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때로는 읽기 힘든 어려운 책도 읽어보자

4장. 올바른 독서 습관 만들기

by 신영환

어렵다는 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내용이 정말 생소하고 어렵거나 내용이 많아서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다. 보통 어려운 책은 이 두 요소를 모두 포함한다. 내용도 어려우면서 많이 두껍다. 《총, 균, 쇠》는 760쪽, 《코스모스》는 719쪽, 《사피엔스》는 636쪽, 《정의란 무엇인가》는 444쪽, 《국화와 칼》은 416쪽이다. 이 책 모두 우리가 쉽게 읽는 보통의 책과는 달리 좀 더 심오한 분야를 다룬 책이고, 분량도 배다. 한 권을 읽는데 시간도 몇 배 더 걸린다. 아마도 중간에 포기한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2022학년도 수능 국어 만점 받은 수험생은 고작 28명에 불과했다. 비록 정답률 20% 미만인 ‘초고난도’ 문항은 없었지만, 독서 영역에서 헤겔의 변증법을 다룬 문항과 기축통화, 환율 변동 등을 다룬 문항 등이 고난도 문항이었다. 2019학년도 수능 국어에서는 역대급 초고난도 전설의 문제라 불리는 31번 문항이 있었다. 정답률은 고작 19%, 바꿔서 말하면 오답률이 81%에 달했다는 의미다. 소재는 ‘만유인력 법칙’으로 물리 교재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학생들이 수능 시험에서 경험하는 글의 소재는 정말 다양하다. 국어뿐만 아니라 영어에서도 모든 분야의 지식이 총동원되어 시험 문제로 나온다. 특히 과학 분야의 지문이 시험에 나오는 경우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다. 과학에는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이 있다. 그중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물리 과목은 역학, 에너지, 물질, 전자기장, 파장 등이 있다. 다시 역학에서는 속도, 가속도, 운동 법칙, 운동량 등이 있는데 관련 이론과 법칙이 다양하다. 실제 수능 모의고사와 수능 시험에서는 고전 역학, 양자 역학, 회전 역학 등 어려운 이론이 등장했다.

만일 관련 배경 지식을 평소에 쌓아두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도 어려운 데 머릿속이 백지상태라면 손도 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생소하고 어려운 지문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힘들지만 때로는 어려운 책을 읽으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만일 이런 종류의 책을 처음 접해서 읽게 된다면 분명 처음에는 당연히 내용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래도 그냥 한번 훑어본다는 생각으로 읽어야 한다. 내용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계속 읽으라는 말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7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어보는 것이다. 단 다시 읽어볼 생각이 들 때쯤 다시 도전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처음에는 전혀 몰랐던 내용도 두 번째 읽을 때는 조금씩 아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 책을 다시 읽기 전까지 경험하는 모든 지식과 처음에 읽었던 책 내용을 나도 모르게 연결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비록 두 번째도 100% 이해되는 건 아니지만, 10%라도 이해할 수 있으면 성공이다. 세 번째는 20% 이해하면 되기 때문이다.


대신 다시 책을 읽을 때는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읽어야 한다. 그 간격 사이에 다양한 직간접 경험을 통해 이해하는 힘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서양화(유화)를 그릴 때 새롭게 덧칠을 하기 위해서는 다 말린 후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덧칠 단계까지 오기 위해서는 기본 작업이 여러 번 시간 간격을 두고 이뤄진다.


서양화(유화) 초보자라면 석고와 아교를 혼합한 ‘젯소(gesso)’라는 재료를 캔버스에 세 번이나 흰색을 입히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배경이 매끈하게 자리 잡기 때문이다. 그리고서 유화로 배경색을 칠할 수 있다. 배경색을 칠한 후에는 위에 스케치하고, 천천히 스케치 그림마다 색을 입히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는 전에 칠한 재료가 마를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한다. 안 그러면 색이 섞이게 되어 그림을 망칠 수 있다. 하지만 철저히 이 과정을 거치면 나중에는 점점 입체감 있는 그림으로 바뀐다. 색을 덧칠할수록 입체감이 살아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책을 읽는 과정은 마치 유화를 그리는 과정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이해가 잘되지 않더라도 일단 한두 번 정도는 백지상태인 채로 그냥 읽어보는 것이다. 캔버스에도 세 번이나 젯소를 칠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음번에 읽을 때는 조금이라도 아는 내용을 머릿속에 추가하며 읽는 것이다. 물론 그 중간 시간 간격을 두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책에 나오는 내용을 떠올리며 연결하는 시간을 갖는다. 살아가면서 관련된 지식을 만나면 연결되어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번에 걸쳐서 책을 읽으면 아무리 어려운 책도 횟수를 거듭할수록 점점 내용이 선명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유화 그림에 덧칠할수록 점점 입체감과 생동감을 가진 작품으로 탄생하는 과정과 같다는 말이다. 그러니 딱 한 번만 오랜 시간을 두고 여러 번에 걸쳐서 어려운 책에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고등학교에 가면 모든 과목이 새롭고 어려운 내용인데 분량도 많다. 그 많은 개념을 이해하고 적용하려면 그만큼 시간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어려운 내용을 읽고 정리하고 이해하는 연습이 부족한 학생은 이 과정에서 부담감을 느끼고 중도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미리 연습해온 사람이라면 어려워도 잘 견디고 버틸 수 있다.


