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네요. 예쁜 함박눈이에요. 기후온난화로 눈이 잘 내리지 않는 겨울인데 오늘은 소담 소담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내리는 걸까요?
오늘은 502로서 마지막 날입니다. 502의 356일은 정말 빠르게 지나가버렸어요. 내일이면 502의 삶을 접고 512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502에서 512로. 50살에서 한 살을 더 먹었을 뿐인데 숫자로 적으니 10살이나 먹어버렸는데요? 하지만 한 살을 더 먹어도 제 이름이 ‘오영’이니까 ‘오일’로 개명하지 않는 한 전 계속 오영이잖아요. 하하하 진짜 나이 먹기 싫은가 봅니다.
45살에는 45살 기념으로 한라산 등반을 했었어요. 그런데 50살에는 기념으로 남길만한 그 어떤 행보가 없었네요. 그냥 시계 위에 앉아만 있었어요.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네요. [502의 라디오브런치]를 했네요.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죠. 그리고 많은 502님들과 이야기 나눴습니다.
같이 공감해 주시고, 의견 주시고, 사연 보내주시고…. 저는 드린 것 없이 받기만 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날이라서 그럴까요, 자꾸만 말문이 막히고, 코끝이 맵고 그러네요.
이야기 나누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어요. 오랜 친구들과 이별하며 떠나야 하는 것 같은 안타까움, 서글픔, 아쉬움 등등 만감이 교차합니다.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조금 후회됩니다.
70대 80대 어르신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어떻게 저 나이까지 살아오셨을까, 어떻게 버티셨을까, 저분들이 지나온 시대는 내가 지금 사는 시대보다 더 빠듯하고 힘들고 아픈 시대였는데 어떻게 견뎌내셨을까- 하면서 존경했습니다.
전 못 할 거 같습니다. 요즘은 쉽게 쉽게 하던 집안 일도 버겁고, 말할 때 생각나지 않는 단어도 많아져서 답답하고, 무기력하고, 무의미하고, 귀찮고, 이만큼 살았으면 열심히 잘 살았다 싶고 그러거든요.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펴지 못하는 허리로 폐지를 줍거나, 휜 다리로 절룩거리며 양손 가득 무겁게 뭔가를 들고 가시거나, 가져온 채소들을 다듬으면서 노점에서 판매를 하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우면서 대단하다고 느끼면서 나 자신이 부끄러우면서…. 난 저 나이가 되어도 저렇게 열심히 살 수 없을 거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르신들을 보면서 자꾸 저 자신을 그분들에게 투영시키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할까 봐요.
난 지금 30년 후의 미래로 왔어. 그리고 80살이 된 미래의 나를 봤어.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왔어.
80살의 내 모습이 내가 그리던 미래가 아니라면 미래의 내가 되지 않기 위해 현재의 나는 달라져야 해. 그래야 미래를 바꿀 수 있어.
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해야 하는 거죠? 30년이나 남았는데 무라도 썰 수 있겠죠? ㅎㅎㅎ
내일이면 51살이 됩니다.
시험 보기 싫어서 내일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아닌, 내일은 다른 무언가 하나만- 단어 하나라던지, 반찬 하나라던지, 운동 하나라던지, 영화 한 편, 책 한 권이라던지, 뭔가 하나만 하자라는 마음으로 살아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