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두 번의 대학입시 실패

하지만 나는 실패한 인생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by 신영환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나는 경기도의 한 명문고등학교를 다녔다. 전성기 때는 1년에 50명 가까이 서울대에 학생들이 진학할 정도로 공부를 정말 잘하는 인재들이 이 학교로 모여들었다. (한 일화로 학교 교복을 입고 음식점에 가면 학교를 알아보고 서비스 음식을 내줄 정도였다. 실제 내가 겪었던 일이다.) 내가 봐도 내가 다녔던 학교는 정말 공부 괴물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수학 과목 교육과정을 모두 끝낸 학생부터, 토익 만점을 받는 학생까지 이미 실력을 갖춘 학생들로 넘쳐났다. 나는 그런 환경 속에서 생활하며 점점 자신감을 잃었고 방황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 건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지 모르겠지만 첫 시험에서 큰 충격을 받았던 건 잊을 수 없다. 16년 남짓 살아오면서 등수를 뒤에서부터 세어본 적이 없었기에 첫 시험의 충격은 남은 고등학교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사실 처음에는 오기를 부려봤다. 재기를 꿈꿨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 꿰매야 한다.”는 말이 맞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완전무장한 공부 괴물들을 절대 이길 수는 없었다.


분명 입학할 때만 해도 나의 목표는 일류대학에 진학하는 거였다. 하지만 성적을 받을 때마다 나는 쓴맛을 봤다. 약보다 더 쓴맛이었고, 절망을 부르는 맛이었다. 비록 고등학교 입시에는 성공했지만,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언제나 낙오자였고 실패자였다. 그렇게 실망을 거듭하며 나는 무기력을 학습하게 되었고,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다. 그때는 몰랐지만, 교육심리학에서 말하는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것을 나는 경험하고 있었다.


‘학습된 무기력’은 실패를 계속 경험하며 부정적인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생긴다. 미국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습된 무기력은 미래의 상황에 대해서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통제력에 대한 상실감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고 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바뀔 수 없다고 믿고 아무런 시도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또한, 우울증, 열등감, 의욕 상실 등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그때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 하나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공부 괴물들이 다니는 이 학교에 입학한 게 가장 큰 잘못이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안 좋은 결과를 나의 노력이 아닌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는 거다. ‘귀인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실패의 원인을 ‘나의 부족한 노력’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실패의 원인이 ‘능력, 행운, 환경, 상황’과 같은 바꿀 수 없는 요인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학습된 무기력에 잘못된 귀인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실패자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었다.


사실 부모님은 내가 명문고를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한테 거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점점 사라지는 자신감, 떨어지는 성적을 보시며 불안하셨는지 자기 주도 학습이 중요한 고3 때 부모님의 노후 자금을 당겨서 사교육에 크게 투자하셨다. 하지만 오히려 그 투자는 역효과를 낳았다. 공부는 스스로 생각하면서 해야 하는데 수능 때까지 남은 시간 동안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지나고 보니 이게 내가 대학입시 준비과정 속에서 실패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내 생각엔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늦었다.”라고 개그맨 박명수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대학입시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끝이 없었다. 학습된 무기력, 잘못된 귀인, 쉬운 포기, 타인에 의지한 학습, 부정적인 마인드 등 실패자로서의 자격요건을 제대로 갖췄던 것 같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3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2002학년도 수능은 불수능이었다. 1교시 국어 시험이 끝나고 바로 옥상에 올라가 투신자살을 한 학생도 있었고, 시험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에 뛰어든 수험생도 있을 정도로 큰 충격을 남겼던 시험이었다. 2001학년도 수능 난이도가 너무 낮아서 2002학년 수능은 정말 어렵게 문제가 출제되었다. 평소 풀던 모의고사 문제와는 차원이 달랐다. 400점 만점에 390점 이상씩 받던 공부 괴물 친구들도 50점 가까이 점수가 떨어졌으니 말 다했다. 고3 때 나는 원하는 대학에는 갈 수 없을 거라 생각해왔다. 재수를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계속 생각했다. 심지어 이 생각은 1교시 국어 시험 문제를 풀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그렇게 나는 평소보다 90점이나 적은 점수를 받고 재수를 결심했다.


