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경험으로 훼손된 인간관계 회복의 노력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행복의 90%는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라고 했다. 또한, 티베트 종교 및 정치의 최고 지배자이자 교주인 달라이 라마도 “나 혼자서는 따로 행복해질 수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주변에 함께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근데 거듭되는 실패의 경험 때문에 자꾸만 주변 사람한테서 멀어지려고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2002학년도 고난도 수능의 여파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거나 재수가 불가피했던 몇몇 친구들은 졸업식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도 있다. 혹은 공무원 시험이나 고시 공부로 주변 사람들과 연을 끊고 지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친구 대부분은 계속해서 연락이 안 된다. 합격했다면 아마도 먼저 연락이 오지 않았을까?
기원전 1세기 시리아 출신의 로마 작가인 퍼블 릴리어스 사이러스는 “성공은 친구를 만들고, 역경은 친구를 시험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힘들 때는 친구를 찾지 않게 되고, 오히려 일이 잘 풀릴 때는 내가 찾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나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졸업 후에 연락이 안 되다가 종종 암흑 같은 시기를 이겨내고 합격 소식을 전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사법 고시를 준비한다고 휴학하고 속세를 떠나 공부에 매진하여 일찍이 고시에 합격한 고3 동창생은 반창회 모임 때 찬조금을 내며 합격 소식을 전했다. 또 다른 친한 친구도 계속 모임에 안 나오다가 사법 고시에 패스한 이후로는 꾸준히 연락하며 모임에도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이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유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상황에 따라 자신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 변화를 주는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고3 담임을 하면서 매년 졸업식이 끝나면 졸업장과 졸업 앨범을 따로 전해주는 경우가 있었다. 대부분 그런 학생들의 경우 대학에 떨어졌거나 만족하는 대학에 가지 못해서 바로 재수를 하느라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렇게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전과 너무나도 똑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근데 나조차도 인간관계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겪었기에 할 말이 없다.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지만, 1장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실패를 이유로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인간관계를 무너뜨리는 선택을 하면, 회복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심지어 아무런 조건 없이 친하게 지냈던 어린 시절 친구들과도 어른이 되어서는 개인적 성향 차이 혹은 자신이 처한 환경의 차이로 멀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친구는 일단 집이 가깝고 매일 학교에서 보기 때문에 성향을 떠나서 순수하게 친구 관계가 형성된다. 근데 대학에 가고, 취직하면서 일단 사는 곳이 멀어져 예전만큼 자주 볼 수가 없다. 대신 우리는 새롭게 일상이 된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영국의 문학가인 사무엘 존슨도 “만약 사람이 살면서 새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면, 곧 홀로 남게 될 것이다. 사람은 우정을 계속 보수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렇듯 우리는 처한 환경에 따라 인간관계를 수정해가며 살 수밖에 없고, 인간관계가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나도 대학입시에 실패하면서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졸업 후에는 조금은 소원해진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또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학교라는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지내면서 어찌 아무런 사이가 될 수 없을까? 근데 학창 시절보다 친한 관계를 맺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학창 시절은 작은 사회였다면, 대학부터는 다양한 나이, 지역, 문화, 성별, 인종 등 다양성이 공존하는 큰 사회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이해관계가 있어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모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수업을 들었지만, 대학은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신청하고 각자 기호에 맞는 수업을 듣기에 항상 같은 사람과 종일 만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이해관계와 어느 정도는 맞아야 인간관계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격(성향)이 잘 안 맞으면 굳이 친하게 지낼 필요도 없다. 그리고 환경적으로도 변수가 많다. 군대에 가는 사람, 휴학하는 사람, 편입해서 오거나 가는 사람 등 학년을 거듭해서 올라갈수록 계속 새로운 사람들이 주변에 나타난다.
