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새우쪼림

여장부 할머니의 유일한 손맛

by 리다

우리 할머니는 대단한 '여장부'셨다. (과거형으로 쓰는 건, 할머니께서 작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성격도 호탕하고 목소리도 벼락같으셨다. 엄마가 그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해줬다. "그 시절에 아들 넷을 내리 낳았으니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겠냐"는 것이다. 우리 할머니는 장정한 아들 넷을 연달아 낳고 막내딸까지 하나 보셨다.


아들 하나만 낳아도 며느리의 허리가 쫙쫙펴지던 시절에 넷이나 낳았으니 그 당당함이 오죽했겠나 싶다. 할머니의 시종일관 당당하고 우렁찬 목소리가 이해가 되었다.


반면 섬세한 분은 아니셨다. 특히 며느리들에게 살가운 시어머니는 아니셨다. 아들가진 위세를 떨치거나 며느리를 하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툭툭던지는 말과 행동에 큰어머니와 우리엄마는 상처도 많이 받고 서운해하셨다. 본인이 아무생각없이 던진 말 몇마디로 며느리 사이가 서먹해지기도 했다. 원래 그런 어른이니 라고 치부하기엔 그 세월이 너무 길었고, 다 안다고 했지만 '혹시나'하는 마음에 서로 오해가 쌓여 데면한 사이가 되었다가 세월이 지나 자연스럽게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나를 굉장히 좋아하셨는데, 손녀들 중에 가장 막내였고, 아무래도 가장 자주 본 손녀라 그랬던 것 같다. (엄마의 말은 다르다. 그래도 늬 할머니는 장손이 최고라고 했다.)할머니는 나를 입의 혀 같은 아이라고 하셨다. 할머니댁에가면 항상 할머니 옆에 착 붙어서 농담도 던지고 잠자리에 들 때면 항상 할머니 옆에 붙어서 한 이불 덮고 자서였다. 어릴적 나는 할머니를 할매, 할마쉬라고 불렀는데, 할머니는 내가 결혼 해서 아이를 낳은 긴 세월 동안 항상 '쟈아가 나를 할마쉬할마쉬 이래 불렀어'라고 깔깔거렸다.

내 기억속 할머니는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시고, 실없는 소리하는 손녀라 좋아하셨다. 부모님 몰래 불러서 천원, 이천원, 만원씩 있는 대로 쌈짓돈을 털어 용돈을 주신 분이셨다.


할머니는 부엌출입은 잦았지만 정작 음식은 직접 하지 않으셨다. 혼자 계실때도 그냥 있는걸로 대충 드셨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한달에 한두번은 늘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국과 찌개를 얼려서 차곡차곡 가져갔다. 과일 같은 것도 깎기 귀찮다고 잘 안드셨다. 그래서 난 할머니들은 다 그런가 싶었다.


그런데 책이나 tv,주변 친구들 이야긴 달랐다. 할머니댁에 가면 할머니가 늘 상다리가 휘어지게 넉넉한 상차림으로 맞아준다는 것이다. 반찬가짓수가 많지 않으면 양이 너무 많거나, 고기는 없지만 그보다 더 많은 나물과 반찬들이 가득해서 할머니집 가면 늘 살쪄서 온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달걀프라이 하나도 직접 하는걸 본적이 없어서 굉장히 생소했다. 할머니가 음식을 하다니! 그건 외국에서나 있는일 아닌가? 할머니들이 오븐에 파이 구워서 손주들 갖다주고 뭐 그런거.


결혼하고 나서 할머니를 보니 '아 우리할머니는 부엌일에 관심이 없으시구나'하는게 보였다. 본인이 관심도 없고 잘 할줄 모르니 그냥 며느리들한테 맡기고 본인은 뭘 해서 먹나 구경하신거였다. 할머니는 집안일보다 바깥일에 더 관심이 많으신 분이었다.

그래서 명절에 부엌에 앉아 며느리와 함께 있기 보다는 밭일을 하는 큰아버지와 함께 잡일을 하거나, 장정한 손자들이 드러누워있으면 '저기 고구마밭에 고구마 좀 캐온나'하고 호미를 쥐어주며 같이 나가셨다.


그런 할머니가 늘 만들어놓던 반찬이 있었다. 아주 작은 민물새우를 간장과 고춧가루를 넣어 매콤하게 조린 새우조림이었다. 할머니는 그걸 '짠(잘다-경상도방언/매우 작다는 의미)새우 쪼린거'라고 했다. 아주 작은 민물새우라 수저로 퍼먹고 싶어도 너무 짜서 한 개씩 집어 먹게 되는 희한한 반찬이었다.

딱히 반찬의 이름은 없어서 나는 그냥 새우조림이라고 했는데, 할머니는 '새우쪼림이', '새우쪼림'이라고 억세게 발음하셨다. 난 그 반찬을 좋아해서 과자처럼 자주 집어먹었다. '야야 그거 짭아서(짜서)밥이랑 같이 묵으야 된데이', '물이 많이 먹힐끼다'고 할머니는 내 옆에 붙어서 잔소릴 늘어놓으셨다.

