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경험을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
특목고에 근무하면서 중학생을 둔 지인들로부터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자녀를 일반고와 특목고 중 어디를 보내야 할지 고민인데, 과연 특목고에 진학하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녀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답변할 때마다 나는 아이가 ‘회복 탄력성’이 잘 길러져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고 답변한다. 학자마다 이 용어를 ‘회복 탄력성’ 혹은 ‘적응 유연성’이라고 부르지만, 기본적인 의미는 거의 비슷하다.
미국의 콜럼비아 대학교 교육대학의 심리학, 교육학 교수인 철학 박사 수니야 루터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거나 적절히 대처해 나가는 개인의 능력이라고 했다. 미네소타 대학교 아동 개발 연구소의 교수인 앤 마스튼은 “대부분 사람이 위험이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적응해나가는 일반적인 적응 기제”라고 했다. 앤드류스 대학교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재닛 레데스마에 따르면 “역경, 좌절, 불운의 상황에서 원래의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능력”이라 했다. 결국 ‘회복 탄력성’이란 개인의 결함이나 약점보다는 스트레스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적응하는 개인의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래서 ‘적응 유연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내 자녀는 일반고와 특목고 중 어디로 가는 게 맞을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내 아이가 ‘회복 탄력성’이 좋은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회복 탄력성’이라는 말이 무엇인지도 알아야만 한다. 회복이라는 말은 이미 알고 있을 테니 ‘탄력성’이라는 용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탄력성’이란 개념은 힘을 가해 늘어나 있거나 압축된 상태에서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오는 유연함이라는 의미로 물리학에서 사용된다. 쉽게 말해, ‘회복을 위한 유연함’ 정도로 볼 수 있다.
근데 왜 특목고 진학을 고민하는데 이 ‘회복 탄력성’ 혹은 ‘적응 유연성’이 좋아야 하는 걸까? 이는 일반고와 특목고에 진학했을 때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일반고보다는 특목고의 경우 학생들이 참여하는 활동이 많은 편이다. 수시라는 전형으로 많은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다 보니 생활기록부의 질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학교 활동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신 시험도 준비하고 수능 시험도 같이 준비해야 하니까 시간적인 측면에서 부담을 많이 느낀다.
게다가 특목고의 경우에는 나름 중학교 때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이 모인 곳이다. 그래서 내신 등급을 잘 받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일부 자사고나 특목고의 경우에 서울대학교를 수십 명 보내기도 하지만, 대부분 학교에서는 그렇게까지 보내기가 어렵다. 서울 중상위권의 대학을 가려면 아무리 자사고, 특목고라고 해도 중간 이상은 해야 갈 수 있다.
재미있는 건 평범한 일반고에서는 반에서 1등을 해도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에 갈까 말까 한다는 것이다. 특목고에서는 중간 이상을 하면 갈 수 있는데 일반고에서는 반에서 1등을 해야만 갈 수 있으니 여기서 고민해 볼만 한 포인트가 있다. 누구나 좋은 결과를 받으면 자신감도 생기고 더 잘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안 좋은 결과를 받았을 때는 사람마다 하는 행동이 달라진다. 특히 그동안 승승장구 실패 없이 살아온 경우, 처음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더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 학교에서 중간 아래의 내신 성적을 받는 학생 중 중학교 때까지는 반에서 1등 혹은 전교에서도 공부를 잘했던 아이도 있다. 근데 특목고 진학 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면서 무너진 것이다.
물론 1학년 때 성적은 조금 낮았지만, 2학년 때는 1학년 때 보다 나아졌고, 3학년 때는 더 많은 성적 향상을 보이는 학생도 있었다. 실제 그런 학생 중에는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이 아니라 최상위 명문대에 진학하기도 했다. 과연 그 아이들은 어떻게 안 좋은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고 원래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궁금해서 조사해봤더니 내가 알고 있는 ‘회복 탄력성’을 가지고 있었다.
1960년에 있었던 학습된 무기력을 확인하기 위한 개 실험에 이어 1975년에는 도날드 히로토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에게도 똑같은 실험을 했다. 3개의 그룹으로 나눠서 소음에 반응하는 실험이었다. 첫 번째 그룹은 소음을 들으면 버튼을 눌러 끄게 했고, 두 번째 그룹은 버튼은 있지만 눌러도 안 꺼졌고, 세 번째 그룹은 통제군으로써 소음도 버튼도 아무런 통제가 없었다. 나중에 다른 소음을 들려주었을 때, 첫 번째와 세 번째 그룹은 이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두 번째 그룹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렇듯 인간의 무기력은 학습되기도 하지만, 동물이든 사람이든 3분의 1의 경우에는 견디기 힘든 소음과 충격에도 굴하지 않고 무기력에도 빠지지 않는 다른 실험 결과도 있었다. 긍정의 심리학을 제시한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15년 동안 연구한 끝에 그 이유를 ‘긍정주의’에서 찾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려운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상황을 단지 일시적일 뿐이고, 상황 중 하나일 뿐이며, 내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이 사람들은 무기력을 학습하거나, 불안과 걱정이 생기거나, 실패 후에 포기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하며 면역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희망적인 것은 ‘탄력 회복성’은 학습과 훈련으로 기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회복 탄력성’은 마음의 근육이라고 불린다. 우리가 운동을 통해 근육을 늘리는 것처럼 ‘회복 탄력성’도 훈련을 통해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근육의 생성 원리는 다음과 같다. 운동하며 상처 입은 근육을 재생하면서 굳은살처럼 비대해지고 두꺼워진다. 이를 전문 용어로는 ‘과부하의 원리’라고 한다. 지속적인 운동으로 근육이 파괴되면, 근육의 선명도는 더욱더 올라가고 질겨진다. 운동을 통해 강한 자극을 받으면 근육은 이를 견디기 위해 저항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근육이 견딜 수 없는 중량으로 운동하면 부피가 커진다. 근섬유에 상처가 생기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근육은 전보다 훨씬 더 질적, 양적으로 성장한다. 우리의 뼈가 부러졌을 때도 회복의 과정을 통해 다시 붙으면, 더 튼튼해지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라 볼 수 있겠다.
