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 삶의 원동력이자 에너지
‘열정’은 꺼지지 않는 불꽃과 같다. 불꽃이 발생하려면 연소의 3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한다. 연료(가연물), 열(점화원), 산소(공기)가 3요소이다. 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않으면 아무리 강한 불꽃도 꺼지기 마련이다. ‘열정’의 3요소로 바꾸어 보면, 열정을 불태울 흥미로운 대상(가연물), 강력한 동기(점화원), 지속적 노력(공기)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열정의 불꽃도 3요소 중 하나라도 사라지면 불꽃은 힘없이 꺼진다.
어떤 한 분야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이 열정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좋아하고 흥미로운 분야를 찾고,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동기가 생겨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발전을 거듭해 그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선수들이 예가 된다.
축구에 대한 열정을 가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박지성 선수는 어린 시절 매일 축구 훈련 일기를 작성했다. 축구를 하기에는 비교적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그 일기장을 공개한 적이 있다. 축구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부족함을 깨우치며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노력 끝에 어린 나이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발, 해외 축구리그로 진출, 심지어 프리미어 리그 강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트 축구 클럽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현재는 동양인 최초로 엠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도 엄청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모두 ‘열정’이라는 불꽃을 모두 가슴에 품고 있었다. 도대체 열정이 무엇이길래 실패와 좌절을 이겨내고 성공의 길로 인도하는 것일까? 소설가 정준은 《열정이 없으면 꿈도 없다》라는 책에서 ‘열정’은 ‘초인적인 힘’ 혹은 ‘우리 삶을 좌우하는 에너지’라고 말했다. 나아가 열정은 지독한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며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게 하는 힘이며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루게 해준다고 한다. 국어사전에서도 ‘열정’은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라고 찾아볼 수 있듯, 열정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강한 동기와 에너지를 준다.
사실 우리는 삶 가까이에서 ‘열정’을 경험한다. 내가 잘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때 더욱 그러하다. 어릴 때 나는 친척한테 탁구를 처음 배운 적이 있다. 처음이라 많이 어색했지만, 가벼운 플라스틱 탁구공을 딱딱한 나무에 고무가 덮여 있는 탁구채로 쳐서 넘기는 일이 재밌었다. 승부욕이 어디서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나를 가르쳐준 친척을 이기고 싶어서 탁구채도 새로 사고, 시간 날 때마다 탁구채를 휘두르며 스트로크를 연습했다.
탁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흥미(가연물), 잘하고 싶은 마음(점화원), 꾸준한 연습(산소)이라는 3요소가 형성되어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력한 ‘열정’의 불꽃을 태울 수 있었다. 일주일간 꼬박 연습하고 다시 나에게 탁구를 가르쳐준 스승한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곤 보기 좋게 ‘청출어람(靑出於藍)’ 해버렸다. 제자가 스승을 이겼으니 스승은 당황하는 역력을 보였고, 제자는 짜릿한 성취감을 느꼈다. ‘열정’을 가지고 탁구를 연습하다 보니 재미있어서 더 잘 치고 싶었다. TV를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잠시 쉬다가도 탁구채를 들고 허공에 휘둘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몰입도는 최고조였다.
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우리에겐 ‘열정’이 나타난다. 대학에 입학해서 자기효능감을 회복하는 일이 우선이었다면, 그다음 무언가에 몰입하고 내 인생에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영어영문학과에 다니고 있으니 무엇보다 ‘영어’와 관련된 일을 통해 ‘열정’을 찾고자 했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ABCD 알파벳부터 영어를 배운 세대다. 근데 내가 다니는 대학에는 해외에 살다가 온 동기와 선배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원어민처럼 영어 말하기를 잘했다. 반면 나는 27살 처음 해외로 유학 가기 전까지는 한번 도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었고, 수능 영어만 배우느라 듣기와 읽기만 공부한 순수 국내파였다. 영어 발음을 비롯해 영어 회화를 따로 공부한 적이 없었기에 발음도 엉망이고 영어도 제대로 못 하는 부류였다.
정말 다행인 건 어릴 때 탁구에 ‘열정’을 쏟아서 급속도로 실력을 올렸던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자기효능감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는데, 조금은 다른 속성이다. 자기효능감은 내가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면, 열정은 내가 잘은 못 하지만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와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고 싶은 마음이다. 대학교 때 ‘영어’는 나에게 ‘열정’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었다. 아직은 잘은 못하지만 잘하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에 발도 들여보지 않았어도 순수 국내파 출신 ‘영어’ 전문가가 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학교 수업은 물론이거니와 매일 이른 아침마다 원어민 교수가 진행하는 영어 회화 수업을 들었고, 방과 후에는 영어 회화 학원에 등록했다. 주말에는 영어 회회 소모임에 참여하여 실력을 더욱 올리고자 했다. 게다가 EBS에서 방영하는 ‘English Cafe’라는 프로그램을 매우 즐겨봤는데, 진행자의 이력이 매우 흥미로웠다.