사실 할머니의 새우쪼림은 '우와'싶은 대단한 맛은 없었다. 오히려 엄마가 한게 맛은 더 좋았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것이 더 좋았다. '할머니가 만든 유일한 반찬'이라는 희소성도 있었지만 간장, 고춧가루, 다진마늘, 후추, 설탕 등 갖가지 양념을 넣고 뭉근하게 졸이듯 만든 세련된 엄마것보단 간장 고춧가루 민물새우만 넣고 휘적거리며 푹 끓인 할머니 것이 민물새우의 고소한 맛을 더 느낄 수 있어서였다. 최소한의 양념으로만 간을 하여 원재료의 맛을 끌어올린 할머니의 조리법에 감탄을 했지만, 정작 할머니는 "새우만 넣고 볶으니 비리고 심심해서 못먹게다"고 있는거 대충 때려넣고 끓였다고 하셨다. 입을 합죽거리면서 "반찬은 좀 짭아도 괘안타"며 웃으셨다.


내가 대학생때, 자취방에 할머니가 오신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작은 자취방을 이리저리 구경하면서 연신 감탄을 하셨다. "아이고 머리도 혼자 못 묶더니 이래 잘해놓고 사나" 냉장고를 열어보면서 "우리집 냉장고보다 먹을게 더 많네" 하시더니 반찬을 꺼내서 열어보셨다. 그날 냉장고엔 김치와 장조림, 진미채무침이 있었는데 셋다 내가 직접 한 것들이었다. 엄마가 '이거 다 얘가 했어요'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맛을 보고 싶다고 했다. 반찬들을 냠냠 먹더니 어쩜 이렇게 입맛에 맞내고 감탄하셨다. 할머니는 평소 식욕이 없는 분이셨다. 생전 뭘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었고, 반대로 뭔가 먹어보고 싶다고 한 적도 없었다. 그런 할머니가 타지에서 혼자 살면서 반찬을 만들어 먹는게 기특하셨나보다. 그날 할머니는 맛만 본다고 하시곤 제법 많은 양을 드셨고, 이후 날 볼때마다 그 일을 두고두고 이야기 하셨다.


늘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시고 총기 넘치게 다니신 할머니는 어느날 갑자기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그러고 병원에 쭉 누워계셨다.


그러길 두달째. 난 기묘한 꿈을 꿨다.

꿈에서 할머니가 퇴원을 하시고, 우리가족이 할머니를 뵈러 할머니집에 갔다. 도란도란 이야길 나누는데 갑자기 큰딸이 자지러지게 우는 것이다. 할머니 머리 위를 연신 가리키면서 어찌나 심하게 울던지, 나는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집은 주택이었는데, 마당에서 안방이 바로 보였다. 마당에 나오자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대체 왜 그랬지 싶었다가 안방을 봤는데, 할머니의 머리와 어깨 오른쪽에 검은 옷에 챙 넓은 모자를쓴 형상이 둥둥 떠있었다. 내가 그걸 보고 "아 아직 두분밖에 안오셨으니 우리 할매는 몇년 더 살겠다"하고 잠에서 깼다.(그 꿈을 3년 전에 꿨는데 지금도 생생하다)

그 다음날 엄마로부터 할머니 증상이 매우 호전되어 퇴원을 하시니 할머니를 뵈러 가자는 연락을 받았다. 나의 예지몽에 소름이 돋았다. 예전에 무속, 민속학 관련 책에서 '저승사자는 세 명이 함께 다닌다'는 문장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꿈에서나마 그게 생각나서 그런 말을 던졌구나, 스스로에게 놀랐다. 이왕 꿈이 맞은 김에 할머니가 더 오래 사셨으면 했다. 꿈에서 할머니 앞에 작은 상이 있었는데 그 상엔 두 개의 막걸리잔 같은게 있었다.


공교롭게 할머니는 2년 후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둘째를 낳은 직후라 할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너무 슬프고 우울할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굉장히 덤덤했다.

그건 내가 할머니가 살아계신동안 손녀로써 아낌없이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할머니는 나에게 최고의 할머니였고, 조금도 섭섭한 것 없이 충분히 사랑받았다. 엄마와 친척들은 '늬 할머니는 첫째 손자만 엄청 좋아했지'라고 하지만 내가 느낀건 그렇지 않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느날 문득 그 새우쪼림이 먹고싶었다. 엄마에게 부탁했다. 할머니가 해준것처럼 양념 많이 하지 말아달라고. 비싼 민물새우인데...투덜거리며 엄마는 그대로 만들어줬고, 그걸 바로 집에 가져왔다. 한입 먹는데 짠맛이 확 났고 뒤이어 민물새우의 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퍼졌다.


아, 우리 할머니 맛이야. 그제서야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게 실감났다. 그날 새우쪼림은, 참 짰다. <끝>


새우조림 만들기

1. 민물새우는 깨끗하게 씻는다

2. 냄비에 간장2:물1:다진마늘1:고춧가루 조금 넣고 팔팔 끓인다

3.기호에 맞게 청양고추나 참기름 등을 넣어 볶듯이 끓이고 물이 반쯤 졸아들 만큼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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