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 질적 모두 임계점을 넘자.
고3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수능 영어영역 1등급, 취업을 준비하는 취업 준비생이라면 토익 900점 이상 고득점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근데 고득점을 받기 전에 많은 학습자가 포기한다. 심지어 그중엔 영어가 너무나도 싫다며 영어를 놓아버린 영포자가 나오기도 한다. 넘기만 하면 되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그렇게 많이들 포기한다. 아마도 금방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변화가 없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노력만 한다면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겠지만, 처음에 점수 올리는 일은 쉽다. 우스갯소리지만 내가 토익 시험을 보던 시절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첫 토익 성적은 파트별 자신의 신발 크기와 비슷하게 나온다.”라는 것이었다. 듣기와 독해 파트 각 200 중반의 숫자라고 하면 500점 정도가 된다. 500점에서 600점으로 점수를 올리는 건 그래도 조금은 쉬운 편이다. 근데 600점에서 700점, 700점에서 800점, 그리고 800점에서 900점으로 고득점으로 올라갈수록 점수 올리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번 그 점수를 넘기고 나면 신기하게도 성적이 그 점수대로 유지되는 현상을 보인다. 이는 내 실력이 이미 어떤 한계를 넘어서서 다음 단계로 넘어왔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까지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노력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한계점을 넘어서기까지 비록 힘들었지만 분명한 성장을 경험한다. 이때 이 한계를 우리는 ‘임계점’이라고 부른다. 모든 성장은 ‘임계점’을 넘었을 때 일어난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 있다. 바로 물이 끓는 원리다. 물은 섭씨 99도에 1도를 더한 100도에서만 끓어서 수증기가 된다. 근데 1도만 부족해도 물은 끓지 않는다. 물이 기체로 변할 때 임계점이 바로 섭씨 100도이기 때문이다. 이 원리처럼 우리도 성장 과정에서 어떤 한계점을 넘어서지 못하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근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지금 당장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열심히 노력하다가도 포기한다. 그래서 매우 안타깝다.
《임계점을 넘어라》를 쓴 김학재 작가는 “임계점이란, 어떤 물질의 구조와 성질이 바뀔 때 온도를 말한다. 물질이 기본적으로 변하기 위해선 절대적인 온도와 압력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습득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횟수를 반복해야 자연스러운 생각과 행동이 따라온다. 이때 필요한 절대적인 인풋의 양을 임계점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이 말에 따르면 임계점은 어떤 절대적인 양을 우리가 해냈을 때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동훈 작가가 쓴 《1만 시간의 법칙》에서도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성공은 없고, 오직 땀 흘리는 절대 시간과 끈질긴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다니엘 레비틴은 ‘1만 시간의 법칙’을 기반으로 하여 하루 세 시간씩 10년간, 즉 1만 시간을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적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에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나도 이 법칙을 따르고자 했던 적이 있다.
호주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내 영어 실력을 확인하고자 토익 시험을 봤다. 근데 이건 웬걸 모의고사를 하나도 풀지 않고 시험을 봤더니 900점을 넘지 못했다. 외국에서 더 어려운 학문을 공부하고 돌아왔는데 시험 성적이 나오지 않으니 당황스러웠고,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 토익 시험을 준비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이왕이면 토익 만점을 받아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강남에서 진행하는 한 토익 스터디에 참여해 매일 어휘 시험을 보고, 모의고사 1회씩 문제를 풀었다. 사실 영어 교육학 관련 어휘나 지식이라면 자신 있었다. 근데 토익은 비즈니스 분야 기반이어서 생소한 어휘가 꽤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 모의고사 문제를 풀고 채점을 했더니 900점이 넘었다. 사실 스터디에 참여할 때 처음엔 유학 다녀온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가 점수가 너무 잘 나오니 신분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스터디장도 아닌데 어쩌다가 문제를 해설하는 역할을 맡았다.
시험 문제 유형을 비롯하여 토익이라는 시험에 익숙해지자 한 달 정도 지나니 900점대 중반까지 점수가 올랐다. 근데 내가 목표로 했던 990점 만점은 쉽지 않았다. 사실 그게 어려울 법도 한 것이 듣기 파트는 5개 이내로 틀려도 만점이 나오는데, 독해 파트는 1개만 틀려도 15점이 감점됐다. 상대평가 방식의 채점 시스템이라 점수를 특이하게 매겼다. 그리고 1개 틀리면 5점씩 감점된다. 900점대 중반, 대충 950점이라는 의미는 듣기는 5개 이내로 틀려서 만점 받고, 독해도 5개 이내로 틀렸을 때 받을 수 있는 점수다. 200개 중 10개 이하로 틀려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성적 시스템이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대략 그렇게 계산했다.
나는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라 토익 모의고사를 100회를 풀면 만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각 파트 100문제씩 100회분의 모의고사를 곱하면 총 10,000개라는 절대량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수십 회분을 풀면서는 안정적으로 900점대 중반 점수가 나왔다. 일명 양치기라고 문제를 너무 많이 풀다 보니 토익 시험에 적응되어 문제만 보고도 3초 만에 풀 수 있는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듣기를 하며 독해의 ‘part 6’까지 다 풀기도 했다. 토익 강사처럼 만점을 받지는 못해도 경지에 올랐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엔 평균적으로 문제를 다 풀고도 30분이 남았고, 최고 기록은 40분을 남긴 적도 있었다.
과연 나는 그렇게 해서 만점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아쉽게도 모의고사 100회, 듣기와 독해 합쳐서 총 20,000개 문제를 풀었어도 만점을 받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매달 새롭게 나오는 어휘까지는 내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듣기, 독해, 어법” 부분은 거의 모든 임계점을 넘어섰지만, ‘어휘’라는 한계에 부딪혀서 만점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렇듯 임계점은 절대적인 양도 중요하지만, 질적인 부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최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질적인 임계점을 넘어서는 게 꼭 필요하다.
