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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말가 Mar 17. 2023

[#502의 라디오브런치]- 요즘 세상

- 옴니버스 소설 -

안녕하세요, 이야기길잡이 이오영입니다. [#502의 라디오브런치] 지금 시작합니다.

오늘은 어떤 브런치 드시나요? 저는 방금 내린 커피와 갓 구운 크로와상을 준비했어요. 저의 브런치, 얼핏 뭔가 모던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사실은 밥이 없어서 냉동고에 있던 유통기한이 두 달 넘은 빵을 해동시켜 먹는 상황입니다. 핫핫!

 여러분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이라고 생각하세요?

살기 힘들다.

빈익빈부익부다.

있는 사람만 잘 사는 세상이다.

먹기 위해 사는 세상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스마트하게 살기 편한 세상이다.

지루하고 답답한 세상이다.

불안해서 애들을 맘 놓고 바깥에 둘 수가 없다.

구석기시대보다 조금 나아진 세상이다.

요즘은 덕질에 빠져서 세상이 전부 아름다워 보인다.

가끔 현타가 오는 세상이다.

예~ 여러 가지 의견들 주셨네요. 긍정적인 의견도 있고, 재미있는 의견도 눈에 띄지만 아무래도 부정적인 의견이 조금 더 많이 보입니다. 저 역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쪽입니다. 우리나라가 꽤 안전한 나라라고 합니다만 저는 밤 9시 넘으면 혼자서는 밖에 못 나가거든요. 사람이 무서워서요. 치안이 무섭다기보다는 사고를 당했을 때 사고에 대한 타당한 결과를 얻지 못할 것 같은 불신감이 커요. 세상에 대한 믿음이 없는 거죠.

 

 얼마 전에 조카딸이 전화를 해서는 대뜸,

“이모, 나 오늘 착한 일 했어요.”

라며 엄청나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얘가 집 근처 재래시장에 가서 장보고 나오는데 어떤 할머니가 짐을 무겁게 들고 앞서 가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짐을 들어드렸대요.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고 하셨대요. 그렇게 시장 밖으로 나와 짐을 건네 드리면서 어떻게 집에 가시냐고 물었더니 버스를 타고 가신다고 했대요. 짐이 많은데 괜찮으시냐니까, 괜찮다며 집이 멀지 않다며 고맙다며 착하다며 어서 가라고 했대요. 그래서 얘는,

“할머니 집까지 태워 드릴게요."

그랬대요.

어휴~ 애가 마음이 참 여려가지고. 뭐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아요. 집 앞에 내려주고 좋게 좋게 헤어지면 잘한 거죠. 그래서 짐을 싣고 할머니를 집까지 모셔다 드리게 됐답니다. 다행히 멀지 않은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셨대요. 가는 중에  할머니와 따님이 통화를 했고 도착하니 따님이 마중 나와 있었대요. 따님은 할머니가 내리자마자 왜 혼자 장을 보러 갔냐며 나무라고는 곧 얘에게 태워다 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대요. 가는 길이라 괜찮다며 인사하고 차에 타려는데 할머니랑 따님이 얘를 잡았대요.

“집에 들어가서 차 한잔하고 가세요. 너무 고마워서 뭐라도 대접하고 싶어요.”

괜찮다고 하는데도 계속 집에 들렀다 가라고 붙잡았대요.

어우….. 너무 무섭지 않나요? 저 같으면 됐다며 그냥 냅다 돌아섰을 텐데 얘는, 얘는,

“그럼 차 한잔만 하고 가겠습니다.”

했대요. 그 말을 듣고 저는

“ 너 미쳤냐?”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모르는 사람을 넙죽넙죽 따라 들어가냐!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먹으면 안 되는 거 모르냐! 그것도 임신까지 한 애가!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자기 딴에는 착한 일 했다고 자랑하려고 얘기한 건데 저의 느닷없는 호통에 기가 죽고 말았어요.

들어가서 요구르트랑 쿠키랑 대접받고 무사히 집에 돌아왔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얘가 또 한 가지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더라고요. 할머니가 전화번호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줬대요.


아이구구야아아아아아——————

이 문디야아아아아아————

뭐 팔아달라고 전화하면, 뭐 부탁하려고 전화하면, 시장 갈 때마다 전화하면, 피싱 사기라도 당하면 어떡하려고오오오오오—————


정말 천만 만만 다행히도 고맙다고 한 번, 임신 중인데 먹고 싶은 거 없냐는 문자 한번 오고는 더 이상 연락은 오가지 않게 되었다고 해요.

전 그 재래시장 다시는 가지 말라고까지 했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제 반응이 너무 심한가요? 요즘 세상에 얘처럼 이러면 안전불감증에 어리석거나 바보 같은 행동 했다고 그러잖아요.

저한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버스정류장까지는 들어드리는 것까지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수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선행은...

얘는 착한 일을 한 착한 사람이 맞고, 할머니와 그 따님도 고마움에 답례를 한 것일 뿐인 착한 사람들의 에피소드였지만 저는 가슴을 쓸어내렸던 에피소드였습니다.

얘가 제 엄마나 오빠한테도 얘기했는데 저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고 하네요.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세상은 자신이 만드는 것일 수 있어요. 좋게 좋게 선하게 착하게 살면 아름다운 세상 만들 수 있죠. 하지만 그런 선한 사람을 지르밟고 이익을 챙기거나 자기만족을 하는 악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세상엔 선인들을 노리고 도사리고 있는 악인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이 세상은 악인 지뢰밭입니다아—-!!!

………

역시……제가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고 있죠?  폭주한 거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갑자기 길에 쓰러진 노인을 모른 척하지 않고 심폐소생술로 목숨을 구한 사람, 바닥에 떨어진 깨진 유리병들을 치우는 사람, 교통사고로 차에 깔린 사람을 차를 들어서 구해내는 사람들, 연말에 동전 모아 기부하는 사람들, 폐지 팔아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는 어르신 등등 선하다 못해 천사 인가 싶은 사람들을 아직은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런 말을 하죠.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세상이 선하게 변할 거라는 기대는 솔직히 하지 않습니다만 최소한 다른 사람을 지르밟거나 피해 주는 사람이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두 번 강조하면서 오늘 [#502의 라디오브런치]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착하진 않지만 그렇게 나쁜 인간은 아닌 이야기 길잡이 이오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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