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원리 이해를 통한 공부 자신감 회복
독일의 위대한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천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 말은 우리가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실제에 적용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런 공부는 소용이 없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시험을 보기 위해 지식을 습득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내가 필요해서 공부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경우는 적다. 그래서 공부가 재미도 없고, 하기 싫은 것이 아닌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에서 교직 이수를 하기 위해 교육학을 배우면서 나는 학습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됐다. 쉽게 말해서 그동안 내가 해왔던 공부는 정말 무의미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험에서 정답을 맞히기 위한 공부는 단기적이고 우리의 인생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교육심리학을 필두로 어떻게 학습이 이루어지는지 그 원리를 알게 되면서 내 공부방법도 바뀌었다.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생활에서 적용해보기로 말이다.
무엇보다 교사를 꿈꾸는 나로서는 학생들이 공부에 흥미를 갖게 하고 싶었고, 학습의 원리를 통해 누구나 공부를 즐기며 잘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학습의 원리가 정말 실제에 적용되는지 확인해봐야만 했다. 사실 그동안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했던 방식은 20세기 중반 유행했던 행동주의 이론과 관련이 많다. 행동주의 이론의 가장 핵심은 ‘자극과 반응’이다. 그리고 적절한 보상을 통해 행동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핵심이다. 대신 환경의 자극이 있어야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에 학습자의 경우에는 수동적인 자세로 학습하게 된다. 그리고 인지 과정을 통해 지식을 확장하기보다는 행동 수정과 관련이 많기에 한계가 있다.
반면, 이 행동주의 이론과 반대의 관점인 인지주의는 환경을 학습자가 지식 인식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구성해 나가는 걸 중시한다. 따라서 스스로 학습을 주도하는 능동적인 자세를 보인다. 인지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스위스 철학자 장 피아제가 있다.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의 핵심은 ‘동화와 조절’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 지식과는 다른 새로운 지식을 경험할 때, 기존 지식과 새로운 지식이 충돌하여 인지 불균형이 일어나기에 그것을 조절하여 평형을 이루려는 한다는 원리이다. 즉 우리의 인식의 틀인 도식(스키마)을 통해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고 내가 알고 있는 내용과 비교하며 인지하는 과정이다. ‘인지(認知)'는 곧 '아는 것'이며, 그래서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우선 우리의 기존 지식에서 나아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학습‘이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관련성이 있을수록 더 학습이 잘 이루어진다. 이는 사회적 상호주의 학자로 알려진 러시아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의 인지발달 이론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제안한 근접 발달영역(ZPD: Zone of Proximal Development)과 비계 설정(scaffolding)이라는 개념은 이를 정확히 설명한다.
우선 근접 발달영역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학습자가 스스로 도달할 수 있는 능력과 주변의 도움을 받아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구분하는데, 이때 아직 개척하지 않은 새로운 영역에서 추가 인지발달이 일어나려면 근접 발달영역 안에서 정교한 활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과 다른 점이 있다면, 피아제는 개인이 능력으로 스스로 인지발달 시킬 수 있고, 비고츠키는 개인과 사회가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교류하면서 인지발달이 일어난다고 봤다.
비계 설정(scaffolding)은 근접 발달영역 내에서 학습자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비계란 원래는 건축학 용어로 건물을 지을 때 일하기 쉽게 세우는 임시 구조물로 발판 혹은 디딤돌의 역할을 한다. 즉 학습자가 주어진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교사 혹은 유능한 또래가 도움을 제공하여 학습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디딤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이론들을 배우면서 ‘학습’이라는 것은 책상에 앉아서 그냥 단순히 내용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개인 혹은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며 내가 가진 지식과 새로운 지식을 연결 지어 확장해나가는 것이라 깨달았다. 즉 경험과 상호작용이라는 요소가 ‘학습’에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대학교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제시하신 학습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하는 과제, 조별 토의, 발표 등을 통해서 더욱 알차게 학습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대학에서 배우는 다양한 인지 이론을 통해 ‘학습의 원리’를 깨닫고 삶에 큰 변화를 느끼면서 학습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는 게 많아질수록 알아야 할 게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 박사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 차지하는 부분을 원이라고 한다면 원 밖은 모르는 부분이 됩니다. 원이 커지면 원의 둘레도 점점 늘어나 접촉할 수 있는 미지의 부분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지금 저의 원은 여러분들 것보다 커서 제가 접촉한 미지의 부분이 여러분보다 더 많습니다. 모르는 게 더 많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런데 어찌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배울 것은 많으니 나에게는 효율적인 학습 방법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다행히도 수업 시간에 배우는 교육학적인 이론으로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 완전한 학습이 이루어지려면 이해를 통한 암기가 필수라는 사실을 통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얻게 된 지식을 오래 기억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알아야 했다.
