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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등어치즈 Oct 26. 2024

동거일상 첫 번째 이야기

첫 만남 회고록

2021년에 만난 우리는 동거도 거의 만남과 동시에 시작했으니까, 이제 약 삼 년 반쯤 되었겠다. 


날을 딱 정해놓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하룻밤이 이틀 밤이 되고, 일주일에 두세 번 같이 있던 게 일주일에 다섯 번이 되고, 그렇게 일주일 내내 같이 지내면서부터 시작됐다고나 할까. 짐이랄 것도 없었다. 본가에서는 본인의 방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짐이라고 하면 그저 속옷 몇 장과 티셔츠 몇 장이 다였다. 책이나 기타 추억거리, 자잘한 생필품을 옮길 필요는 느끼지 못해서 이사하거나 독립하는 것처럼 커다랗게 짐을 바리바리 싸서 옮기거나 하는 수고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속옷도 새로 사고 계절에 맞는 옷가지들을 같이 쇼핑하면서 우리의 공간을 채워나갔다. 


그러니까 지방을 본가로 둔 나는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거실과 주방 하나, 화장실 하나, 방 두 개인 투룸 빌라에서 고양이들과 살고 있었고, 주로 안방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에 동거인에게 내어줄 공간은 충분했다. 


처음에는 ‘동거’라는 말조차 어색해서 입 밖으로 꺼낸 적 없다가 정말 최근에서야 누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물어보면 동거한다고 스스럼없이 대답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놀라곤 한다. 기존에 ‘동거’라는 단어에 어색해했던 이유는 뿌리 깊게 박혀있는 부정적인 인식이 먼저 떠올라서 인 것 같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동거에 대한 고민글이 올라올 때마다 정독하고 부정적인 댓글을 항상 유심히 본다. 사회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고 쉬쉬하는 행위를 고민 없이 했다는 죄책감 같은 감정에 뜨끔해서일까. 

요즘 시대는 먼저 살아보는 것도 괜찮아~라고 시작되는 말들은 참 배려적이지만 결국 그래서 너는 동거 경험이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떳떳하게 밝힐 수 있냐로 시작해서 나는 동거 경험이 있는 사람과는 만나고 싶지 않다, 결혼하다 이혼한 것도 별 다르지 않지 않느냐로 끝나는 게 현실인 듯하다. 뭐 이런 사실들로 갑론을박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그저 내 일상을 끄적거리고 이런 일상을 사는 사람도 있다는 사례나마 하나 남기고 싶을 뿐. 

누가 물어보면 동거인의 존재를 솔직하게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사회적인 눈길에 당당하지 못한 것도 있다. 제일 큰 문제는 엄마에게 알리면 맞아 죽을까 봐 아직도 말하지 못한 것이다. 아직 엄마에게는 동거사실을 밝힐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 문제는 과거 나의 가정환경과도 연관 있을 수 있다. 아무튼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러 편견 속에서도 동거를 지속하는 이유는, 동거인을 동반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동거인과 같이 있는 게 더 편하다. 


음, 결혼에 대해서는 우리 둘 다 개인적으로 나름 여러 사정이 있는데, 우선 둘 다 결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나 동거인이나 결혼 제도 속에서 그다지 화목하지는 않았던 부모님들 사이를 삼십 년 넘게 보아온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한때 그 화목하지 않던 가정에서 떠나 빨리 떠나 화목한 나만의 가정을 만들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 수단이 결혼이라고 생각했고 결혼이 하고 싶어 목을 매었던 적이 있었다. 결혼을 하면 출가외인이라고 지긋지긋한 엄마 아빠와의 관계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참 어리석었다. 만남에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절망에 빠져 지내다가 조금씩 멍청했던 나를 마주하고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면 결혼에 목표를 두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누리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긴 하다. 어쩔 수 없지. 수많은 매체 속에서 그리고 나를 포함한, 가부장제에 학습된 여자들 사이에서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라고 믿었던 신화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것 두 가지는 결혼이 꼭 필요치는 않다는 것과 하지만 인생의 동반자는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동반자도 꼭 이성일 필요는 없다. 친구일 수도 가족일 수도 있다. 지금 나와 동거인의 관계가 영원할 것이라고 맹신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동거하는 지금, 나는 거실에서, 동거인은 작은 방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고양이 두 마리와 인간 한 명과 충분히 충만하고 행복한 지금, 내 삶의 형태를 고찰하고 앞으로의 행복감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일상 기록하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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