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뱅이 커플의 살림살이 마련하기
우리 커플은 가난하다. 얼마 전 국세청에서 종합소득세 신고 관련 서류를 받았다. 닌나 씨의 2018년 소득은 2,000만원이 조금 넘었고, 나의 소득은 1000만원이 조금 넘었다. 세금을 떼지 않는 과외와 프로젝트 등을 합치면 조금 더 되겠지만 그래봤자 개미 눈물만큼 차이 날 뿐. 논 것도 아니고 일 년 내내 나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일을 했는데. 허무한 숫자이다.
결혼 전 가장 즐거운 순간은 아마도 집을 장만하고 하나 씩 채워가며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 아닐까. 설령 살벌하게 싸우고 상상만큼 즐겁지 않더라도 나 역시 이 같은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보증금을 내고 나니 우리 수중엔 이백만 원 남짓 남았다. 난 집에서 나오는 거라 세간이 하나도 없고 닌나 씨 살림 역시 대부분 버려야 해서 거의 빈손이었다.
꼭 있어야 하는 것부터 적어보았다.
<냉장고, 책상 2개, 세탁기, 침대, 식탁 ... > 다행히 붙박이장이 잘 되어있어 수납장은 필요가 없었다. 가구같은 큰 세간부터 행주같이 작은 용품들까지 필요한 리스트는 끝이 없었다.
세상에. 냉장고가 그렇게 비싼 물건인지 처음 알았다. 왜 예쁜 연예인들을 써가며 고급스럽게 포장해 팔려고 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중고로 눈을 돌렸다.
결혼한 지인들에게 질문을 했지만 그 때마다 가전용품은 가장 좋은 걸 사야한다며, 신형을 사야한다고 조언했다. 중고 냉장고로 시집을 간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중고 사이트 내 꽃이 커다랗게 그려진 촌스러운 냉장고들이 더욱 사무치게 다가왔다.
<알뜰살뜰! 살림살이 장만 리스트>
냉장고 40만원(중고) + 세탁기 26만원 (중고) + 침대 318,000원 (메트리스 포함) + 책상 2개 26만원 + 책상 의자 1개 119,000원
*현재 돈 모으면 가장 사고 싶은 것! 식탁과 전기밥솥!
이삿날. 내가 먼저 가서 나름 입주 청소를 했다. 그래봤자 청소기 돌리고 닦는게 끝이지만. 다행히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시골집이라 벌레가 많았는데 창문틀을 수놓은 벌레 시체들을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이건 나중에 닌나 씨가 붓으로 하나하나 제거했다. 말로만듣던 벌레와의 전쟁이 시작된것이다.
닌나 씨의 짐이 왔다. 가구는 책장 2개, 작은 냉장고 하나, 협탁 2개, 슈퍼 싱글 메트리스 하나가 전부다. 금방 이사가 끝났다. 아직 구입한 살림살이들이 들어오지 않아 거실에는 책장 두 개, 주방에는 닌나 씨 냉장고와 내가 당근마켓에서 5000원 주고 산 좌식 테이블이 덩그러니 놓였다. 매트리스는 작은 방에 두고 안방에는 이불을 깔았다.
축하파티로 바닥에 앉아 고기를 구워먹었다. 소주 한 잔 하면서 휑한 공간을 바라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기쁘고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불안함과 서글픔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라는 것에 대한 기쁨과 다른 사람들처럼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에서 시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서글픔이었다.
“대신 우리는 앞으로 하나씩 채워 가면 되지. 그것 또한 즐거움일 거야.”
닌나 씨 말이 맞았다. 3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만의 물건들과 추억으로 차곡차곡 채워가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중이다.
얼마 전엔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양념통 세트를 샀다. 고작 만 원 대 지만 꼭 필요한 것 위주대로 여유가 되는 데로 조금씩 사다보니 계속 순위가 밀렸던 것이다. 가지런히 정렬된 양념통을 볼 때마다 미소가 지어진다. 둘 만의 취향으로 채워가는 소확행이다.
매일매일,
소소하게, 소박하게, 소담스럽게 살아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