 9시경에 예약하였는데, 그 전날 오후 3시까지 반찬 없는 흰 죽 먹은 후 음식은 금지. 저녁부터는 장 정결제를 먹어야 한다. 인터넷에서 물에 타먹는 가루약은 비위가 상한다는 후기를 보았기에 알약으로 처방받았다.



대장 내시경 검사의 정확도는 환자의 완벽한 장 정결이 좌우한다.


알약 28개를 처방받았고 14개씩 나누어서 2번에 걸쳐 먹어야 한다. 먼저 검사 전날 오후 7시에 알약 14개와 물 또는 투명한 이온음료 약 2리터를 1시간 30분가량에 나누어 섭취한다. 그 이후 30분 만에 엄청난 신호와 함께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을 갖는다. (약 2~3시간가량 되었다.) 디톡스 한다고 생각하고 견뎌야 한다. 1차 약 복용 시 물 마시기는 해 볼 만했다. 밤늦게야 겨우 평화를 얻고 난 후 잠에 들었다. 그러나 관건은 2차 약 복용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똑같은 복용을 한번 더 반복하는 것이다. 이 새벽의 2차 복용이 바로 내시경 검사 준비의 꽃(?)이었다. 장 정결제 복용에 대해 일명, 영화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에서 덤블도어가 호크룩스를 찾기 위해 동굴에서 억지로 물을 마시는 기분을 알게 된다고 한 비유를 보았다. 기막히게 공감된다고 생각하며 나 또한 덤블도어의 마음으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약 14알과 물 2리터를 억지로 마시기 시작했다. 마시다 보니 물도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실제로 약 먹다가 토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가루약을 사용한다면 물탄 약만 2리터씩 두 번으로 총 4리터를 정도를 마셔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한다. 알약은 비급여로 가루약보다 좀 더 비싸지만 다행히 나는 보험처리를 받을 수 있었다. 누군가 대장내시경을 한다면 웬만하면 보험처리가 되니 가루약보다는 알약을 먹는 것을 훨씬 추천하고 싶다.


어찌어찌 새벽에 2차 장정결까지 힘들게 하고 나니 몸에 오한이 왔다. 수분이 급격히 빠져나가고 날도 쌀쌀하다 보니 체온이 내려간 모양이었다. 따뜻한 미온수를 좀 더 보충해 주고 핫팩을 끌어안아 해결했다. 모든 약을 먹은 후 가스 제거제를 먹고는 물 포함 금식을 시작한다. 거의 3~4시간뿐이 잘 수 없었고 피로가 누적되기는 했다. 아침에 병원에 가는 길도 불안스러워 택시 대신 일부러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을 이용했다. 다행히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병원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대기가 길어지면서 금식기간도 길어져서 힘들긴 했다. 내시경을 위해서 엉덩이가 뚫려있고 커버로 덮여 있는 재밌는 환자복을 입고 대기하게 된다. 담당의사 선생님은 여자 교수님이 계신 병원을 일부러 찾아갔기 때문에 수치심은 덜한 편이었다. 검사가 시작되었고 수면마취를 하게 되어 기억은 나지 않는다. 위 내시경을 몇 번 해보아서 수면 마취를 해보았지만 할 때마다 참 신기하다. 나는 마취를 당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바로 블랙아웃이 된다. 이번 수면 마취에는 의료진에게 "제가 헛소리를 하지 않았나요?"라는 헛소리를 한 일화를 만들고 말았다.


내시경 검진 후 회복 시간을 갖고, 담당의사 선생님이 내시경으로 내 장을 찍은 모니터 화면을 보여주셨다. 장의 핏줄이 새빨갛게 보였는데, 이것이 건강한 장이라고 하였다. 장이 빨갛게 보이지 않고 하얗면 오히려 염증이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장 정결도 잘 되어서 검진이 수월했다고, 건강하니 앞으로 5년 후 재검진을 받으면 된다는 결과를 들었다. 추가적으로 과민성대장증후군에 대한 약 처방을 받았고, 보험처리도 모두 되어 비용적으로 부담 없는 대장 내시경 검진이 마무리되었다.


유방의 혹과, 자궁의 혹, 갑상선과 담낭의 혹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폐결절까지 요새 들어 각종 몸에 생긴 덩어리들에 시달리던 참이었는데 대장은 생각 외로 건강하여 안도감이 생겼다. 평소에 물을 챙겨 마시려는 편이고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과 콜레스테롤을 녹여준다는 식이섬유 차전자피, 우엉차 등을 달고 마시는 효과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와인이 대장에 아주 나쁜 영향은 안주는 것인가 싶어 긍정회로를 돌려보았다.


좋은 결과를 얻어서 기분도 좋은 참에 식욕이 당겨서 회전초밥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내시경 후 첫 식사를 했다. 검진 후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만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으니 장에서도 큰 탈 없이 잘 받아주었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제없이 지내고 있다.


대장내시경은 검진 전 준비가 까다롭고 불편하다. 하지만 큰 맘먹고 잘 준비하여 진행한다면 용종이 있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제거도 가능하고 내 몸의 우환이 될 수 있는 문제들을 미리 체크해 볼 수 있으니 고민하는 30대 후반~40대 들은 꼭 한번 용기 내 보아도 좋을 듯하다. 대신 꼭 알약으로 처방받고, 미온수를 준비하고 이온음료와도 함께 마시길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중요한 약속은 검진 전날은 안 잡는 것이 좋다.


올해 마음속에서 미뤄뒀던 큰 검진들을 마무리하니 임신 준비에 한걸음 다가간 느낌이다. 내년 초에는 2년마다 해 온 자궁경부암 검사를 예방차 한 번 더 진행하고, 이번에 새로 생긴 유방 양성석회를 추적관찰하는 문턱이 남아있다. 유방 양성 석회는 처음 발견된 크기에서 더 커지지만 않으면 문제는 없어 보인다. 사실 자궁 선근증과 다발성 근종이 걱정인데 큰 것이 3cm 정도 이기 때문에 이 혹이 임신하면 아기와 같이 커지고 조산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예방 차원의 수술로 자궁울 절제하여 근종 제거가 답은 아닌 것 같아서 또 하나의 고민이 생기고 있는 중이다. 지금껏 여러 대학병원과 상급병원에서 이 정도 크기면 임신과 출산에 문제가 되지 않고, 실제로 문제없이 출산하는 산모들도 많으니 일단 임신을 우선으로 하라고 조언을 여러 차례 들었지만, 아직도 한편에서  걱정과 불안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정신상태를 좀 더 안정적으로 가라앉히기 위해 명상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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