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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씨 Sep 15. 2019

어쩌다보니 시골, 어쩌다보니 동거 #05

:farm to table: 김태리 코스프레 중입니다.

:: 텃밭 비트로 담근 피클:: 

흔히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일에 치어 먹기에 소홀해진다. 아니, 잘 먹기에 소홀해진다. 서울에서는 마감 기간은 일이 많다고 라면으로 때우고, 마감이 끝나면 매운 떡볶이와 맥주 배달로 나름 소확행을 누리기 부지기수였다. 배부르게 먹었지만, 어딘가 잘 먹은 것 같지 않은 식사를 했다. 3년 사이 살이 10kg 가까이 쪘다.  


시골에 온 후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음식이다. 나와 닌나 씨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다. 다른 말로 삼식이란 뜻이다. 가장 가까운 슈퍼는 약 6km 떨어져있고, 20km는 가야 제대로 된 식당가가 있다. 매일 요리를 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전 네이버에서 주간 밥상 코너를 오픈했을 때 이런 걸 누가 볼까 했었다. 내가 남들 뭐해먹고 사는지도 알아야하나 코웃음쳤는데 웬걸. 하루 몇 번씩 들여다보며 다른 사람의 밥상을 염탐하고 있다.  


직접 재료를 키우고, 요리에 취미를 붙이면서 우리 입으로 무엇이 들어가는지 관심이 높아졌다. 맛집 검색 대신 제철 채소와 요리법을 공부하게 되었다. 이곳 지명을 따 우리 집을 ‘소태 포레스트’로 부르기로 했다. 김태리 만큼의 미모와 요리 실력은 없지만 그냥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닌 잘 차려먹어 보자는 다짐을 담았다. 


:: 가지와 토마토로 라따뚜이 만들기 & 제철 반찬으로 차린 집밥::
:: 보리수 즙을 넣은 분홍분홍 수제비 & 호박잎 강된장 쌈밥::

여름이 되자 텃밭의 채소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넝쿨째 열린 애호박으로 찌개도 끓이고, 새우젓을 넣어 살캉하게 볶아도 보았다. 제 때 따지 못해 노각이 된 오이는 고추장과 매실청을 넣어 새콤하게 무쳐 먹는다. 고추 장아찌를 담그고, 가지 피자에 도전하고, 고구마 순 김치를 담갔다. 대단한 요리도 못하고 가짓수도 적지만, 제철을 담아 소소하게 한 상을 차린다. 처음엔 스트레스였던 요리가 어느새 힐링이 되고 있다.  


여름 내내 주전부리는 감자와 옥수수가 책임졌다. 서울에선 있어도 잘 찾지 않은 것이었는데. 뒤뜰 딸기를 얼려놓고 오디와 함께 갈아 마시니 꿀맛이다. 요즘은 주위에 떨어진 밤을 줍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다. 


::소태 포레스트의 주전부리들::


“너가 준 깻잎 아직도 있어. 근데 어쩜 한 달이 다 되가는데 아직도 신선하고 향이 장난아니야.”  


오늘 새언니에게서 온 메시지다. 채소가 많다보니 여기저기 선물 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향이 어쩜 이렇게 진하냐는 말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닌나 씨와 난 음식의 유통과정, 밭에서 마트로, 마트에서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긴 여정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이 주는 신선함을 깨달을수록 텃밭 채소 하나하나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신선한 재료가 주는 고유의 풍미는 몇 번 씩이나 우리를 놀라게 했다. 직접 키운 파는 마트에서 파는 파와 비교가 안 되게 매운 향이 진하다. 파를 썰다가 눈물 콧물 다 뺄 정도다. 부추의 향긋함에 눈을 떴고, 갓 딴 오이의 아삭함과 애호박의 달큰한 맛에 반했다. 일주일에 절반은 채식 밥상을 차릴 정도가 되었다. 소시지나 고기 없이는 밥 안 먹던 초딩 입맛 편식쟁이의 대단한 발전이다.


 이곳에 온지 6개월, 4kg이 빠졌다. 몸도 가볍고 다리 붓기도 덜 하고 훨씬 건강해진 것을 느낀다.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 농장에서 식탁까지 0km.
소태 포레스트,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지난 주 마지막 토마토들로 선드라이 토마토를 만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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