인지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정보처리 이론’은 기억관 관련된 이론이다. 우리는 무수한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데 모든 기억을 뇌에 저장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기억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감각 기억은 우리의 감각(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단기 기억은 정보를 조직하는 일시적인 단계로 짧은 시간 동안 잠시 정보가 머무는 기억을 말한다. 단, 뇌의 저장 영역에 전달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장기기억은 말 그대로 정보를 오랫동안 저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뇌의 저장 영역에 전달되어 정보를 기억에 쌓아두고 인출 가능하게 만든다.
상식적으로 봐도 우리는 우리가 받아들인 정보를 감각 기억이나 단기 기억에서 끝내지 않고 장기기억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야 우리가 배운 지식을 기억해내서 나중에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처리 과정에서 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기 위해 단기 기억을 부호화하고, 효과적인 부호화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유의미한 부호화 전략’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이는 새롭게 학습해야 할 정보를 기존의 지식과 잘 연결하여 학습 내용을 잘 이해하고 오래 기억하며 인출을 유리하게 만드는 정보처리 전략이다.
유의미한 부호화 전략에는 정교화, 조직화, 심상화, 맥락화 등이 있다. 정교화는 새로운 학습 내용을 기존의 지식에 연결하여 잘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조직화는 서로 관련 있는 것을 공통 범주나 유형으로 묶어서 제시하는 것이다. 심상화는 시각화하여 학습 내용 속의 중요한 정보와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구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맥락화는 관련된 상황을 제시하여 학습 내용에 대한 이해, 기억, 인출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런 전략들은 뇌의 작용과 관련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혼자 하는 공부의 정석》의 저자 한재우 작가는 공부란 '외부의 자극을 뇌 속의 장기기억에 저장하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기억의 원리는 시냅스(뉴런과 뉴런의 연결 부분) 형성과정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외부의 자극이 뇌 안으로 들어오면서 뉴런이 변하고 시냅스가 생긴다. 똑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그 자극과 관계된 뉴런에 미엘린이 생기고 미엘린은 정확한 신호가 반복될 때 두꺼워진다. 미엘린이 두꺼워질수록 뉴런에서 전달되는 신호가 빨라진다. 즉, 정확한 신호(똑같은 자극)를 반복해서 미엘린이 두꺼워져야 기억이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연구팀은 기억은 뇌의 측두엽 해마 부위에 저장되는데, 뉴런(뇌세포 혹은 신경세포) 사이의 접합 부위인 ‘시냅스’ 중 일부에 저장되는 것이라 밝혔다. 기억은 외부에서 정보가 반복되어 들어올 때 저장이 잘 된다. 여러 시냅스에 관련 정보가 저장되어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때문에 결합하면 기억과 인출이 더 쉬워진다. 그래서 관련 기억들은 서로 엮여서 하나가 떠오르면 연관된 다른 내용이 함께 떠오르게 되어 있다. 따라서 유의미한 부호화 전략이 효과가 있는 것이다.
미국 행동과학 연구소에서 이뤄진 ‘학습 효율성 피라미드’ 연구를 보면, 공부한 지 24시간 이후 기억에 남아있는 비율은 강의 듣기 5%, 책 읽기 10%, 시청각 수업 20%, 시범강의 듣기 30%, 집단토의 50%, 실제로 해보기 79%, 가르쳐보기 90%이다. 학습의 원리를 깨닫고, 기억을 오래 가져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일방적인 방향으로 학습하기보다는 쌍방향으로 자극을 주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학생이 눈으로만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한다. 하지만 자신이 익힌 지식을 실제로 적용해보려고 노력할 때는 효율성이 79%까지, 직접 가르칠 때는 90%까지 높아질 수 있다. 실제 교사를 꿈꾸던 대학생의 나도 공부할 때마다 내가 공부한 내용을 직접 써보기도 하고,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설명해봤다. 그러다 막히는 부분이 있거나, 내가 아직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부분을 찾아 채워가는 방식으로 공부했더니 학습 효율성이 높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렇듯 학습의 원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경험을 통해서 고등학교 때 잠시 잃었던 공부에 대한 확신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었다. 괴테가 말한 것처럼 지식을 아는데 그치지 않고 적용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점이 유효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