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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씨 Jul 05. 2019

어쩌다보니 시골, 어쩌다보니 동거 #03

주인집 아주머니는 퀘스트 요정 

::timeanddate.com 이미지 퍼옴::

시골살이에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이웃이다. 여기저기서 상식 밖의 텃세 이야기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우리 역시 많은 걱정을 했다. 아마 마을에서 제일 젊을 텐데 온갖 일에 다 끌려 다니는 건 아닐지, 숟가락 숫자까지 알게 된다는 시골 특유의 친밀한 간섭을 견딜 수 있을까에 관한 걱정도 컸다. 


이 집은 주인집과 나란하게 붙어있다. 하루에도 몇 번 씩 마주칠 수 밖에 없는데 안 맞는다면 몹시 괴로울 것이다. 집을 보러 오기 전부터 통화를 하는데 느낌이 괜찮았다. 집을 보러 갔을 때, 집 안으로 초대해 직접 만든 식혜부터 이것저것 내주셨다. 인상 깊었던 점은 팔순이 넘으신 지긋한 아저씨가 직접 커피를 내려주셨다. 그 연세에 보기 드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주인집에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딸이 살고 있다. 뉴욕에서 오랫동안 사시다 이곳에 정착하신 것이다. 이 집도 원래 현재 뉴욕에 살고 있는 아들을 위해 지은 집이다. 다행이도 친절하고 점잖으신 분들이다. 미국에서 오래살다오셔서인지 개인적인 질문을 하거나, 선을 넘지 않으신다. 


이사 첫 날, 뭐 먹을 것이 있냐 걱정 하며 군고구마와 얼린 나물들을 주셨다.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고 하셨다. 어린 배추, 취나물이라는 라벨이 붙어있었다. 


서울에서의 내 주식은 라면이었다. 요리라고는 전혀 하지 않은, 집밥도 잘 안 먹는, 일주일에 4번은 라면을 끓여 먹고, 대부분은 칼국수와 우동을 사먹는 탄수화물 대잔치의 식사를 즐겼다. 어린 배추를 검색하니 얼갈이배추 속아낸 것을 뜻하는 듯 했다. 주로 된장국을 끓여 먹는 재료라고. 이 아이를 어쩌지 하자 닌나 씨가 하나씩 해보라며 격려해주었다.  


:: 첫 된장국. 지금보니 비주얼이 영 ㅋㅋㅋ::

처음 끓이는 된장국. 요리 블로거의 영상도 참조하고 하나하나 따라했더니 신기하게도 된장국 맛이 났다. 된장국은 식당에서 음식 주문하면 메인에 곁들이는 국물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직접 만드니 시원한 맛이 입에 감겼다. 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는 게 신기했다. 


어린 배추로 된장국 만들기, 첫 번째 미션 성공! 이 후로도 주인집 아주머니의 미션은 계속 되었다. 매서운 추위가 계속 되던 3월에는 돼지감자를 캤다며 한 아름 나눠주시고, 봄나물이 올라오자 냉이와 방풍나물, 취나물을 한 아름 캐다 주셨다. 

:: 난생 처음보는 돼지 감자. 첫 장아찌::
:: 아침 식사 후 쪽파, 달래 등 나물 다듬는게 일과가 되었다::

손이 어찌나 크신지 레알 한 가득이다. 그럼 난 이 아이를 어쩌지 하며 인터넷을 뒤진다. 식재료에 대한 정보도 얻고 요리법도 참조한다. 돼지감자 밥을 하고, 장아찌를 담갔다. 인생 첫 장아찌였다. 불과 한 달 전만해도 라면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는데 이런 고난이도 살림을 하다니! 


취나물 역시 취나물 밥을 하고 나물로 무쳐먹었다. 방풍나물은 무쳐먹고도 한참 남아 또 장아찌를 담궜다. 불과 한 달 전만해도 풀맛나는 나물을 왜 먹는 거냐고 했는데 기본양념에 고추장 베이스, 된장 무침까지 섭렵하게 되다니! 심지어 맛있다고 까지 느끼게 되었다. 전 세입자가 심어놓은 쪽파도 캐서 먹으라고 하셔서 쪽파김치까지 담갔다. 


때가 되면 퇴비를 뿌려야 한다고 알려주고, 감자를 심어야 한다며 씨감자를 주셨다. 마을 이장님에게 퇴비를 사서(잘 모르겠지만 공동구매 형태인가) 밭에 솔솔 뿌려주었다. 다음날 너무 조금 뿌렸다고 귀뜸해주어 다시 뿌렸다. 감자를 심을 때라며 씨감자를 주셔서 한 고랑 심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텃밭에 대한 어떠한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그냥 따라 심었다. 


어느 날은 버섯 농장에 가자고 했다. 매년 가는 농장에서 올해 첫 버섯을 수확했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질 좋은 파지 표고버섯을 저렴하게 한 박스 구입할 수 있었다. 이 엄청난 버섯으로 무엇을 하지. 매번 그 고민이다. 버섯 볶음을 하고 버섯 장조림을 했다. 


나머진 말려야지. 데크에 통째로 펴서 말려놓으니 언니가 찾아왔다. 이렇게 말리면 며칠 둬야한다고 썰어서 말려야한다고 했다. 데크에 앉아 다듬기 시작하는데, 부재중이었던 닌나 씨를 대신해 언니가 마주 앉았다. 괜찮다고, 혼자 할 수 있다고 해도 같이 해야 지루하지 않고 금방 끝난다며 칼을 잡는다.


둘이 이런저런 얘기 하며 앉아있는데, 어머님 아버님도 나오셔서 급 버섯손질에 합세하셨다. 다들 어찌나 손이 빠르신지;; 버섯 밑둥 몇 개 짜르고 있는 사이 작업 완료. 혼자 했으면 두세 시간 걸렸을 일을, 20분 만에 후딱 끝냈다. 


주인집에 옆에 있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주인집 언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언니 없었으면 어떻게 시골생활을 했을까 싶을 정도다. 찻 타향살이에 이같은 이웃을 만난 것은 축복이다.  

:: 어설픈 농부와 시골개가 된 도시개::



카페나 레스토랑, 타운 등을 키우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좋아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키움을 당하고 있다!


<시골마을에 정착해, 멋진 농장을 꾸려보세요!> 

이런 느낌이랄까 ?! 


퀘스트 1. (어린 배추를 주며) 된장국을 끓여보세요! (클리어)

퀘스트 2. 쪽파를 캐 파김치를 담궈보세요! (클리어)

퀘스트 3. 표고 버섯을 말려서 저장하세요! 버섯 장조림도 만들어보세요! (클리어) 

퀘스트 4. 봄이 왔어요! 모종을 심어보세요! (클리어) 

퀘스트 5. 방풍나물과 취나물로 나물을 무쳐보세요! (클리어)

... 

퀘스트 n. 하지 전 감자를 캐 감자 요리에 도전하세요! (클리어)

퀘스트 n. 장마 전 얼갈이 배추와 시금치를 모두 캐 삶아 보관하세요! (미션 중)  

...


살림과 밭일 1도 모르지만, 주어진 퀘스트들을 클리어 하며 성장하는 중이랄까. 덕분에 매일이 새롭다. 요즘도 틈틈히 새로움을 선사해 주시는 주인 아주머니를 퀘스트 요정으로 임명합니다!! 


:: 가장 최근 퀘스트: 보리수 8kg::
::만수르 4형제로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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