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 보행하는 인류의 역사
아기가 걸음마를 하기 위해서 몇 번이나 넘어지는지 아는가? 수백 번? 수천 번? 아기마다 다르겠지만 분명한 건 수없이 많이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 발, 두 발 걸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걸음마를 떼고 나서도 아이들은 수없이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마치 우리들의 인생처럼 말이다.
우리는 항상 도전받는 삶을 살고 있다. 따뜻한 양수로 감싸진 엄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보호받으며 있다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생존에 대한 도전을 받는다. 그리고 밖에 나오는 순간부터는 폐로 호흡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울음을 터트리며 첫 호흡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호흡이 잘 안 되지만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점점 안정을 찾는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시작부터 쉽지 않은 도전과 마주했고, 실패 속에서 다시 일어나 하나씩 해결해왔다.
아기 때는 생존과 가까운 기술을 습득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처음으로 하는 것이기에 쉽지도 않고, 실패도 많다. 하지만, 인생이 재미있는 건 인간이 점점 성장해서 커 갈수록 더 어렵고 힘든 일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하는 일마다 쉽게 해낸다면 우리 인생은 과연 재미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걸음마도 수천 번 넘어져야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도전과 실패의 무한 반복이다. 그래서 심심하지 않은 인생을 보낼 수 있다.
나도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도전과 실패 반복했다. 고등학교 때는 원하는 대학 진학 실패, 졸업 후에는 수없이 많이 떨어지고 불합격한 취업 과정, 30살이 가까워지도록 성공하지 못한 연애,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며 나는 점점 성장하고 있다. 그렇게 인생은 새로운 일의 연속이라서 쉽지가 않다. 우리가 새로운 일을 할 때 계속 실패하고 힘들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래서지 않을까?
하지만 힘들 때마다 혹은 실패할 때마다 좌절하기보다는 회복의 시간을 갖고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도전과 실패, 회복과 성장, 그리고 또 다른 도전을 반복한다. 나도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실패하면 회복과 성장의 시간이 필요했다. 학창 시절에는 혼자 걸으며 사색하는 시간을 가졌고, 내 어지러운 마음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대학입시를 두 번이나 실패하면서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도 혼자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의 나래를 펼치며 마음을 정리했다.
생각해보니 그 후로도 나는 실패할 때마다 힘들 때마다 걸으며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다. 걷다 보면 계속 고민하던 생각도 정리되고 마음에 평화를 찾았다. 혹은 너무 머리가 복잡하며 아무 생각 없이 떠돌며 걸을 수도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걷는 일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근데 주변을 살펴보니 나처럼 힘들 때 걷는 사람이 꽤 있었다.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에서 저자도 매일 걷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EBS 고등 영어영역에서 강의하는 정승익 선생님도 머리가 복잡하거나 오히려 능률이 오르지 않으면 무작정 걷는다고 했다. 《혼자 하는 공부의 정석》의 저자인 한재우 작가도 공부가 잘 안될 때는 잠깐 걷다가 오면 뇌가 활성화되어 더 집중력이 높다 진다고 했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고부터 수백만 년 동안 두 다리로 계속 걸었다. 운송 수단이 생기기 전까지는 종일 걷기도 했다. 그렇게 인간은 계속 두 다리로 걸으며 뇌를 진화시켜 왔다. 실제 걷기를 하면 두뇌가 성장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걷기는 뇌의 중추인 해마의 크기를 증가시킨다. 해마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리게 되면 가장 먼저 파괴되는 부분으로 우리 뇌의 건강에서 중요한 역할은 한다. 참고로 뇌가 건강하면 인지 능력도 유지할 수 있다. 인지 능력이 좋으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더 나은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결국, 걷으면 두뇌가 발달하고, 인지 능력도 좋아져서 우리가 아무리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한 번은 군대에서 훈련을 받다가 무릎을 다쳤다. 그래서 3개월 동안 걸을 수가 없었다. 힘들거나 지쳤을 때 걸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이 있던 나는 그때 정말 힘들었다. 군대에 있는 상황도 힘들었지만, 더 괴로운 건 걷지도 못하는 나 자신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3개월이 지났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으니 재활을 위해 물속에서 조금씩 걸어보라고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지옥에서 다시 살아 나온 느낌이었다. 빨리 땅에서 걷고 싶어서 재활을 열심히 했다. 덕분에 빨리 회복했고, 다시 걸을 수 있었다. 내가 걷는 걸 그리 좋아하는지 그때 알게 되었다.