3단 논법에 따라 ‘회복 탄력성’은 마음의 근육이다. 근육은 훈련과 운동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고로 ‘회복 탄력성’은 훈련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훈련의 과정 속에는 근육의 생성 과정에서처럼 당연히 상처를 입을 수 있고, 다시 더 단단해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다만 얼마나 빨리 상처를 회복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2011년 국내에 처음으로 ‘회복 탄력성’이라는 개념을 내놓은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는 ‘회복 탄력성’의 두 가지 요소를 자기 조절 능력과 대인관계 능력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요소를 형성하면 더욱 ‘회복 탄력성’을 강하게 기를 수 있다는 말이다. 긍정심리학과 같은 맥락으로 뇌를 긍정의 뇌로 바꾸는 것이 회복 탄력성을 높일 수 있는 우리가 할 일이라고도 했다.
정리해보면, 긍정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을 통제하고 대인관계를 잘 유지하는 사람일수록 실패와 역경을 경험해도 금방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내 개인적인 경험을 더해보면, 우리가 목표로 하는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이 안 되더라도 그것은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실패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다시 다른 방법을 찾기도 하고, 재도전할 수도 있다. 지금의 실패가 꼭 미래의 실패가 되란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마음 자세를 갖고 실패와 역경을 대하면 심리적인 고통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학교에서 ‘회복 탄력성’이 높아 보이는 학생들은 자기 통제력도 강하고, 대인관계도 적극적으로 형성하려는 성향을 보였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철저하게 기록하면서 하나씩 실천해나가는 모습을 보였으며, 학급 임원이나 학생회 활동 등에서 리더로서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회복 탄력성’이 낮은 학생들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활동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벅차 했고, 주변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점점 혼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통해, 특목고나 자사고에 진학하려는 아이가 있다면 ‘회복 탄력성’이 형성되어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아이의 성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자기 통제 부분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지만, 대인관계 형성 부분에서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학교에선 혼자서 할 수 있는 공부도 있지만, 자신의 진로와 관련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인간관계를 잘 형성하지 못하면, 동아리에 들어갈 때도, 스터디를 결성할 때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걸 잘하지 못하는 성향이라면 오히려 혼자 공부하고 성적을 최상위로 받아서 학생부 교과 수시 전형을 준비하거나, 활동보다는 성적이 더 우선시되는 정시 전형을 위해 수능 시험을 준비하는 방식이 나을 수 있다. 일반고에서는 이 방식을 전략적으로 가져가기 때문에 자신의 성향을 잘 파악해서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고3 담임으로 재직하던 한 해, 우리 반에서 학급 임원이었던 한 학생은 ‘회복 탄력성’이 매우 강했다. 1학년 때 성적이 많이 우수하지 않았는데 짧은 시간 내에 꾸준한 성적 향상을 보였다. 게다가 학생회 활동,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알차게 해왔다. 근데 이 학생도 3학년 때 위기를 맞았다. 개인적인 목표지만, 국내 입시와 해외 입시 모두 준비하면서 슬럼프가 온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것을 다 이루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으로 볼 때 무리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 주어진 시간 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만 노력했다(자기 통제능력). 마음을 다시 잡기 위해 담임교사와도 상담하고 부모와도 계속해서 고민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대인관계 능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이 학생은 국내 입시도 모두 석권했고, 해외 입시도 좋은 결과로 이뤄냈다. 비록 잠시 위기가 찾아왔지만 ‘회복 탄력성’이 강했던 이 학생은 위기를 빨리 극복했다고 볼 수 있다.
대학교 때 나는 대학입시 실패 이후에도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을 통해 위기를 맞았다. 정체성 혼란, 영어 실력 향상에 대한 고민, 군대 지원 문제, 연애 등 내가 원한다고 해서 다 이룰 수 없는 경험을 수없이 많이 했다. 근데 비교적 고등학교 때보다는 위기를 잘 극복해냈고, 계속 성장했다. 그 이유는 바로 교육심리학 수업 때 배운 ‘회복 탄력성’에 있었다. 나도 계속 이어지는 실패 경험을 통해서 마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기를 수 있었다. 실패는 언제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금방 회복하고 다시 도전하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