'얼마나 오래'가 아니라 '얼마나 올바른 방법'으로 목적 달성을 위해 노력했는지를 강조하는 《1만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는 ‘무조건적이 노력’이 아닌 ‘의식적인 노력’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이 책은 ‘1만 시간의 법칙’ 이론의 창시자인 스웨덴 출신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슨이 ‘1만 시간의 법칙’을 재해석하는 책으로 심지어 부제목이 ‘노력은 왜 우리를 배신하는가’이다. 그리고 실력 향상에 필요한 ‘목적의식 있는 노력’은 컴포트 존을 벗어나 다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어떤 것을 시도한다는 의미다.
내가 토익 100회 모의고사를 풀었지만, 습관처럼 문제 풀고 틀린 것만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매달 새롭게 등장하는 어휘까지 의식하며 더 깊게 공부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계속 틀리는 어휘 문제를 맞히기 위해 더 많이 공부해야 했다는 말이다. 양적 임계점은 도달했지만, 질적 임계점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만점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이를 통해 ‘얼마나 오래 했는가’보다는 ‘얼마나 올바르게 했는가’ 그리고 ‘더 열심히 하기’보다는 ‘다르게 하기’가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임계점을 넘어선 변화의 발생은 뇌과학적인 측면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영국의 신경과학자인 엘리너 맥과이어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강도 높은 훈련에 반응하여 성장하고 변화한다고 했다. 우리가 더 무거운 것을 들수록 근육이 강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뇌도 더 강한 자극을 주어야 변화가 일어난다. 물론 성인의 뇌는 어린 시절처럼 왕성한 세포분열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뇌의 신경 조직망 재배열과 미엘린의 양을 증가시켜 전달 속도를 개선하여 뇌의 작용이 활발히 일어나도록 한다. 변화를 일으킬 때 반복되는 ‘횟수’도 중요하지만, ‘강도’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논리를 펼치면 수험생 중에는 효율성을 강조하며 절대적 공부량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내가 가르쳤던 제자 중에 간혹 논술 전형을 준비하는 학생이 있었다. 내신은 부족하니 수시로 진학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하고 논술 전형으로 전략을 세운 것이었다. 참고로 논술 전형은 100:1의 경쟁률이 나올 만큼 지원자는 많은 데 소수를 뽑는 전형이다. 그래서 좋은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다. 100명이 지원해도 정말 1명이 합격할까 말까 하기 때문이다. 근데 그 학생은 자신이 글을 좀 쓴다고 생각해서 논술 모의고사도 많이 풀어보지 않고 시험을 쳤다. 결과는 어땠을까? 당연히 불합격했다.
반면 똑같은 전략이었지만, 논술 전형에 몰입한 다른 학생은 그 어려운 논술 전형으로 두 군데나 합격했다. 그 비결을 알아본 결과, 일주일에 최소 2편의 논술 모의고사를 풀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년은 52주로 일주일에 2개를 곱해보면 100회가 넘는 연습을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이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 기출문제를 분석하며 전략적으로 세분화해서 논술 쓰는 방식도 연구했다. 100회 넘게 모의고사를 통해 자신만의 글을 전개하는 방식을 잡아갔다. 끝으로 배경 지식이 약한 분야에 대해서는 독서를 통해 지식을 확장해가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공부했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철저하게 임계점을 공략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실제 고3 담임교사를 하며 여러 해 논술 전형에 합격한 학생들의 성공 비결을 확인해봤다. 워낙 논술 전형 합격이 어렵기에 이렇게 준비한 학생 모두 합격한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이런 방식을 적용한 경우에 합격했다. 《혼자 하는 공부의 정석》의 저자인 한재우 작가도 서울대를 논술 전형으로 합격했는데 그때 전략이 이와 비슷했다. 100회 넘는 모의고사를 풀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공부했다. 이를 통해 꼭 논술 전형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시험을 준비하면서 최소한의 기준을 세우고 임계점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임계점을 나타내는 숫자는 얼마가 적당할까? 우리는 100이라는 숫자를 ‘불완전한 것에서 완전한 것’이 되는 숫자라고 생각한다. 실제 우리 조상들도 백(百)은 ‘전체, 완성, 가득함 그리고 진정성’을 상징한다고 했다. 분야마다 넘어서야 할 임계점에 해당하는 숫자가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백(百) 번은 해봐야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 주변을 살펴보면, 100번을 실천해서 큰 변화를 얻은 사례를 얻을 수 있다.
‘곤샘’이란 별명을 가진 영어 강사도 유튜브에 100개의 강의 영상을 올리고 나서 계속 강의 제안이 들어왔다고 했다. 이지성 작가가 쓴 100만 부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에서도 100권의 책을 읽는 프로젝트가 나온다. 그것을 실천한 정회일 작가는 인생 변화를 이끌었다. 《일독일행(一讀一行)》, 《1日1行의 기적》을 쓴 실천력의 대명사 유근용 작가도 100권의 책을 읽고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우리도 이들처럼 무엇을 하든 100회에 달하는 임계점을 넘어서면 성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처음 유튜브를 시작할 때 9개 언어를 구사하며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현우 선생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현재 10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Talk To Me In Korean’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기에 성공 비결을 물었다. 회사 설립 초창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하고 꾸준하게 한국어 강의 영상을 제작하여 올렸다고 했다. 영상 백 개 정도를 만들어보니 무엇이 잘됐고, 무엇이 부족한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 일단 물불 가리지 말고 영상 100개 먼저 만들어서 올려보라는 말을 전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변화된 자신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성장은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