자동차 배터리가 달리며 충전하는 것처럼 나도 걸으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충전한다. 나도 그렇게 걸으며 심신 모두를 충전해왔다. 하지만, 작년에 아내가 둘째를 출산했고, 갓난아기를 함께 돌보며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체력이 바닥났다. 체력이 없으니 나가서 걸을 생각조차 못 했다. 자동차 배터리도 방전되면 차가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나도 방전되어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렇게 점점 게을러졌고, 몸은 점점 망가져 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건강 때문에 걱정은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육아로 지친 몸은 점점 망가져 갔다. 스트레스를 먹는 거로 풀다 보니 몸무게가 인생 최고치로 올라갔다. 살이 찌니 움직이는 게 귀찮아졌다. 그 좋아하는 걷기 운동도 몇 달 동안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건강에 적신호가 나타났다. 갑자기 손발이 동시에 저리며 통증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잠깐 그러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3주가 넘도록 증상이 유지되니 위기를 느끼고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피검사 결과 신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원인은 알 수 없는데 아프니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은 우리 몸이 건강하지 않은 이유는 항상성이 유지 않을 때 나타난다고 했다. 갑자기 불어난 몸무게, 건강에 좋지 않은 부담스러운 음식 섭취, 운동 부족 등을 이유로 들며 다이어트를 제안했다. 나도 처음으로 건강에 이상 신호를 느꼈기 때문에 다시 예전의 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식사를 제외하고 간식을 먹거나 칼로리 높은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녁에는 하루에 꼭 1만 보 이상을 걸었다. 처음에는 밖에 나가서 걷는 게 정말 귀찮았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다시 걸어야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걷다 보니 다시 예전에 내가 하던 대로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걸으니 하루하루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잘못한 일 등 삶의 방향을 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인간이라면 걷는 게 당연하고,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걷는 시간이 인생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자기 전에 밖에 나가서 걸으며 하루를 마감하는 일은 하루하루 나에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 힘들 때는 생각을 정리하며 걷고, 기쁠 때는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경쾌하게 걷는다. 그렇게 나에게 걷는 일은 회복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 되었다.
세인트루이스대학의 심리학자인 패트릭 폰텐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게 되고, 그것이 자신감을 강화시켜 행복감을 12%나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우리가 정기적으로 걷는 습관을 갖게 된다면 행복감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유로 수험생들에게 나는 교사로서 과격한 운동이 아니더라도 하루에 30분 이상 꼭 걸으라고 조언을 한다. 인류의 역사적인 관점, 뇌와 관련된 진화론적인 관점 등을 고려해 볼 때 걷는 일은 분명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꿈을 키우는 행복한 걷기》의 저자인 박길성 작가는 스트레스와 우울증 해소, 숙면, 심장마비 뇌혈관 질환 예방 및 혈액순환 개선, 폐활량 개선, 소화기관 강화, 치매 예방, 당뇨 예방, 근육 단련 및 뼈 강화, 체중 감량 등의 효능을 걷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걷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모든 부분을 건강하게 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대단히 유용한 전신운동으로 단순한 신체적 운동 이상의 의미가 있다.”라고 했다.
미국 아이오와대학 연구팀은 파킨슨병을 앓는 6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한 결과, 강도 높은 운동이 아닌, 규칙적인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파킨슨병 증상 개선에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또한, 수백 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시험한 결과 걷기가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한 예로, 12분간 천천히 캠퍼스를 걷기만 해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학생들이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걷기를 통해 감정을 가라앉히는 신경세포가 활성화되고, 이로 인해 흥분한 신경세포의 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 그러면 뇌에 적당한 자극을 주게 되어 자율신경의 작용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 이처럼 걷기는 신체적 질병 개선 효과와 정신적 질병 개선 효과에 모두 도움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걸으면 뇌세포에 산소를 공급하면 세로토닌 같은 좋은 호르몬이 많이 생성되면서 기분도 좋아지고 머리도 맑아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걷기가 정신 건강에도 과학적인 이유로 큰 도움이 된다.
어느 날은 많이 걷고 싶어서 2시간 혹은 3시간씩이나 걸을 때도 있다. 어느 날은 피곤함이 몰려와서 30분 정도 가볍게 걸을 때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피곤해도 걷고 들어오면 심신 모두 충전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매일 걸으려 노력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지난날 걸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걸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매일 걸으며 인생의 의미를 찾을 것이다. 도전하고 실패하는 반복적인 삶 속이라도 회복과 성장하는 길 위에서 그렇게 매일 걷는 삶을 반복할 것이다.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고, 멈추지 않고 걷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목표로 하는 인생의 길 위를 걷고 있지 않을까? 인생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시간은 내가 걷고 있는 그 시간이다. 회복과 성장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