한 예로 교양 수업의 경우에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심지어 다른 학과 사람들과도 수백 명씩 같이 듣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16주간 수업을 들었어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환경에서 친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말로만 들어봐도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학에서는 좋은 사람과 좋은 인연을 맺기는커녕 인간관계 형성의 기회조차 척박한 환경이다. 그래도 행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 입학 후 한 선배한테 들었던 명언이 있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 친한 친구 한 명과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교수님 한 명을 만들면 대학 생활은 성공이다.’라고 했다. 그만큼 대학에서는 진실한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성공적인 대학 생활을 위해 인간관계를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요새 말로 아싸(아웃사이더)보다는 인싸(대세의 중심에 있는 사람)가 되고 싶었다. 1학년 때는 과대를 맡아서 학과 일을 열심히 하며 동기와 선배들 모두 두루두루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학과에서 진행하는 모든 행사에 참여하며 신뢰를 쌓기도 했다.
근데 대학에는 학교생활을 하는 여러 부류가 있어서 모든 게 다 내 마음 같지는 않았다. 나처럼 학과 생활에 충실하게 참여하는 사람도 있지만, 학과 일보다는 개인 사정이 더 중요한 사람도 있었다. 보통 감투를 쓰면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과대를 하며 오히려 힘든 시간을 보냈다. 최대한 행사에 참여시키라는 선배의 압박과 개인 사정으로 참여가 어려운 동기들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환멸을 느꼈다. 갈팡질팡하는 사이 선배한테는 참여도를 높이지 못하는 무능한 과대, 동기들한테는 행사 참여 압박을 주는 강압적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잘해보려고 한 활동인데 오히려 비난과 질책만 받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어린 시절과는 달리 대학 그리고 사회에서는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면 쉽게 인간관계 형성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하지만, 이해관계보다도 자신의 사람을 믿고 인간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의 최대 소프트웨어 회사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일화가 유명하다. 야후의 몰락으로 그의 주식이 94%나 폭락하여 파산 직전에 이르렀을 때 꽤 많은 사람이 등을 졌지만, 400여 명의 사람들은 그를 기다려 주었고 실제 중국 마윈의 알리바바 주식 지분을 인수할 때 투자에 도움을 주었다. 2014년 알리바바 주식의 나스닥 상장으로 인하여 투자수익률을 약 2,900배 올린 손정의 회장은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1인당 100만 달러, 한화로 10억 원 이상의 돈을 나누어주며 감사의 마음을 보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일화를 통해 우리는 자기를 믿고 기다려 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 10억 원 이상의 가치를 느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듯 우리도 서로 믿고 끝까지 내치지 않을 만큼 소중한 인연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나는 처음에는 그냥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게 인간관계를 잘 맺는 것이라고 믿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휴대폰에 연락처를 모두 저장해두었다. 20대 중반을 넘을 무렵에는 연락처에는 2,000여 명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근데 대학 졸업 후 군대에 가면서 연락이 거의 끊긴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정말 필요할 때 연락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니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미국의 정치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친구를 고르는 데 천천히, 친구를 바꾸는 데는 더 천천히”라고 말했다. 그만큼 친구를 사귈 때는 신중히 하라는 말이다. 또한,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누구에게나 친구는 어느 누구에게도 친구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나에게 소중한 친구를 찾는 일은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일이었다. 작가 리즈 카펜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편도 아니고 내 적도 아니다. 또한 내가 무슨 일을 하거나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모두가 자신을 좋아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내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수는 없었다.
인간관계에서는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군대 전역 후 내가 먼저 연락하고 싶은 사람 1,000명 정도로 연락처를 정리했다. 그리고 호주로 유학 다녀와서는 500명 정도로 줄였고, 취직하고 나서는 정말 연락하고 지낼 사람만 남겨두니 200명 정도가 되었다. 비록 연락처에 남겨진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내가 가진 에너지를 함께 나눌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할 수가 있었다. 덕분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연락하며 가족 대 가족이 만나서 함께 지내는 친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졸업 후에도 항상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시는 교수님도 한 분 계신다.
프랑스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로맹 롤랑은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나와 뜻을 같이할 사람이 한둘은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바깥 대기를 호흡하는데 들창 문은 하나만으로 족하다.”라고 했다. 나도 이제는 내게 소중한 사람들한테 더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다 보니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하는 시간이 줄었다. 그 고민을 할 시간에 그동안 쌓아온 인간관계의 질을 높이는 노력에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지금 친구가 많다고 우쭐댈 필요도 없고, 지금 친구가 없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회자정리(會者定離)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처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만날 인연은 다시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