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문해력과 공부의 상관관계
공부를 잘한다는 기준은 어떻게 세울까?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하니까 우리는 시험 성적이 잘 나오는 경우를 공부 잘하는 기준으로 세운다. 그러면 문해력과 공부 관계를 밝히는 것은 문해력과 성적이 관계가 있음을 밝히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문해력을 대표하는 능력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어휘력이 어떻게 성적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알아보며 그 상관관계를 살펴보자.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가 열심히 공부의 과정을 통해 받게 되는 성적표라는 결과를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노력의 과정과 완성된 집으로 비유해보자. 집을 짓기 위해서 우선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동화 <아기 돼지 삼형제>에서도 나오지만 집을 지을 재료가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이왕이면 튼튼한 집을 지어야 하니까 그 재료를 벽돌이라고 해보자. 벽돌의 질은 우수해야 하고 충분한 양이 있을 때 더 크고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벽돌도 재료의 성질에 따라 질이 다를 수 있다. 쉽게 생각해보면 얼마나 단단한 벽돌인지 아닌지 외관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흠집 하나 없는 단단한 벽돌일 수도 있고, 모서리가 부서진 벽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벽돌의 양이 충분해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벽돌이 부족하다면 더 큰 집을 짓고 싶어도 한계에 부딪히게 되니까 말이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벽돌이라고 했다. 공부(성적)에서도 지식을 쌓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을 글을 읽는 것인데, 그때 첫 단계로 필요한 것이 바로 어휘력이다. 어휘가 모여서 문장을 이루고, 문장이 모여서 문단을 이루고, 문단이 모여서 하나의 글을 이루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해당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지식을 끌어내는 행위까지 해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고로 어휘력이 얼마나 준비가 잘 되어 있느냐에 따라 시작점이 달라질 수 있다.
EBS 다큐프라임 <언어발달의 수수께끼>에서는 어휘력은 아이의 학습 능력과 지능을 좌우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하며 미국의 한 실험을 소개했다. 가정환경이 비슷한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A그룹은 학교 정규과목만 가르쳤고, B그룹은 정규과목과 어휘력 학습을 추가해 가르쳤다. 일정 시간이 흐른 뒤 두 그룹의 성적을 비교해보니, B그룹 학생들의 성적이 더 높게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어휘력과 관련 없는 과목까지 성적이 높았다는 점이다.
어휘력과 성적의 상관관계는 이런 사례를 통해 단순하게 밝힐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서 어휘력이 성적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휘력이라는 능력을 더 세분화해서 보면 조금이나마 성적 향상을 위한 어휘력 향상 방향이 어느 방향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은 ‘사고도구어(Acadecmic Vocabulary)’다. 쉽게 설명해보자면,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쓰는 쉬운 어휘가 아니라 학문 분야에 쓰이는 어려운 용어를 의미한다. 또한 사고 및 논리 전개 과정을 담당하는 단어로써 교과서, 논문, 단행본 등의 글을 읽을 때 꼭 필요한 어휘 능력이다.
국어교육학회에서 진행한 <국어 사고도구어 능력과 교과서 읽기 능력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는 중학교 3학년 국어, 사회, 과학 교과서를 말뭉치화한 후 기초어휘와 사고도구어의 비율을 분석했다. 교과서에 수록된 사고도구어는 어휘 비율이 7.3%밖에 되지 않지만 전체의 20%를 차지한다고 했다. 혹시 파레토 법칙을 기억하는가? 20%라고 했지만, 사실은 나머지 80%를 모두 끌고 가는 중요한 비중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이 연구에서는 학습자들의 사고도구어 능력이 곧 교과서 읽기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능력이라는 것을 밝혔다. 사고도구어 능력이 약한 학습자들은 사고도구어에 주목하여 교과서를 읽지 않아 교과서의 내용을 섬세하게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로자의 권리 침해에 대한 구제라든가, 헌법재판소의 위상이라는 말에서 ‘구제’나 ‘위상’이라는 어휘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결국 전체 글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고도구어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통해 어휘력을 기르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단순히 책을 읽는다고 어휘력 향상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아이의 어휘력 수준과 시기별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기별 문해력 향상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4장에서 다룰 예정이지만 간략히 어휘력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우선 아이가 기본 생활 어휘력이 약한데 사고도구어가 중요하다고 너무 어려운 학문 용어만 학습하도록 강조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밥은 안 먹고 매운 반찬만 먹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단계가 있듯이 어휘력도 아이가 실제 생활에서 접하는 쉬운 어휘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직접 혹은 간접 경험을 통해 어휘를 확장해야 하는 것이다.
《4~7세보다 중요한 시기는 없습니다》에서 인지 능력과 비인지 능력의 조화를 강조한 이유도 어린 시절 아이들은 단순히 글이 아닌 보고, 듣고, 느끼면서 직접 경험하면서 학습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어린 시절에는 감정을 중요시하는 비인지 능력을 기반으로 어휘력이 향상된다고도 볼 수 있다. 부모가 하는 말 한마디도 아이가 어떤 감정이냐에 따라 받아들일 수도 혹은 거부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정리해보면, 어린 시절에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표현으로 시작해야 하고 긍정적인 감정이 전달되도록 소통해야 한다는 말이다. 참고로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과 앤 퍼날드 교수는 어휘력이 지능과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다. 실제 생후 24개월 아이들의 어휘력을 측정하고 3년 후 추적 관찰했는데 표현 어휘 지수와 어휘 인식 속도가 높았던 아이들이 지능 및 학업 성취도가 높았다고 밝혔다.
단순히 독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린 시절 부모 혹은 양육자와의 소통에서부터 아이의 지능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한 연구라 볼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더라도 나중에 스스로 글을 읽게 되고, 감정적인 요소가 아닌 이성적인 요소를 활용하여 문해력 향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이왕이면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 정석을 밝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비록 어린 시절도 중요하지만, 이성적 사고가 발달하는 시기에 사고도구어 학습이 왜 필요한지 밝히고자 한다. 어린 시절에 해외 거주 경험이 있거나, 영어 유치원을 다니거나 해서 영어 발음이 좋은데 영어 시험 성적이 잘 안 나오는 경우를 봤다. 일상생활 영어는 매우 유창하게 하는데 수업 시간에 배우는 교과서 내용이나 어려운 시험 지문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부족했다. 그 이유는 어려운 사고도구어가 들어간 글을 많이 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어린 시절 말하기와 듣기 중심으로 언어를 배웠지만, 독서를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는 다양한 학문적인 글을 꾸준하게 읽었던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를 비롯하여 시험에 나오는 어려운 지문을 이해하고 좋은 성적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다른 과목에서도 학문적인 글 읽기를 통해 형성된 사고도구어 어휘력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관한 연구 결과도 있다.
<고등학생의 사고도구어 어휘력과 학업성취도의 상관관계>라는 논문에서는 사고도구어가 국어, 사회, 과학 과목의 텍스트를 이해하고 학습하는 데 있어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미 사고도구어를 충분히 학습한 상위 그룹이나 다른 요인으로 인해 학업성취도가 낮은 하위 그룹이 아니 중위 그룹에서 사고도구어 어휘력과 학업성취도 상관관계가 유의미했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눈치를 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말한 ‘사고도구어’는 EBS 다큐프라임 <당신의 문해력>에 나온 ‘학습도구어’다. 현재 학생들의 학습도구어 어휘력이 너무 낮은 상태라 더욱 독서를 통한 어휘력 향상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한다. 따라서 문해력의 가장 기초가 되는 (학습)어휘력 향상을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