다행히도 시험에 나오는 지문은 책 전체를 읽는 것만큼 길지 않다. 평소에 턱걸이 10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1개 정도는 무난히 할 수 있는 것처럼, 책 한 권을 다 읽고 소화의 과정까지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새로운 지식을 배워도 분량이 만만해서 해 볼만하다. 그래서 어려운 지식 책에 도전하라는 말이다.


단 어려운 지식 책을 읽을 때는 스토리를 읽고 끝내는 게 아니라 개념을 정리하는 습관을 기르는 게 좋다. 방법은 다양하지만, 키워드 중심으로 구조도를 그리거나 요약하면서 읽는 방법이다. 실제 고등학생들이 국어 비문학 지문을 읽을 때 많이 하는 방법이다. 물론 영어 지문을 읽을 때도 키워드를 적으면서 읽으면 문제 푸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것은 실제 수능 만점자들의 공부 비법이기도 하다.


조금 더 팁을 주자면, 어려운 책을 읽을 때는 책 뒤에 있는 용어 설명 파트를 활용할 것을 추천한다. 일명 인덱스(index)라고 적힌 곳에 가서 어려운 용어가 적혀 있으면 찾아서 추가 공부를 하는 것이다. 나도 언어학, 교육학 공부를 하며 원서를 읽을 때 이 방법을 사용했는데 매우 유용했다. 대학 논문 수준의 책을 읽으면서 계속 모르는 단어가 나오니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인덱스에 있는 키워드 중심으로 확장 공부했더니 금방 용어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이런 용어들은 책에 반복해서 나오는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에 미리 익혀두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덕분에 다음 책을 읽거나 관련 논문을 읽을 때도 유용했다. 용어를 아니까 내용에 금방 익숙해지고 이해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How Languages Are Learned》라는 원서에 나온 용어 모두 익혔더니 다른 언어학과 교육학 관련 책은 너무나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관련 논문을 찾아서 읽을 때도 수월했다.


이뿐만 아니라 뇌과학 관련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시작했으나 뇌 구조부터 관련 용어까지 너무 많아서 다 외울 수도 없고,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같은 주제의 책을 또 읽으면서 전에 읽은 책에 나온 내용이 겹치니 관심이 생겼고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자세히 내용과 관련된 정보를 찾았고, 덕분에 이해할 수 있었다.


뇌과학 관련 책을 10권 넘게 읽다 보니 이제는 뇌의 구조도 많이 이해되고, 뇌와 관련 용어도 알고 있고, 심지어 호르몬에 대해서도 강의할 때 인용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물론 아직 뇌과학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만큼 전문가는 아니지만, 충분히 뇌과학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단계에 올랐다는 느낌이 든다. 만일 뇌과학이 어렵다고 포기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설명하고 싶은 많은 이론과 지식을 뇌과학에 연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시 쉬운 책만 읽을 때보다 어려운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오히려 촘촘하게 지식이 쌓인 느낌이다.

서양화(유화) 초급자를 넘어서면 캔버스에 더 이상 젯소를 바르지 않고, 자기가 그릴 전체 그림이 가지는 색을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바탕을 칠한다고 한다. 아크릴 물감은 수성이라 금방 마르기 때문이다. 멋진 작품을 완성하기에 앞서 남들보다 빠르게 배경을 칠하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어려운 책을 경험한 사람도 이와 같은 경험을 하리라 믿는다. 어려운 책을 한 권 성공해내면 다음번에는 혹은 그 다음번에는 좀 더 빠르게 책을 정복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생소하고 어려운 지식을 만나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빠르게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훈련만 미리 잘해둘 수 있다면 분명 문해력이라는 무기로 험난한 수험생활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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