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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場날, 떠밀려 가는 시간 속에서

by 박기종

장場날 아침, 거리에는 정체 모를 분주함이 떠돌고 있었다. 공기 속엔 오래된 흙냄새와 기름에 절인 전 부치는 소리, 낡은 수레가 길을 긁는 쇳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장날의 리듬은 규칙 없이 흘렀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그 흐름에 휩쓸려 갔다.

손때 묻은 나무 상자 위에는 손글씨로 적힌 가격표가 흔들렸고, 한쪽에서는 허름한 천막 아래 늙은 상인이 담배를 문 채 낮게 중얼거렸다. “오늘도 해는 뜨고, 사람들은 돈을 써야 먹고 사는 법이야.” 그는 마치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을 던졌다.

사람들은 흥정을 했다. 몇 푼이라도 깎으려는 사람과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사람 사이에 팽팽한 공기가 흘렀다. 그러나 그 속엔 단순한 거래 이상의 것이 있었다. 삶의 무게, 오랜 습관, 그리고 서로를 알아보는 눈빛 속의 익숙한 연대감.

구석에서는 할머니 한 분이 자리 펴고 직접 기른 나물을 팔고 있었다. 투박한 손이 지나온 세월을 말해 주었다. "이건 아침에 딴 거라 싱싱혀."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단했다. 삶의 무게를 견뎌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질긴 강인함이 담겨 있었다.

그 반대편에서는 젊은 연인이 노점을 기웃거렸다. "이거 맛있어 보여." 여자의 눈이 반짝였고, 남자는 지갑을 꺼냈다. 시장의 풍경은 그렇게, 세대를 넘어 다른 이야기들을 한데 엮고 있었다.

장場날은 단순한 거래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흘려보내는 삶의 한 조각들이 우연히 스쳐 가는 자리였다. 누구는 생계를 위해, 누구는 그저 구경 삼아, 누구는 오래된 습관에 이끌려 이곳을 찾았다.

해가 기울자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남은 채소 더미 위로 어둠이 내려앉고, 상인들은 묵묵히 짐을 정리했다. 어떤 이는 오늘 하루 벌어 저녁 한 끼를 해결할 것이고, 어떤 이는 다음 장날을 기약하며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또 하루가 흘렀다. 바람에 흩어진 가격표처럼, 우리도 어디론가 흩어지지만, 언젠가 또 다른 장場날이 오면 우리는 다시 만나겠지. 그렇게, 떠밀려 가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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