지금도 계속 한쪽 가슴이 메어오는 후회되는 일이 있다. 재수할 때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했던 일이다. 나는 원래 문과였는데, 무슨 바람인지 갑자기 한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재수할 때는 이과로 준비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배우지 않았던 수학 II 과목을 새롭게 배워야 했다. 선택과목이었던 생물 II도 더 공부해야 했다. 1년이라는 시간은 벌었지만 내가 못하는 이과 과목을 새롭게 배워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사실 3개월 정도는 수학 과목을 제외하고는 성적이 많이 올라서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계속 오르지 않는 수학 때문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 ‘기하와 벡터’ 개념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 위기를 느꼈다. 한의사가 되려면 거의 만점에 가깝게 수능 점수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수학 점수가 형편없었다. 그런 와중에 2002년 월드컵 때 대한민국 태극전사는 4강까지 진출하게 되었고, 축제 분위기 속에서 공부에 집중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축구 경기가 있을 때마다 응원하느라 잠시 재수생이라는 신분을 잊고 지냈다. 월드컵이 폐막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능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미 늦었음을 직감했다. 그 상태로는 절대 한의대에 진학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게 걱정, 불안, 초조함 속에서 매일 밤에 잠 못 자고 고민하며 두려움 속에서 시간을 허송세월 보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 것처럼 나에게는 기회는커녕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가 기다렸다. 사람이 기억하고 싶지 않을 때는 망각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실제 고3 때 봤던 수능보다 더 낮은 점수를 받은 건 기억나는데 점수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또다시 원하는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다. 원하는 대학이 아니라 그때 받은 점수로는 대학이나 갈 수 있을지 몰랐다. 수능 시험을 문과로 봤으면 모를까 때마침 교차지원도 거의 막혀있어서 방법이 없었다. 나의 두 번째 대학입시에 대한 도전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공부가 인생에 전부였던 나의 인생은 그렇게 막을 내릴 뻔했다. 3일 동안 거의 굶어가며 자살을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주요한 5가지 자살 방법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몇 가지 방법은 시도했다가 엄습하는 죽음을 느끼고 중간에 두려워 멈추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에 대학이 전부가 아닌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생각이 잠시 든다. 정말 다행인 건지 모르겠지만 막상 죽으려니 죽는 게 두려웠다.


나는 대학입시도 두 번이나 실패하고, 자살도 실패한 겁쟁이였다.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일을 모두 실패만 하니 이제는 내려갈 데가 없었다. 바닥에 있으니 그냥 현실을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쓸데없고 그 못난 자존심으로 인해 실패만 거듭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내가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남들보다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가 그렇지 못하니 모순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나의 하찮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한순간에 자존심을 버리고 나니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한 참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대학 간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고등학교 3년 동안 해야 할 일이었다. 바로 진로를 고민하는 일. 하지만 나는 대학 이름에만 집착했지 제대로 된 진로 고민하지 않았었다. 늦바람이었지만 진지하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늦었을 때가 가장 이르다.”는 말을 이제는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와 같은 외국어를 좋아했다. 누군가한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를 알려주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런 모든 것을 종합했을 때 우선 외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생각했다. 학생들이 나처럼 고등학교 때 대학을 쫓는 바보가 되지 않고, 진로를 고민하도록 돕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수능 점수가 낮아서 사범대 진학은 어려웠으나 영어영문학과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교직 이수를 했다. 사범대에 갔으면 더욱 편하게 교사 자격을 얻었겠지만 나에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차근차근 교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분명히 나는 대학입시에는 두 번이나 실패했다. 하지만 교사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는 그리고 남은 내 인생을 위해서는 실패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언제나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매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며 성장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가끔은 그 시절이 후회스럽고 아쉬움에 욕심이 생겨서 괴로울 때도 있다.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실패의 요건들을 제거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지나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그래도 나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적어도 내가 학교에서 만나고 있는 제자들에게는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도록 도울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어느 대학을 갈지 고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 고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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