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초록 텃밭의 세계
시골살이의 가장 큰 로망은 텃밭 아닐까. 리틀 포레스트의 김태리처럼 그때그때 필요한 재료를 뜯어 건강한 한 상을 차려내는 것! 이야말로 도시 사람들이 꿈꾸는 시골에서의 삶일 것이다.
급작스럽게 정해진 귀촌 앞에서 나와 닌나 씨는 딱히 로망이 없었다.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도 못 봤을 뿐더러 사실 집을 보러갔을 때만 해도 텃밭이 있는지도 몰랐다. 집 앞 땅은 우리 하고 싶은 데로 하라는 주인집 말을 듣고서도 딱히 아무런 감이 오지 않았다. 둘 다 그 흔한 베난다 상추 한 번 길러본 적 없는데다, 난 다육이도 족족 하늘나라로 보내는 망손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상추나 몇 개 심지, 뭐. 그런 마음이었다. 처음엔. 젤 처음 심었던 것은 감자다. 3월 중순 언니가 감자를 심을 때가 됐다며 씨감자를 나눠 주었다. 감자를 심으면 감자가 난다는 (?!) 놀라운 사실에 놀랐다. 텃밭 제일 끝 한 줄을 심었다. 진짜 감자가 날까 의문 반, 신기함 반이었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을 삼발이로 갈아엎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퇴비를 뿌려주고, 며칠 지나 땅을 갈아엎어 모종을 심을 준비를 하였다. 가장 만만하다는 상추 모종을 사다 심었다. 패기롭게 12개나 심었다. 상추가 너무나 작아 보여 둘이 먹기 부족하면 어떡하지 고민했다.
주인집 언니가 얼갈이배추 씨앗과 시금치 씨앗을 나눠주었다. 티끌처럼 작은 씨앗이었다. 홈을 파고 줄지어 심어주었다. 산이라서일까;; 4월이었지만 이곳의 날씨는 무척 추웠다. 입김이 하얗게 나왔고, 우리는 두툼한 파카를 입고 지냈다. 이렇게 추운데 진짜 뭐가 자랄까;;
땅의 힘은 놀라웠다. 새끼 손톱만한 새싹이 올라오더니 금방 빼곡하게 초록으로 채웠다. ‘떡잎부터 다르다’는 속담처럼 떡잎이 자랐다. 떡잎이라니...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 쓰는 단어인 듯 했다. 어쩐지 귀엽게 느껴져 떡잎, 떡잎하고 계속 중얼거렸다. 주인집보다 한 참 늦어 얼어 죽은 줄 알았던 감자도 싹이 올라왔다.
욕심부리지 말자, 했지만 매번 장에 갈 때 마다 모종을 샀다. 밭에 심어진 채소들의 종류도 어느새 20가지나 되었다. 한 종류 당 2~3개 씩 심었다. 그걸 보고 소꿉놀이 하는 것 같다며 주인집 언니가 말했다.
상추, 고추, 토마토, 양상추, 가지, 비트, 오이, 애호박, 고구마, 파 등 기본 야채와 바질, 루꼴라, 로즈마리 등 허브를 심었다. 옆집에서 아욱, 근대, 쑥갓을 나눠주고, 뒷집에서 취나물과 방풍나물을 나눠주어 함께 심었다. (난 이때까지 아욱이나 근대라는 채소가 있는지도 몰랐다;;)
상추는 무섭게 자랐다. 상추를 먹기 위해 고기를 먹고 또 먹고, 상추 겉절이, 상추 전 등을 해먹어도 쑥쑥 크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집에도 가져다주고, 여기저기 나눠주어도 역부족이었다. 잠시 출장을 다녀온 사이 상추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자랐다.
채소들이 하나씩 자랄 때마다 새로운 요리를 해먹는 재미도 늘어갔다. 시금치, 바질 등을 위해 파스타를 하고, 배추를 솎아주는 날에는 배추국을 끓이고, 고추잎을 솎아주는 날에는 고추잎 무침을 해먹었다. 필요할 때마다 고추를 따고, 시금치를 따고, 파를 잘라다 먹는 것은 소소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감자를 수확했다. 3월 17일에 심어 6월 27일에 캤다. 날짜까지 꼼꼼히 기록해두기! 줄기를 잡고 뽑는데 뿌리 끝에 동글동글한 아이들이 달려있어 어찌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요즘은 감자 먹기 바쁘다. 쪄먹고, 버터구이도 하고, 조림으로 먹고, 구워도 먹고, 그래도 줄지 않아 토요일에는 베이컨과 치즈를 넣어 오븐 요리를 해서 먹었다.
자기야, 밥 먹자. 상추 좀 뜯어 와요. 루꼴라도.
부추 자랐더라. 무쳐 먹을까?
방울토마토 많이 열렸어. 뭐해 먹지?
직접 농사지은 재료를 이용해 요리를 한다.
보이는 것만큼 낭만적이진 않지만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이곳에서의 삶이 꽤나 만족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