EBS ‘English Cafe’라는 프로그램의 운영자는 문단열 선생님이었다. ‘비전공, 비유학, 비석사’ 출신의 순수 국내파인데 EBS에서 영어 강사로 활동하는 모습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연기하듯이 하는 모습을 봤기에 당연히 외국에 오래 살다 왔을 거라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문단열 선생님과 관련된 기사를 읽으며 그 모든 것은 ‘영어’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신학과에 다니고 있었지만, 영어 전공 수업을 신청해서 듣는 열정. 이를 비롯하여 어떻게 하면 학습자가 쉽게 영어를 배울 수 있을지 항상 연구하는 자세로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교육자로서의 ‘열정’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영어교사와 영어 강사는 조금은 다른 길이지만, 영어 실력이 우수해야 한다는 점은 공통분모가 있었다. 순수 국내파인 문단열 선생님 덕분에 내가 있는 환경 속에서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비록 나는 ‘비전공’은 아니지만 똑같은 순수 국내파는 맞으니 롤모델로 삼고 문단열 선생님과 동일시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금방 원어민처럼 영어로 말하는 건 쉽지 않았고,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그래도 조금씩 향상되는 영어 실력을 보며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정’은 식지 않았다. 문단열 선생님의 팬카페에서 활동하는 회원으로서 실제 방송국에서 하는 프로그램 방청과 야외에서 하는 특강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직접 경험을 통해 느낀 점은 영어는 상황에 맞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영어와 연기를 모두 연습해볼 수 있는 ‘셰익스피어 영어연극’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연한 계기였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 내 가슴을 뛰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영어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정말 큰 노력이 필요했다. 배우들은 대사를 외우고 상황에 맞게 연기를 해야 했고, 스텝들은 소품, 분장, 조명 등 조력자 역할을 해야 했다. 나의 경우에는 1학년 때부터 우연히 주인공을 맡게 되었는데, 영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연극이라는 경험도 처음이라 영어 발음도 연기도 엉망이었다.
포기할 만큼 힘들 때 예전 같았으면 정말 그만둘 수도 있었을 텐데, 영어연극은 내가 잘은 못해도 재미있고,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외국에도 오래 살다 왔고, 영어연극도 3년째 참여하고 있는 선배한테 간곡히 부탁해서 1:1 코칭을 받았다. 영어는 강세와 억양이 중요한데 그때의 나는 아직 그 감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선배가 알려주는 대로 강세와 억양 표시를 해가며 대본이 거의 걸레가 되도록 필기했고, 선배가 말한 대사를 녹음하여 그대로 따라서 했다.
남들보다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는데, 다행히도 영어연극에 대한 ‘열정’이 생겨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덕분에 무사히 셰익스피어 학회에서 주관하는 영어연극 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 비록 내가 한 연기가 전문 배우가 하는 연기도 아니었고, 내가 대사를 했던 영어도 원어민이 하는 영어만큼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무대에 올릴 정도까지 내 실력을 올렸으니 거기에 큰 의미가 있었다.
이렇게 영어연극에 대한 ‘열정’의 불꽃이 튄 이후로 나는 대학교 4년 내내 영어연극 대회에 참여하면서 그 불을 꺼뜨리지 않았다. 심지어 영어교사라는 진로를 진지하게 생각하던 내가 영어연극배우라는 길로 진로를 바꿀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막연히 영어를 잘해야겠다는 마음에서 명확한 목표를 찾게 되니 ‘열정’은 멈출 줄 몰랐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가슴이 뛰는 일을 찾았고,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직장인 동기부여의 기술 : 강한 동기가 강한 열정을 부른다》라는 책이 있는 것처럼 열정의 불꽃의 3요소 중에 두 번째에 해당하는 ‘강력한 동기’로 인해 열정의 불꽃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그래서 대학교 4년 동안 내가 가장 즐겁게 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영어연극’ 활동을 할 것이라 대답할 수 있다. 이후에도 어린이 영어 교구 제작, 교사 영어연극 동호회 활동, 학교에서 영어뮤지컬 동아리 지도 등 아직도 그 열정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우리는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경기 동안 꺼지지 않는 불꽃을 본다. 올림픽 ‘성화(聖火)’는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신에게 바치는 불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이 불꽃이 4년 동안 자신의 종목에 대한 ‘열정’을 가진 운동선수들이 올림픽 기간에도 끊이지 않는 ‘열정’을 보여달라는 뜻처럼 보인다. 운동선수들은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많은 좌절과 시련을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삶의 원동력이자 에너지원인 ‘열정’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경기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로 나는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도 인생이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정’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